'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법' 발효됐지만…곳곳 '구멍'

김정수 2012. 11. 20
조회수 19445 추천수 1

배출량 검증기관 감독 허술, 무상 할당량 이월 허용 등

산업계 거센 반발로 제도 왜곡, 제구실 할까 우려 목소리 커

 

01057949_P_0.jpg » 온실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국내의 한 화력발전소의 모습. 우리나라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부터 이들 발전소를 포함해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실시된다. 사진=탁기형 선임기자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한국형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기본 설계 작업이 지난 15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공포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제도 도입 근거를 담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2009년 말 국회를 통과한 지 3년 만이다.
 

이에 따라 제철, 발전, 시멘트, 제지 등 온실가스 대량 배출 사업장을 가진 업체들과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은 2015년부터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의 한도를 배출권으로 할당받는다.

 

배출권은 거래제 시행 초기 3년 분량은 무상 공급되며, 2018년부터 부분적으로 경매 등을 통한 유상할당이 도입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는 적게 할당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할당받은 배출권 한도 안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펼치거나, 시장에서 배출권을 추가로 확보해야만 한다. 할당이나 구매로 확보한 배출권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 평균 가격의 3배(톤당 최대 10만원)를 과징금으로 내는 제재를 받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온실가스 배출허용량(=배출권)을 할당받은 개별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따르는 비용과 시장의 배출권 가격을 비교하여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배출권 구매를 선택하게 하는 제도이다. 시장원리를 적용하여 국가 전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비용 절감을 꾀한다.

 

  table2-2.jpg » 배출권 거래제 개념도 그림=녹색성장위원회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법 시행령을 공포하면서 “비용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저탄소·고효율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법과 시행령 규정을 뜯어보면, 배출권 거래제가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할 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제도 시행에 따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피해보려는 산업계와, 새로운 차원의 산업 규제인 거래제 운용에 최대한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두려는 경제부처들에 의해 왜곡된 결과다.
 

대표적 왜곡 사례는 산업체 생산 시설의 변동에 따른 배출권 할당량의 사후 조정 규정을 만들면서, 할당량의 추가는 시설의 신설은 물론 증설과 사업계획 변경, 생산품목 변경 때에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할당량의 취소는 전체 시설이 폐쇄되거나 1년 이상 가동이 정지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비대칭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시험 시행기간의 성격을 지니는 1차 계획기간의 배출권 전량을 무상할당하고 이를 다음 계획기간으로 제한없이 이월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다.
 

배출권 거래제 설계 작업에 참여한 한 연구기관의 전문가는 “1차 계획기간은 시행 초기인 만큼 배출권이 과다 공급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기간에 남는 배출권을 차기로 이월할 수 있게 한 것은 이후의 배출권 거래제 운용에 큰 부담이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출권 거래제 시행 초기 배출권 전량 무상할당의 부작용은 유럽연합이 한국보다 앞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면서 비싸게 얻은 교훈이다. 유럽이 전해준 이 교훈은 한국형 배출권 거래제 설계에 반영되지 못했다.
 

배출권 거래제 ‘주무관청’인 환경부나 정부연구기관에서 배출권 거래제 설계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배출권 거래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할당”이라고 말한다. “전량 무상할당을 하더라도 할당을 잘해서 관리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주무관청이 제대로 된 할당과 엄격한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검증기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거래제 관련 법률 제정 실무를 맡았던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대응국 서진희 과장은 “배출권 거래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무관청도 중요하지만 기업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보고·검증하는 기관이 제대로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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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 거래제에서 검증기관의 중요성은 앞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의 전문가들도 강조하는 대목이다. 독일 환경, 자연보전 및 원자력안전부의 배출권 거래 총괄 더크 바인리히 국장은 “배출권 거래제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배출량 데이터의 확보이며, 할당뿐 아니라 모니터링과 검증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레그 바커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장관도 한국 배출권 거래제 성공을 위한 조언에서 “정확한 데이터와 강력한 검증”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배출권 거래제 설계도에는 신뢰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검증기관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다. 검증기관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경고나 업무정지 등은 허용하지 않고 취소만 허용해, 지정을 취소할 만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 사실상 아무 조처도 할 수 없도록 주무관청의 손발을 묶어 놓은 것이다.
 

주무관청이 배출량 검증기관의 선정과 감독에서부터 배출권거래소를 지정할 때 검토해야 하는 서류에 이르는 세세한 사항을 결정하고 변경하는 것까지 경제부처들과 협의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나, 시행령 입법예고 때는 주무관청이 독립적으로 위촉하도록 했던 할당결정심의위원회와 배출량인증위원회의 전문가 위원들을 관련 부처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위촉하도록 바꾼 것 등도 문제다. 이에 따라 고시 제정을 위한 후속 협의와 실제 시행과정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더욱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일이 앞으로 2년 남은 만큼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 규정에 대한 보완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한국과 달리…영국 산업계 "성장의 색깔은 녹색"

 

00035815_F_0.JPG » 영국 런던 외곽의 비아르이 이노베이션 파크(BRE Innovation Park)에 들어선 친환경 건축물들. 다양한 단계의 혁신적 환경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10채의 시범 주택이 공개되고 있다.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우리나라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산업계가 우리 산업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영국 100대 기업 중 90여개를 포함해 24만여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영국산업연맹(CBI)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영국 정치권에서 ‘녹색이냐, 성장이냐’라는 논쟁이 이어지자, 지난 7월 ‘성장의 색깔(The Color of Growth)’이라는 보고서를 내어 “녹색은 성장을 보완해줄 뿐 아니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녹색’을 위한 방안으로 이들이 제시한 것은 규제완화나 온실가스 감축 비용 경감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에 “애초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수하고,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에 지속적인 신호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의 밑바탕에는 경제가 어렵다고 머뭇거리다가는 저탄소 경제를 목표로 한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이들은 이 보고서에서 “지금의 유럽 배출권 거래제로는 2020년 이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비용효과적으로 충족하는 데 필요한 저탄소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다”며, 영국 정부에 “유럽 배출권 거래제의 미래를 보장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라”고 촉구했다. 영국산업연맹 기업환경국 라이언 켈리 국장은 “영국 산업계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지지하는 것은 탄소세나 직접규제 방식과 달리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 경제적인 감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런던/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유럽 배출권 거래제 설계 참여한 마테스 박사

"산업계 요구 수용 땐 복잡해져, 단순·투명한 규정이 훨씬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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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럽 배출권 거래제의 설계 작업에 참여한 에너지·기후변화정책 전문가인 독일 베를린 외코연구소의 펠릭스 크리스티안 마테스 박사는 지난달 말 사무실을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배출권 거래제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산업계는 여러가지 예외 조항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이것들을 받아들이다보면 제도가 너무 복잡해진다”며 “배출권 거래제는 가능하면 단순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배출권 거래제가 할당량 사후 조정 규정 등이 추가되며 복잡해진 사실을 아는 듯 “단순하고 투명한 규정이 정교하고 복잡한 규정보다 결과적으로 더 공정한 규정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20억t에 이르는 유럽 탄소시장의 잉여 배출권 가운데 15억t은 주로 중국의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통해 공급돼, 품질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배출권”이라며 “국외 상쇄를 질과 양 두 측면을 고려해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배출권 거래제에서 국외 상쇄는 2021년부터 허용된다.
 

배출권 거래제는 본질적으로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량 한도를 줘서 기업들을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는 “기업들을 끌어당기는 정책도 잘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를 추가 감축할 여력이 없다던 독일 철강업체들이 나중에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연구개발비 지원 프로젝트를 공모하자 ‘30% 이상 감축 가능하다’며 신청한 사례를 소개한 그는 “한국도 배출권의 일부를 경매 등의 방식으로 유상할당해 확보한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해 기후·에너지 정책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베를린/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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