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논에 물 대 생명 공간 늘리자

조홍섭 2009. 01. 23
조회수 48698 추천수 0
새들 찾아와 놀고, 덩달아 관광객도 북적
지하수 채워주고 강바닥 적셔 생물 ‘삶터’

 
 
논은 인공습지다. 물이 고여 있는 땅이니 당연히 습지다. 벼를 키우기 위해 물을 채워놓은 논에서는 여름 내내 습지가 가진 기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린 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무논에서 썰매 타기를 즐기며 긴 방학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 썰매 타기는 더 이상 매력이 없는 놀이이기도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제 겨울 무논이 별로 없다. 겨울 논은 더는 습지라 부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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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겨울에 물을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면 일부 논에 물을 대는 일을 다시 한 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물 사정이 좀 어렵다고 하더라도 겨울 논을 생명의 공간으로 늘릴 여유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이렇다.
 
겨울에 남아도는 물을 논에 댄다면 지하로 들어가는 물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말라가는 옛 우물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 먼 남녘 전남 장흥 방촌리의 공동 우물도 말라버린 지 오래 되었고, 경북 의성 사촌리 만취당과 경남 함양 개평리 정여창 고택, 전북 정읍 오공리 김동수 고택, 순천의 낙안읍성 동네 우물까지 말라 비틀어져 쓰레기 통으로 바뀐 모습을 드러냈다. 전국 곳곳의 지하수가 낮아지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말라가는 지하수를 적시자면 땅속으로 퍼내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겨울 무논은 땅속으로 물을 채우는 좋은 통로가 된다. 채워진 지하수는 말라가는 강바닥을 적셔줄 잠재력이다. 그 물은 물에 사는 많은 생물의 살 공간을 넓혀주고 농사철에는 논을 적셔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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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물대기는 새를 불러오는 효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추수가 끝난 다음 논에 물을 대었더니 찾아오는 철새가 늘어났다. 철새를 위해서 그러했던 것은 아니고 가을걷이가 끝나고 남은 볏짚을 처리하자고 해봤던 일이다. 처음에는 볏짚을 태웠더니 공기가 오염되는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면, 논에 둔 채 빨리 썩히는 것도 방법이라 물기를 촉촉이 적셔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하고자 겨울에 물을 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새들이 많이 찾아와 볼거리가 생겼다. 일본의 논에서는 그렇게 찾아오는 철새를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니 한발 늦었지만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겠다.
 
물을 댄 겨울 논에 철새가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촉촉이 젖은 짚을 이용하여 더 많은 벌레와 미꾸라지와 같은 생물들이 겨울을 나면서 먹잇감이 되는 일도 있을 듯하다. 겨울 내내 마른논과 물이 차 있는 논이 자아낼 수 있는 생물서식 공간은 다를 것이다.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일을 하는 기관이나 사람은 물을 댄 논의 생물다양성 증가 효과를 한번쯤 검토해보는 것이 어떨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철새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무척추동물들이 서식하는 데 적절한 짚 처리와 물대기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정부와 농부, 환경보호 운동가들이 손을 잡고 노력을 하고 있단다.
 
어차피 겨울 논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쉬고 있다. 차가운 논바닥일망정 생명이 숨 쉬게 물을 대고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겨울 무논을 관광요소로 활용할 길은 없을까? 얼음지치기를 하는 논바닥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증을 일으키고 들여다보는 활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 2004년 필자가 출간한 <흐르는 강물 따라>에 있는 내용을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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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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