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억새밭 불놀이, 해충만 태웠나

조홍섭 2009. 02. 18
조회수 63421 추천수 0
비에 영양소 품은 흙 씻겨가 강 부영양화 촉진
유기물 탄소·이로운 생물도 해치워 ‘득보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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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화왕산 억새밭 태우기 행사는 무고한 인명을 잃는 참사를 낳았다. 서울 미사리 갈대밭 태우기 행사에도 불안한 요소가 있다. 전통 풍습의 유지는 기대가 되는 일지만 시대가 달라진 만큼 새롭게 조명했어야 할 때가 늦어진 셈이다. 과거에는 즐길 만한 일이었을지언정 이제 새로운 판단 근거를 더 마련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풍습이다.
 
먼저 글에서 말했듯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추수를 마치고 남은 짚을 태워버리던 관행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짚이 타면서 지역 공기가 오염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 억새밭과 갈대밭을 태울 때도 당연히 주위 공기는 나빠진다. 말 많은 환경호르몬 다이옥신도 만들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불태움의 부산물들이 공기로 물로 또 생물로 전달되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태움은 땅 속으로 오래오래 저장될 잠재력을 지닌 유기물 탄소를 일시에 이산화탄소로 바꾼다. 화석연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던 과거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저 탄소(실제는 저 이산화탄소) 정책을 주장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여건과 어긋나는 점이 분명히 있다.
 
더구나 만물이 태동하기 전에 비가 오면 불탄 지역에서는 많은 양의 영양소가 씻겨서 강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풀이나 나무들은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재로 변하면 물에 녹을 수 있는 물질들이 늘어난다. 많은 강과 호수에서 부영양화가 일어나는 오늘의 현실에는 이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풀밭을 태우는 것은 우리의 귀중한 수자원 위치에서 보면 마치 배가 잔뜩 부른 애에게 떡을 더 먹이는 꼴이다.
 
물론 불태움은 식물로 이루어진 땅 옷을 벗겨버려 더 많은 토사를 유출시킨다. 이 토사는 영양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영양소를 수계로 옮겨 놓는다. 이러한 작용들은 모두 수계의 부영양화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또한 토사들은 하류에 있는 강과 호수를 메우는 데도 한 몫하리라.
 
비가 올 때 유기물이 넉넉한 흙은 빈틈이 많아 땅 속으로 많은 물이 스며든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오기 시작해도 자연생태계의 땅 위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시간은 지연된다. 그러나 불을 태운 풀밭에서는 유기물이 흙으로 섞이지 않고 소실되기 때문에 땅 속으로 스며드는 빗물의 양이 줄어든다. 따라서 비가 오면 금방 땅 위로 흐르는 물이 생긴다. 같은 이유로 땅 위로 흐르는 물(지표 유출수)의 총량도 늘어난다. 땅 위로 흘러가는 물이 늘어나니 많은 양의 표토가 침식된다. 지금 소개할 마땅한 우리 자료가 없지만 남의 연구결과를 보면 당연히 따라올 결과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태운 초지와 태우지 않은 초지를 비교한 보고 자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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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은 해충을 선택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로운 생물들도 무자비하게 해치운다. 음력 정월 첫 쥐날에 쥐를 쫓는다 하여 논둑이나 밭둑을 놓은 쥐불도 때와 곳에 따라 해충보다 거미와 같은 해충의 천적들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눈에 쉽게 띄는 큰 동물도 그렇지만 풀섶에서 겨울을 나는 소형동물과 곤충 그리고 미생물들의 피해, 그리고 그들이 베푸는 생태계 서비스가 축소되는 피해가 대단히 클 수도 있다.
 
이제 불놀이 관광의 경제적인 이득과 함께 우리가 지불하게 될 대가도 찬찬히 따져봐야겠다. 우선 이번 겨울 불태워 버린 억새밭과 갈대밭에 비가 올 때 나가보자. 땅을 씻어가는 물길이 생기지나 않는지 한 번 정도 들여다보자. 더 나아가 풀밭의 일부에서 태운 경우와 태우지 않은 경우에 나타나는 토양 특성과 지표 유출수와 지하수 특성을 살펴보자. 식물상과 포유동물, 미소동물을 포함하는 생물상도 비교해보자. 당연히 환경호르몬을 포함하는 오염물질이 어느 정도 생성되고, 공기와 물, 생물을 통해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인명 피해와 견줄 사안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일은 결코 아니다. 영향들이 쌓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범위로 그리고 더 길게 피해를 안겨줄 수도 있다. 행사가 끝나고 꾸준히 축적되는 환경 영향도 염두에 두고 바람직한 불놀이 행사의 범위와 규모를 찾기 위해 포괄적인 사항들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은 졸저 “흙에서 흙으로”의 일부 내용을 보충하여 쓴 글이다.
 
<참고문헌>
Emmerich, W.E., and J.R. Cox. 1994. “Changes in surface runoff and sediment production after repeated rangeland burns”, Soil Sci. Soc. Am. J., 58:19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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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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