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산~금대봉 계곡 희귀식물들이 밟힌다

조홍섭 200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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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문으로 동호인들 몰려 꽃들 ‘비명’
떼거리 관광객들 무심코 딛는 발길에 ‘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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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손끝의 '위력'=태백산 북쪽에 있는 금대봉(해발 1418m)에서 꽃산행을 하던 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텔레비전 안테나와 비슷한 독특한 꽃 모양이 얼마 전 백두산에서 본 나도범의귀와 꼭 같았다.

 

북한의 부전고원과 두만강 유역 등 추운 곳에만 사는 식물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식물동호인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식물학계엔 보고도 되기 전이었다.

 

연휴 첫날이던 지난 6일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 관리사무소에서 20여명의 사진동호회원들과 환경감시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감시원은 자연훼손을 이유로 촬영용 삼각대 반입을 막으려 했지만 동호회원들은 "그런 규정이 어딨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환경감시원 김병철씨는 "지난 한 달 내내 나도범의귀를 찍으려는 동호인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박사와 함께 나도범의귀 생육지를 찾았다. 모두 100여 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아서 식별도 쉽지 않은 이 식물 주변엔 온통 발자국 투성이었다. 그러나 태백시가 설치한 인공구조물은 나도범의귀의 더 넓은 자생지를 뭉개고 들어서 있었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육지는 모두 합쳐야 40㎡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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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한 발길의 '치명타'=지난 7일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댄 관광객들이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대부분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심코 밟고 다니는 길 가장자리 곳곳엔 희귀식물인 대성쓴풀이 자라고 있었다.

 

이우철 전 강원대 교수가 1984년 학계에 미기록종으로 보고한 이 식물은 몽골과 러시아 캄차카 등 북방계 식물이다. 북한에서도 보고되지 않은 이 식물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금대봉에서 자라는 이유를 학계는 아직 모르고 있다.

 

현진오 박사는 "빙하기가 물러나면서 석회암 지대의 특이한 환경 때문에 북방계 고산식물의 드문 삶터로 남게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관광객을 위한 진입로 공사를 위해 자동차가 드나들면서 이 식물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대성쓴풀은 개망초 등 외래종과 함께 햇빛이 잘 비치는 길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이어서, 외래식물 제거작업 때 한순간에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커 보였다.
 

untitled-5_copy_5.jpg강원도 태백시 대덕산(해발 1307m)과 금대봉 사이의 계곡 4.2㎢는 우리나라에서 좁은 지역에 가장 많은 멸종위기·희귀 식물이 분포하는 곳으로 꼽힌다.

 

환경부(당시 환경처)가 1993년 이 일대를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것도 참꿩의다리·털개불알꽃·홀아비바람꽃 등 한국 특산식물 15종과 털댕강나무·바이칼바람꽃·나도양지꽃 등 희귀식물 16종, 대성쓴풀·한계령풀·나도파초일엽·가시오갈피·개병풍 등 법정보호종이거나 그에 준하는 특수식물이 자생하고, 꼬리치레도롱뇽과 도마뱀의 집단서식지가 발견되는 등 생태가치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7년 이 보전지역의 관리가 강원도로 이양되고, 태백시가 도비 지원을 받아 실무를 맡은 뒤부터 애초 '절대보전' 취지는 변질되고 있다.

 

강원도는 이곳에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4월 타당성 검토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모두 30억원의 국비를 들여 생태탐방로, 야생식물 학습장과 증식장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위국진 태백시 환경보호과장은 "연간 6만명이나 탐방객이 찾아온다"며 "자연을 보존하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시설을 갖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이 사업의 목적을 좀 더 분명하게 "자연생태자원의 보전은 물론 지역 학생들의 현장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주민의 소득도 증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현진오 박사는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애초 보전과 연구가치가 큰 좁은 지역을 절대 보전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라며 "지정 취지와 어긋나는 이용계획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자연환경보전법에서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학술적 연구가치가 큰 지역" 또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및 도래지 등으로서 보전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지역"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 보전과 이용을 모두 추구하는 국립공원보다도 더 엄격히 보전해야 하는 곳이다.

 

대덕산·금대봉에 탐방객이 몰리는 이유는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가 위치하는데다 '산상화원'으로 일컬어질 만큼 국내 최고의 야생화 답사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봄이면 산나물 채취꾼들이 몰려든다.

 

주말엔 400~500명, 성수기엔 1천명 이상의 탐방객이 몰리는데도 이를 관리하는 인원은 계약직 직원 5명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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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숲 해설사이자 식물모니터링 담당자인 김부래씨는 "희귀식물을 채집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관리자들이 이를 막는 것은 애초에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태백/글·사진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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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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