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 신도 탐내는 절경
<3부> ⑤ 원형의 섬, 인천 굴업도
20m 높이 절벽 3~5m 깊이 파낸 120m ‘터널’
비밀은 섬 동쪽 커다란 바다 밑 골짜기에 있다
민어 파시가 열려 불야성을 이루던 곳, 땅콩농사와 목축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외딴 섬, 핵폐기장 후보지로 사회적 논란이 불붙던 곳, 그리고 이번엔 대기업의 골프장 예정지로 시민단체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곳….
인천 앞바다의 작은섬 굴업도는 서로 연결이 쉽지않은 이런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히는 굴업도는 최근 섬의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예고되면서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이 빚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이 주목받고 있다.

절벽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 눈길 압도
지난 12~13일 지형학자 이상영 박사(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의 해안지형을 둘러봤다.
굴업도 남쪽의 딸린섬인 토끼섬에 들어서자 절벽을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가 눈길을 압도했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화산재와 암석조각이 굳어 생긴 약 20m 높이의 절벽을 3~5m 깊이로 우묵하게 파낸 ‘터널’이 약 120m 길이로 펼쳐져 있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이런 지형을 깎아낸 주인공은 놀랍게도 소금이다.
궁금증을 풀 단서는 굴업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백성만 해양호 선장은 “10~15m이던 수심이 굴업도 동쪽에 가면 갑자기 80~90m로 떨어지는 커다란 해저 골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해에서 이런 수심은 외해인 홍도나 흑산도에 나가야 나온다. 인천에서 8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굴업도 인근에 이런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은 거대한 단층이 2~4개 지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섬을 어렵게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포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상영 박사는 “해저 골짜기는 여름철 주변보다 찬 물이 조류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한다”며 “찬 바닷물이 더운 공기와 만나 짙은 안개를 발생시키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어울려 바위를 그야말로 녹여낸다”고 말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 빚어낸 것과 비슷
이 박사는 찬 조류 말고도 굴업도가 주풍향인 서풍과 남동풍을 병풍처럼 가로막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해, 섬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화학적 침식이, 서쪽에서는 물리적 침식이 우세한 독특한 지형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를 빚어낸 것과 비슷하다.
섬의 서쪽 사면은 동쪽보다 건조하고 온도가 높은데다 파도가 두드리는 힘을 받아 바위가 절리를 따라 무너져 내려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서쪽을 향한 목기미 해안에는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이루거나, 절벽에서 떨어진 응회암 덩어리가 거대한 너덜처럼 해안을 메꾸기도 한다.

반면,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습도와 소금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쪽 해안에선 바위가 부식돼 빵껍질처럼 부풀어오르고 벌집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파도와 소금 중 어느 쪽이 힘이 셀까. 이 박사는 “토끼섬에서는 침식된 지형의 규모로 볼 때 바닷물 속이나 공기속의 소금이 우위”라며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굴업도는 깎여 사라지는 바위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얻는다. 한강 하구에서 공급돼 덕적군도 일대에 방대한 양이 쌓여있는 모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곳에 따라서는 사막화 현상을 빚기도 하다. 덕분에 민어 어장이 붕괴된 뒤 땅콩농사가 주민을 먹여살렸다.

바람에 모래가 날려 쌓인 목기미 해안의 사구는 소사나무와 찰피나무 숲을 잠식하며 확장하고 있었다. 이상영 박사가 측정한 결과 사구 경계 부근의 모래깊이는 지난 5달 동안 26㎝ 높아졌고, 사구는 숲쪽으로 2m 전진했다. 사구가 만 안쪽 바람 통로에 자리잡았고, 바깥 바다에서 모래가 무제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천혜의 해안경관 잘 간직해 학술적 가치가 높아”
모래밭이 바다를 가른 목기미 해안의 연륙사빈에서는 모래가 불과 2~3년만에 전봇대 꼭대기 2m 밑까지 쌓이는 가공할 퇴적량을 보이기도 한다. 1998년에 만든 콘크리트 방파제가 모래 퇴적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해안에서 드러났듯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해안시설은 모래밭이 씻겨나가고 시설이 붕괴하는 침식을 피하지 못했다. 굴업도 큰마을해변은 자연해안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폭 300m의 완만한 모래해변은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잠재우는 자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굴업도는 약 8천만~9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 격렬한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밀치고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형성했지만 아직 봉합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고운 화산재가 쌓이다가 돌연 직경 10m에 이르는 암석들이 콘크리트 반죽처럼 버무려진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 거듭된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8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굴업도 해안지형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섬 전체가 천혜의 해안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보전과 학술적·교육적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굴업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20m 높이 절벽 3~5m 깊이 파낸 120m ‘터널’
비밀은 섬 동쪽 커다란 바다 밑 골짜기에 있다

인천 앞바다의 작은섬 굴업도는 서로 연결이 쉽지않은 이런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히는 굴업도는 최근 섬의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예고되면서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이 빚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이 주목받고 있다.

절벽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 눈길 압도
지난 12~13일 지형학자 이상영 박사(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의 해안지형을 둘러봤다.
굴업도 남쪽의 딸린섬인 토끼섬에 들어서자 절벽을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가 눈길을 압도했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화산재와 암석조각이 굳어 생긴 약 20m 높이의 절벽을 3~5m 깊이로 우묵하게 파낸 ‘터널’이 약 120m 길이로 펼쳐져 있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이런 지형을 깎아낸 주인공은 놀랍게도 소금이다.
궁금증을 풀 단서는 굴업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백성만 해양호 선장은 “10~15m이던 수심이 굴업도 동쪽에 가면 갑자기 80~90m로 떨어지는 커다란 해저 골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해에서 이런 수심은 외해인 홍도나 흑산도에 나가야 나온다. 인천에서 8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굴업도 인근에 이런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은 거대한 단층이 2~4개 지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섬을 어렵게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포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상영 박사는 “해저 골짜기는 여름철 주변보다 찬 물이 조류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한다”며 “찬 바닷물이 더운 공기와 만나 짙은 안개를 발생시키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어울려 바위를 그야말로 녹여낸다”고 말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 빚어낸 것과 비슷
이 박사는 찬 조류 말고도 굴업도가 주풍향인 서풍과 남동풍을 병풍처럼 가로막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해, 섬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화학적 침식이, 서쪽에서는 물리적 침식이 우세한 독특한 지형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를 빚어낸 것과 비슷하다.
섬의 서쪽 사면은 동쪽보다 건조하고 온도가 높은데다 파도가 두드리는 힘을 받아 바위가 절리를 따라 무너져 내려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서쪽을 향한 목기미 해안에는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이루거나, 절벽에서 떨어진 응회암 덩어리가 거대한 너덜처럼 해안을 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도와 소금 중 어느 쪽이 힘이 셀까. 이 박사는 “토끼섬에서는 침식된 지형의 규모로 볼 때 바닷물 속이나 공기속의 소금이 우위”라며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굴업도는 깎여 사라지는 바위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얻는다. 한강 하구에서 공급돼 덕적군도 일대에 방대한 양이 쌓여있는 모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곳에 따라서는 사막화 현상을 빚기도 하다. 덕분에 민어 어장이 붕괴된 뒤 땅콩농사가 주민을 먹여살렸다.

“천혜의 해안경관 잘 간직해 학술적 가치가 높아”
모래밭이 바다를 가른 목기미 해안의 연륙사빈에서는 모래가 불과 2~3년만에 전봇대 꼭대기 2m 밑까지 쌓이는 가공할 퇴적량을 보이기도 한다. 1998년에 만든 콘크리트 방파제가 모래 퇴적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해안에서 드러났듯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해안시설은 모래밭이 씻겨나가고 시설이 붕괴하는 침식을 피하지 못했다. 굴업도 큰마을해변은 자연해안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폭 300m의 완만한 모래해변은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잠재우는 자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굴업도는 약 8천만~9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 격렬한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밀치고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형성했지만 아직 봉합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고운 화산재가 쌓이다가 돌연 직경 10m에 이르는 암석들이 콘크리트 반죽처럼 버무려진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 거듭된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8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굴업도 해안지형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섬 전체가 천혜의 해안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보전과 학술적·교육적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굴업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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