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공론화, 우리 미래는 우리가 결정한다
영화로 환경읽기 25. '남한산성'
영화가 슬픈 건 인조 굴욕 아닌 멋대로 정한 백성 운명
공론화 결론 아쉽지만 엘리트 독점 깨뜨린 것 의미

김훈이 쓴 ‘남한산성’을 영화화한 작품이 얼마 전 개봉해 화제를 모았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1636년 청나라의 공격으로 발생한 병자호란 당시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47일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는 갈등하는 인조, 굶주리는 군사, 억울한 백성, 그리고 진심으로 나라를 생각하거나 비겁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신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의 상반되는 주장과 인조(박해일 분)의 갈등이다.
청의 대군이 쳐들어 왔고 조선 조정은 황급히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채로 조선이 명이 아닌 청과 새로운 군신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한다. 때는 겨울이고 성안의 식량은 줄어간다. 추위에 떠는 병사들의 어깨에서 빼앗은 가마니는 말의 먹이가 되고, 다시 말은 굶주린 병사들의 먹이가 된다. 임금은 “식량을 아껴서 오래 먹이되 너무 아끼지는 말라”는 공허한 명을 내릴 뿐이다. 전투에 패하고 도움의 손길은 멀다.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순간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조판서 최명길은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청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친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목숨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어떻게든 살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뜻이다. 그는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는 말로 임금을 설득하려고 한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목숨보다 대의가 중요하므로 오랑캐 청과 끝까지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社稷)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모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임금의 입을 쳐다본다. 영의정 김류(송영창 분)가 쐐기를 박는다. “전하께서 결정하시면 저희는 따르겠나이다.”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영화 ‘남한산성’에서 크게 두드러진 장면들은 의사결정 과정과 관련된다. 목숨을 중히 여기는 최명길의 주장과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상헌의 논리는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결정은 최종적으로 임금이 한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역사 속의 인조는 오랑캐라고 여겼던 청의 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치욕을 겪어야 했지만 백성의 목숨을 살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영화 속 장면을 더듬어 보자.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은 임금과 중신들이 있는 ‘닫힌 방’이다. 크게는 화친을 할지 척화를 할지에 대한 문제부터 정보를 더 수집할지, 사신을 보낼지, 원군을 요청할지, 누가 편지를 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치열한 주장과 반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는 온 나라에 미치고, 온 백성들의 목숨을 좌우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장치는 찾아볼 수 없다. 서날쇠(고수 분)가 낸 가마니 아이디어가 김상헌을 통해 임금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그건 장치가 아니라 우연이었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의사결정을 당시 임금과 중신, 소위 엘리트 집단이 독차지했다. 백성들은 굶어 죽을지 칼에 베여 죽을지 전전긍긍하지만, 그 걱정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전달할 통로가 없었다. 임금과 중신들이 백성의 안위를 고려하는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명을 섬길지 청을 섬길지에 대한 당위의 거름망을 거쳐야 했다. ‘남한산성’이 슬프게 다가온 이유는 군사들이 처참히 죽어서도, 인조가 머리를 조아려서도 아니었다. ‘그들의 결정’이 백성들의 운명을 함부로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중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은 1636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정책 결정 속에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엘리트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고 대다수의 시민(백성·민중·국민)이 따르도록 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년 이상 영향을 미치고, 한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를 넘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은 보다 다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핵발전소 건설 이야기다.
다행히 이번 새로운 정부는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지을 것인지 또는 중단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사결정 방식을 채택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또는 중단 여부를 정하는 데 ‘공론화’ 과정을 통해 나온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따르면 공론화란 “특정 공공정책이 초래하는 혹은 초래할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전문가, 일반시민 등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하고 확률 추출을 통해서 2만여 명의 시민을 뽑고, 그중에서 시민참여단 500명을 구성한다. 시민참여단은 관련 자료를 보고 듣고 말하며 숙의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그 결과는 정부에 전달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한 달간의 숙의(熟議) 과정을 포함하여 약 3개월이 걸렸고, 지난 10월 20일 정부에 권고안이 제출됐다. 4차례에 걸친 시민참여단 의견 조사에서 4차 조사의 결과는 ‘건설 재개(59.5%)’ 의견이 ‘건설 중단(40.5%)’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와 별도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원자력발전 축소(53.2%) 의견이 원자력발전 유지(35.5%)나 확대(9.7%)보다 많았다(4차 조사). 즉,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중단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공감하거나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크고 작은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수 엘리트만 독점하던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회가 일반시민에게 열렸고 그것이 한층 성숙한 사회적 합의 모습이라는 점은 많은 이들이 수긍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결정하는 자리에 우리가 참여한 것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은 앞으로 이루어질 많은 환경정책 결정 과정에 참고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 온 정책 결정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더 참여적인 방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론화 시민참여형 조사의 ‘결과’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 과정을 바꾸었다면 다음엔 결과를 바꾸는 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건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 힘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최명길에게 이렇게 말한다. “새롭게 되려면 임금, 백성, 사대부 모두 바뀌어야 새로운 세상이 온다.” 모두 바뀌어야 새로운 결정이 나올 수 있다.
글 김희경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경기도환경교육센터 과장, 사진 싸이런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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