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가마우지는 어떻게 날지 못하게 됐나
게놈 분석 결과 사람에 심각한 발달장애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 축적
천적 없고 먹이 풍부해 비행 불필요…몸집 커지고 부력 줄어 잠수에 유리하기도

가마우지는 물속을 잠수해 물고기나 문어 등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물새이다. 끝에 갈고리가 달린 부리와 몸 뒤쪽에 달린 물갈퀴 발로 물속에서 재빨리 헤엄치며 먹이를 사냥한다.
만일 먹이나 번식지를 찾아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고 천적도 없다면 가마우지는 어떻게 진화할까. 세계의 가마우지 40종 가운데 유일하게 날개가 없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가 그 답을 제공한다.
이동과 도피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다면 비행은 가장 먼저 포기할 대상이다. 날개는 공기를 머금어 부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잠수하는 데 힘이 든다. 날지 않는다면 체중을 걱정 없이 늘릴 수도 있다. 사실 새들은 기회만 있으면 비행을 포기했다. 26개 과의 조류가 반복해서 비행능력을 잃는 진화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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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1000㎞ 떨어진 적도의 대양섬 갈라파고스는 그런 조건을 갖췄다. 아메리카 본토에서 표류한 가마우지는 갈라파고스에서 200만년 동안 비행능력을 잃은 고유한 가마우지로 진화했다.
천적이 없고 차고 영양분 많은 훔볼트 해류가 솟아올라 연중 풍부한 물고기가 있는 페르난디나섬과 이사벨라섬 서쪽과 북쪽 해안에서 갈라파고스가마우지는 평생 수백m 해안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날개는 날 수 있는 길이의 3분의 1로 퇴화했고 가슴 근육도 빈약해졌지만, 몸길이는 최대 100㎝, 몸무게는 5㎏까지 나가는 세계 최대 가마우지가 됐다.

1835년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를 탐사했을 때 찰스 다윈은 이 가마우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새들이 비행능력을 잃는 것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유력한 사례로 삼아 진화론을 펼쳤다.
과학자들은 다윈이 상상도 못 할 분자생물학이란 도구를 가지고 갈라파고스가마우지가 어떻게 비행능력을 잃는 진화를 했는지를 밝혀냈다. 놀랍게도 이 가마우지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사지 장애를 일으킬 돌연변이를 축적한 결과로 그런 진화를 이룩했다.
알레한드로 부르가 캘리포니아대(UCLA) 박사후연구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갈라파고스가마우지와 3종의 가까운 계통 가마우지의 유전체(게놈)를 비교 분석한 결과 갈라파고스가마우즈가 비행능력을 잃는 데 관여한 핵심 유전자는 CUX1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유전자는 새와 사람 등 포유류에도 있는데, 사람의 경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다지증, 합지증, 팔다리 이중 골격 등 심각한 발달장애를 일으킨다. 갈라파고스가마우지는 이 돌연변이 결과 날개와 가슴 골격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게 됐다.
이번 연구가 중요한 까닭은 비행능력을 잃은 시기가 진화론적으로 매우 가까운 과거인 데다 날 수 있는 가까운 혈통이 아직 살아있어 진화과정을 유전적으로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조와 키위도 나는 능력을 잃었지만 5000만년 전의 일이고, 가까운 혈통은 이미 멸종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갈라파고스가마우지가 비행능력을 잃는 시나리오는 어떤 것일까. 최초로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가마우지는 연중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이동의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나는 것이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게 되자 비행을 가로막는 돌연변이가 차츰 유전자 풀 속에 축적됐고 결국 비행능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수동적인 시나리오와 달리 적극적으로 비행능력 상실을 선택하는 시나리오도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날개가 짧아지면 잠수할 때 부력이 줄어들고, 체중을 늘릴 수 있으면 더 많은 산소를 저장해 오래 잠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비행하지 않는 개체가 적극적으로 자연의 선택을 받아 더 많을 자손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논문 교신저자인 레오니드 크루글리아크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는 “두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 바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처음 도착한 가마우지가 수동적으로 비행능력을 잃고 이어 적극적인 선택을 통해 날개가 계속 줄어들 수 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갈라파고스가마우지는 서식지가 워낙 한정된 데다 정주형 삶을 꾸려나가기 때문에 기후변화 등으로 바다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멸종할 우려가 크다. 2011년 조사에서는 1679개체가 확인됐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취약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urga et al, A genetic signature of the evolution of loss of flight in the Galapagos cormorant, Science 356, eaa 3345 (2017), 2 June 2017, http://dx.doi.org/10.1126/science.aal334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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