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도 고양이도, 포유류 '큰일 보기’ 12초의 법칙
코끼리와 고양이 몸무게 1천배 차이나지만 배변 속도는 동일
큰 동물일수록 직장 점막층 두꺼워…배설은 치약보다 물미끄럼틀

“몇 년 동안 아기 기저귀를 갈고 아이 배변훈련을 시키면서 똥 분석 전문가가 됐습니다.”
미국 조지아공대 기계공학 및 생물학과 교수인 대만계 미국인 데이비드 후는 포유류가 대변 배설에 걸리는 시간이 몸집의 크기와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배변의 일반이론’을 발견한 배경을 연구자 소식지인 <대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실 그와 연구진이 한 일 가운데는 애틀란타 동물원에 가서 포유류 34종이 배변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대변을 수거해 밀도와 점도를 측정하는 일이 들어있어, 육아 경험은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변의 형태와 크기 등을 조사를 하면서 코끼리 같은 초식동물의 똥은 물에 뜨고 사자 등 육식동물의 똥은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동물의 똥을 냄새가 심한 순서대로 늘어놓는다면 호랑이가 가장 앞이고 맨뒤에는 코뿔소와 판다가 위치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조사가 계속되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몸집이 클수록 대변의 양은 늘어났지만 배변 시간은 몸집과 무관하게 약 12초로 비슷했다. 배변 시간은 배설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부터 땅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으로 잡았다.
다시 말해 큰 동물은 많은 배설물을 빠른 속도로 내보낸다는 얘기다. 측정 결과 코끼리의 배변 시간은 초속 6㎝로 개보다 6배나 빨랐다. 사람은 그 중간인 초속 2㎝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의 길이가 40㎝인 코끼리나 4㎝인 고양이나 똥을 누는 시간은 12초로 비슷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연구자들은 우선 배설물과 그것을 처리하는 소화관을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했다. 포유류는 평균적으로 대변을 두 덩이로 나눠 누었는데, 길이는 직장보다 2배 길었다. 이제까지 대변은 직장에 모여있다 배설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이 연구로 직장과 그 앞인 결장에 보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대변의 물성 등에 비춰 대변은 힘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져 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배변 때 밀어내는 압력이 포유류에 모두 비슷했는데, 그 정도의 힘 만으로 원활한 배설은 이뤄지지 못한다고 보았다. 비유한다면 포유류의 배설기관은 치약튜브가 아니라 수영장의 물미끄럼틀과 비슷하다.

배변 시간이 일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직장 안에 있는 점막이다. 음식이나 배설물을 월활하게 이동하기 위해 포유류의 식도와 직장 안쪽 벽에는 점막층이 있다.
측정 결과 포유류의 직장 점막층 두께는 큰 동물일수록 두꺼웠다. 대변 표면에는 직장 점막층 일부가 남아있다. 큰 동물의 대변이 긴 창자를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 있는 건 점막층이 두껍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이 만든 배변 수학모델에 따르면, 설사 때 배변 속도는 사람의 경우 0.5초로 거의 순간적이다. 또 변비일 때는 대변이 점막을 흡수하거나 감염 등에 의해 점막층이 감소해 배변에 어려움을 겪는다. 극단적인 예로 점막층이 아예 없을 때 변비인 사람이 배변하는 데는 이론적으로 524일이 걸리고, 배에 최대 압력을 가해도 6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점막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수치이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배변 시간이 모든 포유류에서 일정하게 된 데는 진화적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배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소화관의 규격과 점막 분비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냄새를 풍기며 어정쩡한 자세로 오래 있는 것은 포식자에게나 좋은 일이다. 이 연구는 영국 왕립화학회가 발행하는 과학저널 <부드러운 물질> 온라인판 최근호에 실렸다.
한편, 이번 연구를 한 조지아공대 연구진은 2015년 <미국립학술원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거의 모든 포유류가 소변을 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21초로 일정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 J. Yang, M. LaMarca, C. Kaminski, D. I. Chu and D. L. Hu, Hydrodynamics of Defecation, Soft Matter, 2017, DOI: 10.1039/C6SM02795D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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