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나방 애벌레는 피부로 ‘본다’

조홍섭 2019. 08. 23
조회수 6685 추천수 1
피부로 빛 감지해 주변 환경 속 숨어들어…오징어, 넙치와 비슷한 능력

p1.jpg » 주변 환경의 색깔에 몸의 색깔을 맞추어 숨는 회색가지나방 애벌레. 피부로 빛을 감지해 색깔을 바꾸는 능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리크 서케리 제공.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대부분의 동물과 달리 일부 동물은 피부로도 주변 환경을 감지해 위장하는 능력을 갖췄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반구 온대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회색가지나방 애벌레가 그런 예다.

회색가지나방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사례로 교과서에 나오는 ‘공업 암화’ 현상의 주인공이다. 흰 바탕에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무늬가 난 이 나방은 낮 동안 지의류가 자라는 나무줄기에 숨어 지내는데,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대기오염으로 지의류가 죽고 나무줄기가 검댕으로 오염돼 어두운 빛깔이 되면서 새의 눈에 잘 띄게 됐다.

p2.jpg » 회색가지나방의 옅은 표현형(위)과 진한 표현형. 대기오염이 심할 때는 옅은 나방이, 개선됐을 때는 진한 나방이 주로 새들의 먹이가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결국 어두운 빛깔의 회색가지나방만 살아남아 번성했지만, 대기환경 관리가 이뤄져 나무줄기가 옅은 빛깔로 돌아오면서 다시 밝은 빛깔의 가지나방이 우세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가지나방은 나무에 앉은 뒤 의도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무늬의 나무껍질로 이동하는 행동도 우리나라에서 발견됐다(▶관련 기사: 나무껍질에 교묘히 숨어드는 나방 의태의 비밀 밝혀져).

이 나방의 애벌레도 어른벌레 못지않은 은폐 능력을 자랑한다. 가지나방 애벌레는 이름처럼 나뭇가지의 형태와 색깔을 흉내 내 감쪽같이 숨어든다.

이런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가지나방 애벌레는 주변 나뭇가지의 색깔을 어떻게 알까. 눈이 아니라 문어나 카멜레온처럼 피부에서 주변 환경의 색깔을 감지하는 것은 아닐까.

p3.jpg » 자작나무(왼쪽)와 버드나무에 숨은 회색가지나방 애벌레의 의태. 나뭇가지의 형태와 색깔에 몸을 맞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에이미 이콕 영국 리버풀대 박사과정생 등 영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 생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회색가지나방 애벌레가 눈을 쓰지 않고 피부로 빛을 감지해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의 색깔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절지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신 저자인 이리크 서케리 리버풀대 교수는 연구의 동기를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회색가지나방은 새에게 목격돼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흉내 냅니다. 애벌레가 숨게 될 나뭇가지는 저마다 색깔과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애벌레는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런 일을 정확하게 하기에는 애벌레 눈의 구조가 너무 단순하고 위치도 어색했습니다.” 실제로 가지나방 애벌레는 나뭇가지와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자리 잡아, 눈이 가지를 잘 볼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p4.jpg » 검은 아크릴 페인트로 눈을 가린 회색가지나방 애벌레. 에이미 콕 제공.

연구자들은 애벌레가 눈 아닌 피부로 보는지 알아보기 위해 애벌레의 눈에 검은 아크릴 페인트를 칠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눈을 가린 애벌레와 가리지 않은 애벌레를 색깔이 다른 인공 나뭇가지에 올려놓았다. 

놀랍게도 눈을 가리든 가리지 않든 옅은 색깔의 나뭇가지에 오른 애벌레는 옅은 색을 띠었고, 진한 색 나뭇가지에 오른 애벌레는 진한 색깔이 됐다. 눈을 가려도 피부로 주변 나뭇가지의 색깔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p5.jpg » 눈을 가리지 않은 애벌레(위)와 가린 애벌레가 다양한 색깔의 나뭇가지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알려주는 실험 결과. 거의 차이가 없다. 에이미 이콕 제공.

오징어나 넙치, 카멜레온 등이 순식간에 자신의 피부 무늬와 색깔을 주변 환경과 일치시키는데 견줘 회색가지나방 애벌레가 나뭇가지 색깔을 흉내 내는 데 며칠이 걸린다. 연구자들은 좀 더 빠른 반응을 보기 위해 추가 실험을 했다.

애벌레를 핀셋으로 자극해 새가 쪼는 듯한 위험한 상황을 조성한 뒤 애벌레가 어떤 색깔의 나뭇가지로 도망치는지 알아보았다. 70∼80%의 애벌레가 자기 피부 색깔과 맞는 안전한 나뭇가지로 이동했다. 눈을 가린 애벌레도 마찬가지 비율로 색깔이 맞는 나뭇가지를 향했다.

p6.jpg » 줄무늬를 그려 넣은 인공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가지나방 애벌레 피부에 줄무늬가 나타났다. 에이미 이콕 제공.

이런 능력은 유전자 분석으로도 확인됐다. 시각에 꼭 필요한 단백질인 옵신을 생산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눈에서뿐 아니라 피부에서도 발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피부로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 회색가지나방뿐 아니라 다른 종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my Eacock et al, Adaptive colour change and background choice behaviour in peppered moth caterpillars is mediated by extraocular photoreception, Communications Biology, (2019) 2:286. https://doi.org/10.1038/s42003-019-0502-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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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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