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지식 파는 ’청부과학자’를 믿을 것인가

이동수 2018.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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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이유로 유해화학물질 '사전예방' 가로막아

잘 모를수록 미리 조심하는 것이 피해 막는 근본 해법


05608281_P_0.JPG »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2016년 7월 27일 서울 여의도 옥시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가습기살균제 피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조사에 출석해 사과 발언을 한 뒤 임원들과 함께 자리에 앉고 있다. 옥시를 편드는 내용의 실험보고서를 써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호서대학교 교수는 이듬해 실형이 확정됐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로마제국의 멸망이 왕이나 귀족이 납으로 만든 수도관이나 술잔을 사용하면서 납중독으로 미치게 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피해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1890년대를 거쳐 대략 1920년대부터 다양한 합성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사람들은 각종 암과 수많은 질병으로 사망을 포함하여 심각한 건강피해를 겪어 왔다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500여만 명의 사망에 유해화학물질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피해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단연코 사전예방이다그 이유는 명백하다일이 벌어지고 피해가 분명해지고 나면 그 뒤에 아무리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쉽게 말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는 것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그런 사례이다막을 수 있었던 피해를 키워 이미 확인된 피해자만 해도 수백 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천 명이 넘는데피해가 발생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전체 인명피해의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참사로 특히 많은 어린아이가 죽었으며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질병으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게 됐다날벼락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또한 어떤가꺾이고 스러진 생명이 금전적 보상으로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그런 까닭에 유해화학물질의 관리에서 1980년대 이후 사전예방 원칙(사전주의 원칙, precautionary principle)이 국제적인 기본 방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전예방 원칙은 다른 말로 사전 조심 원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쉽게 말해서 과학적으로 충분히 알거나 입증할 수는 없는 불확실한 상태라 하더라도 후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예견될 때는 원칙적으로 미리미리 조심하자는 뜻이다늦은 밤에 도시의 우범지역을 피하는 것도 사전예방 원칙에 입각한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거기 간다고 강도를 만나 흉측한 일을 당하게 될지 어떨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그럴 가능성은 아예 미리 막는 것이 상책임은 누구나 쉽게 인정할 것이다마찬가지로 유해화학물질이 미래에 발생시킬지도 모르는 악영향을 미리 막자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사전예방 원칙을 법과 제도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추세가 되고 있다나라마다 상세한 내용과 범위 등이 많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공통점은 사전예방 원칙을 지향한다는 점이다그 구체적 방법으로 화학물질과 제품의 등록요건을 위해성(risk)을 중심으로 훨씬 강화하여 확대된 독성요건뿐만 아니라 사용을 통한 노출을 같이 고려하여 적극적인 규제를 하게 됐다는 점도 공통점이다미리 유해성을 최소화한 물질을 시장에 내놓아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법이나 제도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특히 기업의 반대로 그 내용이 축소돼서 애초의 취지가 많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eea.jpg » 산업화 이후 사전예방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례를 분석해 교훈을 정리한 유럽환경청의 보고서 표지.


유해화학물질의 피해를 돌아보고 미래에 다가올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럽환경청(European Environmental Agency)은 과거 유해화학물질 혹은 유해인자로 인한 사람과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수십 건의 사례를 되돌아보며 미리 알아챘더라면 피해를 현저하게 줄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분석을 했다.1,2)


분석사례 가운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몇 가지를 들자면백혈병 유발물질인 벤젠폐암과 더불어 치명적인 폐 질환을 일으키는 석면암을 비롯하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피시비(PCBs), 오존층 파괴물질인 염화불화탄소(CFCs), 휘발유에 섞은 납(유연휘발유), 유기수은으로 인한 미나마타병악명 높은 농약인 디디티유해화학물질 백화점인 담배흡연좀 더 최근의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 등이 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대상물질의 사용에 따라 초기에 항상 문제의 전조나 작은 피해사례가 있었고 그를 주목하여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피해 가능성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또는 돈벌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 경고를 간과하여 피해가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또한 초기의 경고 이후 피해가 커져 큰 문제가 되기까지 보통 10~20년이 걸렸으며 그 후 피해보상은 그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예를 들어 1950년대에 들어 크게 시선을 끌기 시작하여 1956년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일본의 미나마타병에 대한 재정적 보상은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Tomokos_hand.gif » 공장 폐수의 유기수은에 중독돼 발생한 미나마타병 환자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많은 사례가 반복해서 던지는 첫 번째 교훈은 화학물질과 제품이 일단 시장에 나오면 문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조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져 문제가 분명하게 된 이후에야 대응하게 되는데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더 큰 손실을 초래한다그냥 돈으로만 따지더라도 사전예방이 더 경제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자를 악영향에서 온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교훈은 가해자가 확정된 경우조차 가해자는 갖가지 방편을 동원해서 피해보상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지연시킨다는 점이다더욱이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많은 화학물질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낮은 농도에서 장기간에 걸친 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악영향의 종류가 증가하고 있다따라서 원인물질을 분명히 찾아내기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분명히 지목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이 생기고 있다그러니 신속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일반적으로 피해자는 건강이나 경제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피해의 사후처리는 사회정의와 환경정의에도 반한다


사전예방 원칙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화학물질이 무해하다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해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유해성이 따로 입증되지 않으면 보통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그동안의 입장이나 관행을 뒤집어야 한다이는 얼핏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무죄 추정의 원칙(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인정)과는 반대인 것처럼 보이며이 점이 사전주의 원칙을 현실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사실 유해화학물질과 관련해 직접적인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사람들도 보통 무죄 추정의 원칙에 동조하기 쉽다. 즉 유해한 물질을 생산 판매하는 것이 범죄라면범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유해성이 확인될 때까지는 문제가 없는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다그러나 유해화학물질의 문제에서 이런 입장은 신중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앞서 얘기한 것처럼 문제 제기가 일찍 이루어지기 어려워 (문제의 불확실성과 가해자의 방해 때문에적절한 조처를 하기에는 너무 늦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특히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오랜 시간 뒤에야 분명해지고 피해유발 물질도 여러 개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05036031_P_0_.JPG » 담배의 유해성이 분명해지면서 담배갑에 유해성을 알리는 광고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유해성이 제기된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편 기업은 기본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이 결국 이윤의 최대화를 향해 최적화된다이러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꼭 악덕 기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유해성이 분명히 입증되지 않았다면 무해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리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쪽이 쉽고 편하다사전예방을 위해서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다각도로 무해함을 입증해야 하는데무해한 제품을 만드는 것 자체도 전보다 어렵고 큰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도 많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얻을 이윤도 줄거나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이는 돈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지 불분명한 미래의 불확실한 문제를 막기 위해 당장 커다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전예방 원칙이 반가울 리 없고 할 수 있는 한 이를 저지하려고 한다


최대한 돈을 벌고 싶어하는 기업 입장이 전혀 이해되 않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기업들은 돈벌이를 위해 거의 예외 없이 나쁜 짓을 자행해 왔다지난 수십 년간 사실을 왜곡하거나 감추고이미 발생한 초기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짓 약속을 하고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매수했다또한 불확실한 미래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부풀리거나 아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날조된 증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사전예방 원칙은 과도한 규제를 불러와 기업의 개발의욕을 꺾어 기술발전을 방해하며 일자리를 줄인다는 일방적인 주장도 해 왔다이렇게 기업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사전예방 원칙을 무력화하려는 행태를 보여 온 것으로 확인됐다.2) 사전예방에 가장 큰 실행 책임을 지는 기업이 사전 예장 원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가 사전 예장 원칙에 따른 정책을 도입하도록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늘 우리 소비자가 가장 큰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이 인체나 생태계의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일으킬 것인가를 규명하는 일에서 과학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과학자도 과학자 나름이기 때문에 먼저 과학자를 크게 단순화하여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05679154_P_0.JPG » 제4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선정된 백도명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백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밝혀 피해자 배상과 가해자 처벌의 길을 열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 번째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글자 그대로의 과학자이다잘 훈련된 과학자는 어떤 현상에 대해 충분히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분명한 결론을 내린다아직 불확실한 점에 대해 짐작으로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며 만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론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오히려 불확실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이는 과학자로서 마땅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유해화학물질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물질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확실히 밝혀내는 일은 결국은 과학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의사결정을 위해 과학적 평가결과가 일찍 필요한 경우 불확실하다며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시간이 흘러 문제가 커진 다음에야 분명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사후 약방문이다결국 과학적 연구방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두 번째 과학자 그룹의 역할은 훨씬 더 부정적이다이들은 의도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을 변호하는 사이비 과학자들이다이들도 과학 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박사이며 교수이고 논문도 발표하니 겉으로 식별해 내기 어렵다하지만 본질에서는 돈을 받고 가해자를 위해 과학적 지식을 파는 자들이다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사례는 많지만, 특히 유명한 사례가 담배회사와 흡연자 사이의 소송이다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높이 쌓여 있어도 담배회사 쪽의 사이비 과학자들은 유해하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유해하지 않다는 실험결과를 만들어내서 소송을 수십 년간 끌어왔다증거가 많이 있을 때도 이러니 증거가 부족하여 불확실성이 클 때는 이들이 얼마나 활개를 칠 수 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큰 무기는 과학적 불확실성과 그를 악용한 의구심의 확산이다사실 불확실성에 기초한 의구심은 과학의 속성이기도 하다엄격한 잣대를 끊임없이 들이대면 어딘가 불확실한 점이 존재한다이런 과학의 속성과 유해화학물질의 문제에서 특히 사전예방을 위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을 공통분모로 이용해서 사전예방을 막으려는 기업을 위해 과학의 이름으로 손발이 된다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질병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은 분명하다돈만 준다면 사람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와 본질에서 다를 바가 없기에 이들을 청부과학자라 부르며 이들의 일을 제품방어 산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정리하자면 의도적이건 아니건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사전예방의 제도적 정착에 부담되었던 측면이 있었고 이는 앞으로도 금방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환경부 회의 혹은 환경 관련 전문가 회의 등에 참석하며 종종 느끼는 것은 혹시라도 걱정할 필요 없는 환경문제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늘 지배적이라는 것이다시민들을 불필요한 공포에 떨게 할 것을 근심하면서일종의 오류에 대한 걱정인데 물론 오류가 없는 것이 좋다그러나 현실의 불확실성과 제약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차라리 그 반대 방향의 오류를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실제로는 심각할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빠뜨린 문제는 없을까를 지나치게 걱정해서 발생하는 오류가 시민과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서 차라리 낫고 사전예방 원칙에 더 잘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유럽환경청의 조사결과 흥미롭게도 유해성이 걱정돼 미리 규제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공연한 걱정이었던 경우는 다 뒤져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겨우 네 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그 반대 유형의 오류보다 사회적 비용도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특히 환경전문가나 담당 관료는 그런 일이 발생할까 봐 너무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혹시라도 사람과 생태계의 피해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건 아닌지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문헌


1. European Environment Agency, Late lessons from early warnings: the precautionary principle 18962000, Environmental Issue Report No. 22, 2001.

2. European Environment Agency, Late lessons from early warnings: science, precaution, innovation, Environmental Issue Report No. 1, 2013.

3. 데이비드 마이클스, 청부과학, 이마고, 2009. 


이동수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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