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책임, 지금 묻지 않으면 우리 아들딸 떠안아
세대갈등은 계층갈등 감추는 포장…기후변화와 부의 불균형은 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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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유엔총회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고, 녹색성장을 위한 국제연대 포럼인 ‘피포지’(P4G) 정상회의를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파리협정에 충실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기후변화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이러한 연설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국내 150여개의 환경·시민·종교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 45% 감축이 필요하지만, 한국의 2030년 (목표) 계획은 18.5%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또 하나의 국제회의 개최 소식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관련 기사: 문 대통령 “녹색기후기금 공여액 2배로 증액”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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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정작 언론과 세계시민의 주목을 끌어낸 건 미래세대였다. 20~27일 전 세계 139개국에서 진행된 ‘기후 파업’에서 미래세대는 기후변화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성세대의 무책임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했다.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자리에서 하루빨리 기후변화 대책 마련에 나서라고 세계정상을 질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 27일, ‘청소년 기후 행동’ 주최로 열린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 50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하였다.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기후변화 해결에 현재 세계의 운영을 맡고 있는 기성세대가 당장 나서라는 미래세대의 질타에 기성세대가 이제는 더 이상 답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기후변화 책임을 둘러싼 국가간 갈등에 더해 세대간 갈등도 시작되었다.
세대간 갈등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심각하다. 저출산과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을 둘러싸고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1970년 20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부양했던 데 반해 현재는 5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부담하고, 2065년이 되면 1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현재에 비해 미래세대의 부담이 5배나 늘어나는 셈이다.(그림 1)
그림 1. 노년 부양비 추계

출처 : e-나라지표, 노년부양비, * 노년부양비 =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비)÷생산가능인구(15~64세)×100
게다가 현재 청년세대는 취업이나 임금, 진급 기회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박탈감이 큰데, 여기에 더해 노년 부양비 폭탄과 기후변화 부담까지 더해진다니 불만이 언제 터져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기성세대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년부양이 사회보장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즉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현재의 노인을 지금의 기성세대가 개인적으로 부양하고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노년부양비는 과소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세대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자산은 기성세대가 이뤄놓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기성세대가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기후변화를 일으킨 1990년 이후 현재까지는 기성세대의 주장처럼 부를 생산한 시기이기도 하다. 1990년 22.54조 달러였던 전세계 총생산은 2015년 74.84조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고, 우리나라는 1990년 2793억 달러였던 총생산이 2015년 1조 3828억달러로 5배나 늘었다.(그림 2) 물론 이 기간 전세계 탄소배출량은 1.6배 이상,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은 2.4배 이상 급속히 치솟았다.(그림 3)
그림 2. 연도별 세계 총생산액

출처 : 세계은행, 자료 : 구글 퍼블릭 데이터
그림 3.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

출처 : 에너데이터, 세계에너지통계 2019, 이산화탄소배출량
따라서 '탄소만 물려준 것이 아니라 부도 물려준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항변이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이렇게 부를 생산한 기성세대가 사회로부터 받는 노년부양은 미래세대의 몫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생산한 것이라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기성세대가 부를 생산한 것은 맞지만 그 부를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 세계 부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부의 50%는 상위 1% 부자가 가지고 있고 전세계 부의 85%는 상위 10%의 부자가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90%의 시민들은 결국 전세계 부의 15%만을 나누어 가지고 있을 뿐이다. 또 전세계 하위 50%의 시민은 갖고 있는 자산이 전체 부의 1%에 불과하다.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인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이 없어서 하위 50%의 국민은 전체 부 중에 겨우 2%만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이 부를 생산하는 동안 생긴 이산화탄소나 환경오염, 부의 왜곡 등에 제대로 부담을 지우지 않은 결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은 공동의 부담 혹은 대응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의 부담으로 남았다. 모든 세대가 기후변화에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기성세대도 기후변화에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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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국장관이 사퇴했다. 지난 두 달간 조국장관 자녀의 입시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조국장관에서 시작된 자녀 입시문제가 나경원 의원 자녀의 입시문제로 번져가더니 급기야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자녀 입학사정 전수조사를 법제화하겠다고 국회가 나섰다. 대학입시만 공정해지면 우리 사회가 공정성을 갖추기라도 하는 양 온 나라가 기득권층 자녀의 대학입시 비리 캐기에 골몰한 두 달이었다. 이리 파고 저리 파도 얻은 건 다 아는 사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재산이든 학벌이든 직업이든 재력과 권력, 인맥을 통해 세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데 불과하다.
386세대가 직장이든 사회든 요직을 다 차지하고 미래세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와 자식 세대간의 구직경쟁이라던가 하는 말은 사실 기득권층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요란한 세대간 갈등은 사실 계층갈등을 감추는 포장에 불과하다.
이번 기후정상회의를 통해 미래세대는 기성세대가 당장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다. 기후변화를 막아내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누가 부담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오래된 원칙 “공동의 차별적 책임”은 국가 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자식간에 기후변화 책임을 두고, 혹은 부양책임을 두고 싸우고 싶지 않다면 이제 애먼 세대갈등은 접어두고 기득권층에게 부에 따르는 책임과 부담을 제대로 묻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시장의 실패로 인한 환경의 오염과 부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면 미래세대가 기후변화로 인한 부담을 떠안을 필요도 노령인구 부담을 떠안을 필요도 없다.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고 책임을 지지 않은 기득권층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기만 해도 미래세대가 현재세대의 부담을 떠안을 이유도 희망을 갖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금껏 그래왔듯 기후변화와 왜곡된 부를 바로잡는 일을 계속 미루기만 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자식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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