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고 맛도 좋다? 겨울잠 깬 뱀들의 수난시대

김봉균 2018. 03. 14
조회수 123146 추천수 0
좁은 덫에서 서로 짓눌려 죽고, 독사 섞여 풀기도 힘들어
잘못된 보신 문화 여전…인공증식 핑계로 단속도 힘들어

s2-2.jpg » 가을과 봄 이동하는 뱀을 잡기 위해 불법적으로 설치하는 덫에 수백 마리의 뱀이 엉켜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뱀을 구조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센터 직원들은 바짝 긴장합니다. 뱀을 다루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구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파충류 구조를 요청하는 이유는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보통 인가 근처에 머물다 건물 내부나 인공구조물에 잘못 들어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활동성이나 외상 여부를 파악한 뒤 이상이 없다면 적합한 서식 환경에 풀어주면 그만입니다. 물론 파충류도 차량충돌을 포함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긴 하지만, 살아있는 상태여야 구조를 진행하는 센터의 특성상 신고 와 접수로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생명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인 손상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s1.jpg » 구조센터에 신고되는 뱀은 대부분 건물의 내부나 인공구조물에 들어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다. 건물 안에 들어온 유혈목이.

어쨌든 파충류 몇 마리 정도 구조하는 일이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요즘에는 간혹 수백 마리를 구조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녀석들을 살펴야 하는 직원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뱀이 한꺼번에 구조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모든 뱀은 겨울잠을 잡니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부지런히 잠자리를 찾아 이동하죠. 대개 산속의 돌이나 나무뿌리 틈, 낙엽 더미 깊숙한 곳이 녀석들의 겨울을 책임질 보금자리입니다. 하지만 겨울잠으로 자러 가는 길 자체가 모험입니다. 이러한 뱀의 습성을 아는 일부 사람들이 이동 경로를 막고 곳곳에 덫을 놓아 포획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요즘 뱀은 또다시 같은 위기에 놓입니다. 다행히 덫이 등산객이나 밀렵감시원에게 발견되면 구조되어 센터에 들어오게 됩니다만,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포획인 만큼 단속도 쉽지 않으니 이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s2.JPG » 겨울잠을 자는 뱀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뱀 덫. 이 작은 통발에 수십 마리가 비좁게 얽혀 있기도 하다.

이처럼 많은 뱀이 덫에 갇힌 채 구조센터에 들어오면 직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로 얽혀있는 뱀을 풀어내는 일입니다. 정말 수십, 수백 마리의 뱀이 덫 내부에 어지럽게 뒤엉켜 있거든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뱀이 들어있다가 보니 서로의 무게에 짓눌려 죽은 것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중에는 공격성이 강하거나 독을 지닌 종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겠죠.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뱀을 이렇게 많이 포획하는 걸까요?

s3.JPG » 엉켜있던 뱀을 풀어내어 종류별로 분류했다. 이 중 대부분은 짓눌려 죽은 상태였다.

문제의 답은 여전히 존재하는 그릇된 보신 문화에 있습니다.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야생동물을 먹으면 몸에 좋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떠돌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솔깃한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이 몸에 좋다는 얘기는 대부분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합니다. 건강 회복은커녕 오히려 야생동물의 기생충이나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특히 야생동물의 포획과 거래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굉장히 비위생적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s4.jpg » 적발되어 압수된 뱀으로 담근 술. 그릇된 보신 문화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설령 몸에 좋다 한들,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벌어지는 밀렵에 절대 면죄부를 줄 수 없습니다. 뱀 덫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뱀을 포획하는 활동은 대체로 불법이 확실하거든요. 또한 불법적인 포획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죠. 허가받지 않은 이가 야생동물을 포획, 유통, 거래하면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잡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또 이를 사는 사람까지 모두 법을 어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상업적인 목적으로 야생 뱀의 부분적 포획과 인공증식을 허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태어난 뱀은 허가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정되죠. 그렇다 보니 불법성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강원에 머무는 뱀이 산에서 덫을 이용해 포획한 것인지, 인공증식을 통해 번식시킨 개체인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분명히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s5.JPG » 건강원에서 발견되어 압수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구렁이. 현장에서 적발한 담당 공무원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뱀 말고도 수백 마리가 더 있었지만 불법포획 여부를 증명할 수 없어 몰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은 뱀들은 어떻게 될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방송 매체 역시 근거 없는 보신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부추기는 내용을 서슴없이 방송합니다. 은퇴한 운동선수가 현역시절 먹어보지 않은 보신음식(야생동물 포함)이 없다는 발언을 일종의 자랑이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내용을 버젓이 방송합니다. 야생동물이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그런 행동이 불법적 요소가 없는 것처럼 대중을 현혹하는 방송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구가 올바르게 제어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의 불법적인, 그릇된 욕구 때문에 희생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야생동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s6.jpg »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의 불법적인, 그릇된 욕구 때문에 희생되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그건 야생동물도 마찬가지 아닐까?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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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이메일 : savethewi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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