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할 것은 내 몸이 아니라 생활방식

조성화 2018. 03. 30
조회수 58308 추천수 0
영화로 환경 읽기 27. <다운사이징>
사람 몸을 10분의 1로 줄이면 자원과 에너지를 10배로 쓸 수 있을까
인류는 이미 지구 1.5개 필요, 생활 그대로면 지구 100개라도 모자라

05888761_P_0.JPG » 영화 `다운사이징'의 한 장면. 인류의 몸 크기를 줄이면 경제가 나아질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살 빼는 데 쓰는 돈이면 모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지원할 수 있다?

7조 6000억원! 2017년 우리나라 다이어트 시장 규모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 연간 예산이 약 10조원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다이어트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큰지 상상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영양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쓰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그만큼의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니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1.png » 우리나라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다이어트엑스포 포스터. 과잉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부족보다 과잉이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는 뚱뚱해지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음식의 칼로리를 따진다. 옷장에는 일 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는 옷이 가득하고, 가족 구성원은 줄어들지만 집의 크기는 계속 커지고 있다.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서, 성인 2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다. 정보의 과잉으로 어떤 정보가 사실이고, 유용한지를 확인하는 일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부족의 시대에서 과잉의 시대로, 그리고 이런 과잉이 문제를 일으키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인류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가 대규모로 소비하는 에너지와 식량, 자원은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에너지 소비 과잉은 기후변화 문제로, 식량과 자원 사용의 과잉은 기아 문제와 자원 고갈 문제로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은 인류의 삶을 극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리의 삶이 지구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생태 발자국’을 보면, 이미 우리 인류는 지구가 1.5개 정도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자국은 이보다 훨씬 커 지구가 4.4개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발자국을 더 키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미 지구는 온통 인류의 발자국으로 뒤덮여 버렸는데도 말이다. 

02. 생태발자국.jpg » 생태발자국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표현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지구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인류는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모하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이다. 이제는 하나의 바이블처럼 회자하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년)라는 보고서에서는 미래에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식량과 에너지, 자원 부족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3.gif »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에 등장하는 미래예측 그래프.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자원과 식량, 에너지가 급속히 줄어들고, 결국 인구도 급감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발간된 지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인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류는 보고서의 예측처럼 2050년 이후 급속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지구를 늘릴 수 없다면 인간의 크기를 줄여볼까?

인구 증가로 지구의 자원이나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것이 문제라면, 우리 인간이 극단적으로 작아짐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지구는 그대로인데 우리 인간이 10분의 1 크기로 줄어든다면 지구 10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이 10배로 늘어날 것이고,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영향도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4.jpg » 영화 ‘다운사이징’은 ‘만약 인간이 작아진다면?’ 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고 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이런 다소 엉뚱하고 재밌는 상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극 중에서 한 연구팀이 지구의 인류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를 10㎝ 정도로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기술을 적용해서 가능한 많은 인류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개인에게도 다운사이징을 하면 자신이 가진 재산의 가치가 신체가 줄어드는 비율만큼 증가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참여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다운사이징을 한 작은 인류와 기존 인류가 공존하는 다소 어색한 상태가 된다. 

5.jpg » 영화에서는 다운사이징한 사람과 기존 크기의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가 줄여야 할 것은 우리의 몸일까?

그렇다면, 다운사이징을 통해 상당수의 인류가 작아진 상황에서 지구의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또 개인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훨씬 좋아졌으니 더 행복해졌을까?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단순하게 인간의 몸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개인적 문제나 지구적인 문제 등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단적으로 주인공 부부의 경우, 경제적인 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운사이징을 결심했지만 다운사이징 시술 단계에서 주인공은 시술을 받고, 주인공 부인은 시술을 포기한다. 돈이 있다고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부인은 마지막 단계에서 시술받기를 포기한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운사이징 된 세상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6-2.jpg » 주인공 부인은 마지막 순간 다운사이징을 포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영화에서 애초 연구자들이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인류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주변 환경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결국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가 10개, 100개 생기더라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더 많아진 자원과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는 것은 한순간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줄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지금 우리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05885250_P_0.JPG » 우리가 줄여야 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금까지 우리가 지구를 4개 넘게 사용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했다면, 지구를 10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구는 단 한 개뿐이다. 그렇다면 지구를 한 개 사용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관점이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멋진 몸을 갖기 위해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는 만큼 자기 삶의 방식을 다이어트해서 자기 자신과 사회, 지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성화/ 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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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화 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
이메일 : treesarang@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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