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슬픔 사라진다'는 미선나무에 노란 리본 나비가

이강운 2017.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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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7> 청명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윽한 향기로…희망 부르는 4월 되길
땅속에서 ‘꿈틀’ ‘바스락’ 대왕박각시나방 번데기 움직이는 소리

초가 이엉.jpg » 초가 이엉 올리기. 볏짚 썩은 부엽토는 꽃무지 등 풍뎅이 애벌레의 먹이여서 초가지붕은 중요한 곤충 서식지가 된다.

화창한 봄기운을 맛 볼 수 있는 청명 절기 즈음에 며칠째 봄비가 내려주니 꽃도 나무도 싱그럽고 상쾌하다. 봄비 덕분에 굳게 얼었던 땅은 부슬부슬 부드럽고 푹신해져 냉이와 쑥이 불쑥 나왔다. 평생 보약이라고는 못해 먹으니 우리가 지킨 자연 속에서 이른 봄에 나오는 나물, 제철 음식이라도 먹자고 발 빠른 아내는 벌써 냉잇국과 쑥국을 식탁에 올렸다. 배추흰나비, 작은멋쟁이나비의 애벌레들이 먹을 양식인데 아깝다 생각하지만 남편 위하는 아내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돌 틈에 끼어 때를 기다리던 돌단풍이 삐쭉 고개를 내밀고 약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멸종위기종 산작약이 어느새 한 뼘만큼 올라왔다. 

초가지붕에 겨우내 만들어 놓았던 새로운 이엉을 올렸다. 꽃무지를 비롯한 풍뎅이 애벌레들은 주로 볏짚 썩어가는 부엽토를 먹고 사는데, 매년 이른 봄 이들 애벌레를 위해 초가의 묵은 짚에 덧붙여 두툼한 볏짚으로 곤충 서식처를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초가는 시골 동네에서조차도 보기 힘들고 이엉 엮는 방법도 전수되지 않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10년 전 배운 기술로 이제껏 꽃무지를 키우고 있다. 이엉을 엮고 그 어려운 용마름도 엮어내어 초가를 얹자 봄비가 볏짚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이미 죽은 목숨인 마른 참나무도 봄비를 맞자 은은한 버섯 향을 내며 표고버섯이 나무 틈을 비집고 쑥 올라온다. 강한 바람에 수시로 뒤집어지는 초가 이엉을 숨죽여 잡아주고 새 생명을 품어내며 때맞추어 내리는 봄비 소리가 참 좋고 고맙다. 뿌연 미세먼지도 씻어 하늘은 더욱 청명하다. 

히어리.jpg » 한반도 고유종인 히어리가 깜찍한 모습의 꽃을 피웠다.

춘분의 훈훈한 봄바람이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물들에게 온기를 선물했고, 청명 무렵 며 칠 내린 봄비는 잠든 뿌리를 깨워 줄기로 물을 올려 생기를 주고 있다. 산속에 울려 퍼지는 청명한 빗소리에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소리가 들린다. 온몸으로 봄을 노래하는 연구소의 속살을 걸어본다. 좀처럼 나서지 않아 꽃이 잘 보이지 않는 올괴불나무가 꽃을 피웠고 양지꽃에 광대나물과 히어리와 꽃다지까지 봄날이 왔음을 이야기하는 신호가 수두룩하다. 청명 무렵, 들쭉날쭉하던 기온이 날이 갈수록 한결 같아지면서 분, 초를 다퉈가며 꽃이 피고, 싹이 나오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북방산개구리.jpg » 북방산개구리가 알을 잔뜩 낳았다. 산속은 이들의 울음소리로 시끄럽다.

“연구소에서 오리 키우나요? 엄청 시끄럽네요.” 연구소에 방문한 탐방객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넨 첫마디. “꼬르르륵, 꾸르루루룩” 북방산개구리의 암컷을 향한 사랑의 외침이 얼마나 큰지 소음으로 느꼈나보다. 춘분이 지나서야 울어대더니 이제 절정으로 치닫는다. 도롱뇽도 알을 낳았다. 툭 튀어나온 눈과 장난감같이 오밀조밀 생긴 발가락, 오동통한 배와 꼬리는 만화 속 캐릭터 같다. 아장아장 걸으며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는 도롱뇽이 마냥 귀엽다. 소시지처럼 길쭉하게 생긴 투명한 우무질 속에 가지런히 정리된 도롱뇽 알도 물웅덩이마다 가득하다. 흰나비들이 짝짓기를 하려고 무리지어 나는 모습에 진짜 봄이 왔음을 안다.

도룡뇽과 알.jpg » 만화영화 캐릭터처럼 귀여운 도룡뇽과 기다란 자루 속의 알.

때를 맞춰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다. 쿵쾅거리며 힘차게 뛰는 봄의 맥박을 느낀다.

청명(淸明). 일 년 중 날이 가장 맑다는 청명(淸明) 절기이지만 포근하다가 금방 변덕을 부려 추위와 눈을 내려 아직은 예측 불허의 시절이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꼭두새벽에 잠을 깬다. 곤충 활동은 뜸한 편이지만 저온에 적응한 나방 종류는 이미 활동을 시작할 때라 100여 종의 곤충이 휴면하고 있는 월동 실험실에 들른다.  

대왕박각시.jpg » 대왕박각시나방 애벌레.

땅속에서 꿈틀거리며 바스락거리는 번데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실험실에서 번데기로 월동하던 대왕박각시가 작년보다 보름이나 일찍 날개를 달았다. 한참 날개를 말리고 있는 수컷 대왕박각시를 관찰하는 사이 동이 튼다. 이른 봄에만 보는 귀한 손님으로 반갑다 

박각시나방은 마치 화살표처럼 양 날개를 대각선 모양으로 펼치고 앉은 모습이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기를 닮아(식물보호연구회 김승규 이사가 이름 지음) 앉은 형태만 봐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앉아있는 모습이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Spinx)처럼 생겨 학명으로도 Spingidae(박각시과)라 칭한다. 대왕나비, 대왕노린재, 대왕팔랑나비 그리고 대왕박각시. 곤충 가운데서도 이름에 ‘대왕’ 자가 붙은 곤충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왕’과 같은 수식어는 각 목(目), 또는 과(科) 중에 크기가 가장 크거나, 가장 힘이 세거나, 가장 화려한 종에 붙는 접두사로 ‘대왕’이라는 말에서 벌써부터 거대함과 화려함이 느껴진다. 일 년 중 초봄, 4월 중순에서 5월 초 딱 한번만 모습을 드러내는 대왕박각시는 크기도 크려니와 매우 빨라 매나방(Hawk moth)이라고 불려 이름값을 한다.  
 
벌써 스무 한 해. 곤충이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의 과정을 보면서 익숙해질 만도한데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죽거나 곰팡이 슬은 번데기를 솎아내는 일은 늘 가슴 아프다. 먹이를 찾아서, 천적을 피해서 숨어 지내 온 세월이 얼마이고, 시시때때로 껍질을 벗고 모양을 바꿔가며 마음 졸이며 살아 온 시간은 또 얼마이며 번데기에 갇혀있던 세월도 셀 수 없다. 얼마나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이 화사한 봄을 누리지 못하는구나!’ 탄식하며 보낸다. 

복수초.jpg » 노란 복수초에 꿀벌이 찾아들었다. 4월 노란꽃을 보면 왜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떠오르는 걸까.

산수유.jpg » 산수유의 노란 꽃.

샛노란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강렬해서 멋지고, 노란 복수초에 노란 꿀벌과 노란 민들레에 노랑나비는 은은한 노란색으로 아름다운데, 안산과 팽목항의 노란 리본은 슬프다. 자식이 눈앞에서 까닭 없이 죽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생방송으로 확인한 부모 마음은. 안산에서 내 딸 가영이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단원고등학생 가영이의 영정 앞에서는 고개 숙여 울다가 통곡을 했다. 바닷바람 매서운 팽목항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다시 배안으로 들어간 양승진 선생님과 제자들의 탈출을 돕느라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낸 고창석 선생님을 생각했다. 이 사무치게 아름다운 봄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가영이와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을 탄식하며 보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선나무.jpg » 미선나무의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이다. 미선나무의 꽃에 노란 나비가 찾아왔다.

미선나무 꽃이 한창이다. 생물학적 중요성이나 ‘멸종위기식물’이라는 이름보다도 미선나무의 꽃말이 참 마음에 든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는 촘촘히 달린 흰 꽃 옆에 다가서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바다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3년 만에 올라왔다. 끄집어내어서 이로울 게 없으니 '가슴 아픈 사건은 뒤로 하자'고 하거나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하지 말자. 너무 허망하게 자식 잃은 부모 마음만 생각하면 된다.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 흰 꽃이 되어 춥고 어둠 깊은 곳에 계시던 이들에게 맑고 푸른 하늘과 희망의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일도 잔인한 4월에 우리가 할 일이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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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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