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만2천번 '박치기' 딱따구리도 뇌손상 입는다?

조홍섭 2018. 02. 05
조회수 10310 추천수 1
뇌진탕보다 최고 14배 충격 딱따구리의 ‘두드리기’
뇌 손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새로운 이론 나와

Woodpecker_20040529_151837_1c_cropped.JPG » 딱따구리가 엄청난 충격을 머리에 받으면서 나무를 두드리면서 멀쩡한 이유는 진화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딱따구리는 단단한 나무를 부리로 쪼아 구멍이나 소리를 낸다. 먹이를 잡고 둥지를 지으며 자신의 영역을 널리 알리는 데 꼭 필요한 행동이다. 그런데 나무를 두드리는 이런 행동에도 뇌가 멀쩡한 이유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딱따구리는 초속 6~7m의 속도로 1초에 10~20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나무를 쪼는데, 이때 딱따구리는 사람에게 뇌진탕을 일으키는 것보다 최고 14배의 충격을 받는다.

skull copy.jpg » 딱따구리의 머리 구조.

이런 박치기를 하루 1만2000번이나 할 수 있는 이유로 뇌의 크기와 배치가 충격을 최소화하게 돼 있고, 두개골을 안전띠처럼 감싼 기다란 목뿔뼈(설골)와 두개골 뼈의 스펀지 구조가 충격을 완화한다는 등의 가설이 나왔다. 최근에는 딱따구리의 부리 길이가 위아래가 다른 짝짝이여서 충격을 이긴다는 주장도 제기됐다(▶관련 기사하루 1만 2천번 ’헤딩’ 딱따구리 짝짝이 부리로 충격 이긴다). 수수께끼는 아직 안 풀렸지만 딱따구리의 두뇌 구조를 응용해 충격을 완화하는 헬멧 등 스포츠용품이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가설이 병리학자로부터 나왔다.

The Field Museum-1.jpg » 알코올에 담가 보관한 딱따구리 표본. 이번 연구는 이런 액침표본의 뇌조직을 이용했다. 필드박물관 제공.

미국 보스턴의대 연구자들은 3일 딱따구리의 뇌에서 뇌 손상의 징표가 되는 단백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대학 피터 커밍스 교수는 “딱따구리가 쪼아대도 뇌 손상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스포츠용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새의 뇌에 손상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필드자연사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 박물관의 알코올 속에 보관된 딱따구리의 액침 표본에서 두뇌를 구해 검사했다. 그 결과 사람에게 뇌 손상의 신호로 간주하는 타우 단백질이 축적된 것을 발견했다. 뇌에서 신경세포끼리 연결하는 전화선이 축삭돌기라면, 타우 단백질은 전화선을 감싸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뇌가 손상되면 이 단백질이 쌓여 신경 기능이 단절된다.

05182041_P_0.JPG » 나뭇가지 표면을 파헤쳐 먹이를 사냥하는 큰오색딱따구리. 뇌충격을 이기고 진화한 이 동물의 신비가 사람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도움을 줄지 모른다. 김봉규 기자

문제는 과연 딱따구리의 뇌에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타우의 축적을 뇌 손상의 증거로 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딱따구리는 2억5000만년 전부터 나무를 두드려왔다. 뇌에 해롭다면 그런 행동이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커밍스 교수는 “타우 단백질이 딱따구리에서는 병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뇌를 보호하는 쪽으로 적응했을 수 있다”며 “이를 사람의 퇴행성 뇌신경 질환에 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arah G, Siwek D, Cummings P (2018) Tau accumulations in the brains of woodpeckers. PLoS ONE 13(2): e0191526.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9152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어린 고래상어는 장거리여행을 싫어해?어린 고래상어는 장거리여행을 싫어해?

    조홍섭 | 2018. 08. 13

    해마다 1만㎞ 이동하지만, 어린 개체는 이동 않고 먹이터 모여1980년대 이후 개체수 절반 감소…집결지마다 보호조처 시급 고래상어는 다 자라면 길이 20m 무게 40t까지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물고기다. 따뜻한 대양 표면을 유유히 헤엄치면...

  • 출산휴가·정년보장 ‘벌목 노동자’ 코끼리는 행복할까출산휴가·정년보장 ‘벌목 노동자’ 코끼리는 행복할까

    조홍섭 | 2018. 08. 10

    미얀마 국영 벌목장 5천마리 ‘노동’…절반은 야생 포획수명 3~7년 짧아…포획 부상·트라우마·가족단절 원인멸종위기에 놓인 아시아코끼리의 최대 서식지는 인도이고 그다음이 미얀마이다. 다른 멸종위기 대형 포유류처럼 아시아코끼리의 3분의 1은 동물...

  • 동박새 경기 북부 번식 첫 확인, 기후변화 영향 추정동박새 경기 북부 번식 첫 확인, 기후변화 영향 추정

    윤순영 | 2018. 08. 10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남부지방 권역에만 흔한 텃새이제는 옛말 중부내륙에서도 번식지난 6월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에서 동박새 부부를 어렵게 만난 적이 있다(▶관련 기사: ‘살아있는&nb...

  • 먼바다 섬에는 머리 좋은 새가 산다먼바다 섬에는 머리 좋은 새가 산다

    조홍섭 | 2018. 08. 08

    뉴칼레도니아까마귀 등 본토 친척보다 두뇌 훨씬 커변화무쌍한 섬 환경 유연한 적응 위해 큰 두뇌 선택받아이솝우화에 나오는 영리한 까마귀는 목이 긴 물병에 반쯤 담긴 물을 마시기 위해 잔돌을 병 속에 집어넣는다. 그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

  •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 하나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 하나

    조홍섭 | 2018. 07. 30

    침팬지는 죽기 전까지 출산하는데인간과 고래 3종은 폐경 뒤 오래 살아1957년 ‘어머니 가설' 이후 논란 지속진화생물학 60년 못 푼 수수께끼큰돌고래에서 찾은 폐경의 기원“늦둥이는 빨리 죽을 확률 커서수유기간 길고 오래 돌본다늦게 낳느니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