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의 생존 비결

조홍섭 2019. 07. 29
조회수 8673 추천수 1
밤 동안 남는 물과 양분 나눠줘…“숲은 초유기체”

w1.jpg » 큰 나무가 쓰러져 둥치의 일부만 남았지만, 조직이 살아있는 카우리나무. 뒤에 있는 카우리나무와 뿌리로 연결돼 있음이 밝혀졌다. 시배스천 루징거, ‘아이사이언스’ 제공.

“이상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가 살아있네?”

시배스천 루징거 뉴질랜드 오클랜드공대 교수(생태학)는 서오클랜드를 하이킹하다 이상한 카우리나무 둥치와 맞닥뜨렸다. 무언가의 이유로 나무가 쓰러져 다 썩고 밑동 한 부분만 남았는데, 둥치 가장자리의 상처가 두툼하게 아물어 있는 등 살아있음이 분명했다.

잎이 없는 나무는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증산작용을 하지 못하면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죽는다. 이 나무는 어떻게 둥치만으로 생존할 수 있었을까.

루징거 등 이 대학 연구진은 살아남은 둥치와 이웃에 있던 카우리나무가 뿌리로 연결되어 서로 물과 양분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수분과 수액 이동을 측정해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는 나무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숲 생태계 자체가 (서로 연결된) ‘초유기체’임을 시사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w2.jpg » 살아있는 둥치(왼쪽)와 온전한 타우리나무가 있는 숲의 모습. 시배스천 루징거 제공.

나무는 땅 위에서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음이 밝혀져 최근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식물 뿌리와 땅속 곰팡이 균사가 얽힌 균뿌리가 네트워크를 이뤄 영양분과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새에게도 "도와줘요", 식물은 소통의 '달인'). 식물은 땅속에서 ‘우드 와이드 웹’(Wood-wide web)으로 연결돼 있다고 할 정도다.

식물은 균사를 통하지 않고도 나무뿌리끼리 연결돼 양분을 주고받는다. 자기 뿌리 사이에서, 또는 같은 종이나 다른 종 나무뿌리와 접붙이기 방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산 나무가 죽었어야 할 나무 둥치와 연결된 사례는 드물다.

w3.jpg » 뿌리로 연결된 두 카우리나무 사이의 수분과 수액 이동 얼개. 시배스천 루징거 등 (2019) ‘아이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이 수분과 수액의 이동을 측정한 결과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해가 쨍쨍한 낮 동안 온전한 이웃 나무는 왕성하게 증산작용을 해 뿌리에서 잎으로 수분이 옮겨갔고, 둥치만 남은 카우리나무는 잠자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큰 나무의 활동은 잦아들면서 물과 영양분이 둥치 쪽으로 돌았다. 낮에 비가 올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두 나무는 마치 두 개의 펌프를 가지고 교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루징거는 “둥치는 잎이 없기 때문에 증산작용을 통해 물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따라서 상대 나무가 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카우리나무는 왜 둥치만 남은 이웃에게 소중한 자원을 나눠주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애초 두 나무가 모두 온전했을 때 뿌리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한쪽이 쓰러져 더는 광합성을 하지 못하게 됐지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나무가 다른 나무의 ‘얹혀살기’를 허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w4.jpg » 뉴질랜드 북부에 분포하는 카우리 숲은 쥐라기 때부터 살아온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숲이다. 키 50m, 밑동 지름 5m 이상인 거목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둥치와 온전한 나무가 둥치의 일방적인 의존 관계만은 아니다. 온전한 나무는 둥치의 것까지 합쳐 확장된 뿌리 체계를 갖추는 셈이어서 비탈에서도 든든하게 버틸 수 있고, 가뭄에도 물을 확보할 확률이 커진다. 또 둥치 지상부가 사용하는 자원의 양 자체가 미미하다.

루징거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가뭄이 점점 잦아지고 있어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 네트워크는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병원체도 전달하기 때문에 그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뉴질랜드 북부의 카우리 숲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숲으로 보전가치가 크지만, 최근 외부에서 유입된 토양 균이 나무의 떼죽음 사태를 불러 비상이 걸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ader and Leuzinger, Hydraulic Coupling of a Leafless Kauri Tree Remnant to Conspecific Hosts, iScience (2019), https://doi.org/10.1016/j.isci.2019.05.00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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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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