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둥오리가 잉어를 세계에 퍼뜨린다

조홍섭 2020. 07. 06
조회수 10431 추천수 0

소화관 통해 배설한 알에서 새끼 깨어나…‘웅덩이 미스터리’ 설명


ca1.jpg » 외딴 웅덩이에도 잉어가 살 수 있는 건 청둥오리가 먹은 알의 일부가 살아남아 부화하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물길이 닿지 않는 외딴 웅덩이나 호수에 어떻게 물고기가 살게 됐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물새가 깃털이나 다리에 수정란을 묻혀왔다는 것인데, 아직 증거는 없다.


최근 유력하게 떠오른 주장은 물새가 물고기 알을 먹은 뒤 소화관에서 생존한 알이 배설과 함께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가설이다. 브라질에서 고니에게 열대송사리 알 650개를 먹인 뒤 배설물 속에서 5개를 회수했고, 이 가운데 하나가 무사히 알에서 깨어났다는 실험결과가 지난해 보고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 실험에 쓰인 열대송사리가 매우 강인한 종이어서 물고기의 장거리 확산을 일반적으로 설명하기엔 곤란하다는 점이다. 일년생인 이 물고기는 가뭄 등 역경이 닥치면 수정란 상태로 몇 년씩 휴면에 들어간다.


알은 융모막과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 무산소, 고염분, 건조에 잘 견디기 때문에 물새 소화관 속의 산성과 무산소 환경에서 살아남는다고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알껍질이 부드러운 보통 물고기 알은 어떨까.


ca.jpg » 전 세계에 수천만 마리가 사는 청둥오리는 산란기 때 어류의 알을 집중적으로 먹는다. 산도르 보르자 제공.

아담 로바스키스 헝가리 다뉴브연구소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23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일반적인 물고기도 물새의 장관을 통해 멀리 퍼지는 것이 가능함을 실험으로 증명했다고 밝혔다. 실험에는 전 세계에 수천만 마리가 분포하는 청둥오리와 ‘세계 100대 침입종’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잉어, 마찬가지로 세계적 침입종인 프러시아 붕어의 알이 쓰였다.


연구자들은 두 종의 물고기 수정란 각 500개를 청둥오리 암·수 각 4마리에 먹인 뒤 배설물을 뒤져 배출된 알을 회수하고, 이 알이 정상적으로 부화하는지 조사했다. 알을 먹은 청둥오리는 대부분 1시간 안에 배설했는데, 회수한 알은 잉어 8개, 프러시아 붕어 10개로 전체의 0.2% 정도였다.

 

회수한 알을 살펴보니 잉어 알 8개 모두와 프러시아 붕어 알 4개에서 배아가 움직여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설물 속에서 거둬들인 알 18개 가운데 12개가 살아있었고, 청둥오리 4마리 가운데 3마리의 배설물에서 살아있는 알이 나온 셈이다.


생존한 알 12개를 수족관에서 부화시켰지만 9개가 죽고 3개만 새끼 물고기로 깨어났다. 유일하게 깨어난 잉어 새끼는 청둥오리의 뱃속에서 다른 알보다 긴 4∼6시간 머문 알에서 나왔다. 나머지 알들은 부화과정에서 곰팡이에 감염돼 죽었다.


ca3.jpg » 잉어(왼쪽)와 프러시아 잉어 알 각 500개를 청둥오리 암·수 각 4마리에 먹인 뒤 배설물에서 알을 회수해 부화시키자 그중 3마리가 깨어났다. 아담 로바스키스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로 화구호, 사막 호수, 농경지의 일시적 웅덩이 등 외딴 고립된 수체에 어떻게 물고기가 살게 되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란에 한 가지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청둥오리가 알을 먹은 뒤 1시간 뒤 배설한다면 물고기 알은 60㎞, 4∼6시간 뒤 배설한다면 360㎞까지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1000개의 알 가운데 3개에서만 새끼가 깨어난 낮은 확률은 어떨까. 연구자들은 “(낮은 확률에도) 자연에는 물고기 알과 새의 개체수가 많아 이런 방식의 확산은 흔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잉어는 한 번에 150만 개, 프러시아 붕어는 40만 개의 알을 낳는다. 또 청둥오리는 물고기 산란기 때 영양가가 많은 알을 즐겨 포식한다.


ca4.jpg » 산란하는 잉어(왼쪽)와 검정말. 청둥오리는 검정말에 붙은 잉어 알을 즐겨 훑어 먹는다.

연구자들은 “프러시아 붕어는 외딴곳에 홀로 태어나도 단성생식으로 집단을 불릴 수 있다”며 “청둥오리를 통한 장거리 확산이 이들 어종이 세계적 침입종이 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DOI: 10.1073/pnas.2004805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쓸모없다고? 코끼리 사회에서 늙은 수컷도 중요하다쓸모없다고? 코끼리 사회에서 늙은 수컷도 중요하다

    조홍섭 | 2020. 09. 22

    젊은 수컷에 역경 이길 지식과 경험 제공…‘불필요하다’며 트로피사냥, 밀렵 대상나이 든 아프리카코끼리 암컷의 생태적 지식과 경험이 무리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늙은 수컷 또한 암컷 못지않게 코끼리 사회에서 ...

  • 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

    조홍섭 | 2020. 09. 18

    캐나다 북극토끼 사체 청소동물 24종, 4종의 다람쥐 포함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의 방대한 침엽수림에서 눈덧신토끼는 스라소니 등 포식자들에게 일종의 기본 식량이다. 눈에 빠지지 않도록 덧신을 신은 것처럼 두툼한 발을 지닌 이 토끼는 ...

  • ‘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

    조홍섭 | 2020. 09. 17

    `늑대+고래’ 독특한 울음 특징…4천m 고원지대 서식, ‘멸종’ 50년 만에 확인오래전부터 호주 북쪽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뉴기니에는 독특한 울음소리의 야생 개가 살았다. 얼핏 늑대의 긴 울음 같지만 훨씬 음색이 풍부하고 듣기 좋아 ‘늑...

  • ‘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

    조홍섭 | 2020. 09. 16

    1만년 전 가축화 재현 실험…온순해지면서 두뇌 감소 현상도동남아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매우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8000∼1만년 전 이들을 가축화하려던 사람들이 했던 첫 번째 일은 아마도 겁 없고 대범한 닭을...

  • 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

    조홍섭 | 2020. 09. 15

    외래종과 밀렵 확산 등 ‘착한, 나쁜, 추한’ 영향 다 나타나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도시 봉쇄)은 못 보던 야생동물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재난 가운데서도 ‘인간이 물러나자 자연이 돌아왔다’고 반기는 사람이 많았다.그러나 록다운의 영향을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