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어떻게 빗방울 충격을 피하나

조홍섭 2020. 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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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나노 왁스층과 미세 둔덕이 빗방울 잘게 쪼개 충격 완화


r1.jpg » 빗방울은 나방의 날개에 떨어지자마자 표면의 미세구조 덕분에 잘게 부서져 충격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 코넬대 제공.

나비에게 빗방울은 상대적인 무게로 비유한다면 하늘에서 쉴새 없이 볼링공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비가 쏟아진 뒤 숲 속에 곤충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일은 없다. 그 비밀은 곤충 피부의 미세구조에 숨겨져 있다.


곤충 피부의 미세구조가 빗방울 충격을 완화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곤충뿐 아니라 새와 식물 등도 이런 방식으로 빗방울로 인한 기계적 충격과 저체온 영향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호 박사 등 미국 코넬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6월 8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처음으로 실제 자연계의 빗방울 속도로 실험한 결과 생물 표면의 미세한 둔덕과 나노 규모의 왁스층이 빗방울을 분쇄해 퍼뜨림으로써 손상을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r2-1.jpg » 나비 날개에 떨어진 빗방울의 첫 1000분의 7초 동안 모습. 왼쪽부터 날개에 떨어진 물방울, 나노구조 비늘에 의해 퍼져 나가는 모습, 미세 굴곡 때문에 곳곳에서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모습, 터져 작은 물방울로 부서진 모습.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교신저자인 정승환 코넬대 생물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곤충 같은 작은 동물에게 빗방울에 얻어맞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극복했기 때문에 곤충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종 다양성이 풍부한 생물로 진화했다.


연구자들은 나비와 새 깃털, 나뭇잎 등을 바닥에 놓고 2m 위에서 지름 1∼2㎜의 빗방울이 자연적인 빗방울 속도인 초속 0.7∼6.6m로 내리치는 모습을 초당 수천 프레임의 초고속 촬영을 해 분석했다.


빗방울이 생물 표면에 충돌하면 충격파와 함께 표면으로 퍼져 나간다. 표면의 나노 규모의 왁스층은 물을 밀어내고, 이보다 조금 큰 미세한 둔덕은 퍼져 나가는 빗방울이 빠질 수많은 구멍을 형성한다.


정 교수는 “미세한 둔덕은 풍선을 찌르는 바늘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세 구멍을 중심으로 형성된 물 표면의 ‘풍선’ 구조가 갑자기 파열하면서 작은 물방울로 나뉘어 퍼져 나간다.


r3-1.jpg » 나비 날개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r4-1.jpg » 떨어진 빗방울이 표면의 미세구조에 의해 잘게 부서진 모습.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물방울과 생물 표면이 만나는 접촉 시간이 70% 이상 준다고 밝혔다. 이는 물방울 충돌로 인한 충격량이 줄어 나비 날개나 잎사귀 같은 연약한 구조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차가운 물방울과 접촉하는 시간이 줄어 열 손실로 인한 저체온 현상을 막아 주기도 한다. 예컨대 근육이 식으면 곤충은 잘 날지 못하고, 굶주린 포식자의 쉬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와 함께 물방울을 잘게 부서뜨림으로써 무거운 물방울을 가능한 한 빨리 털어내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비행하는 새나 곤충, 그리고 나무 잎사귀 모두에 무게를 줄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생물 표면의 이런 미세구조가 세탁이 필요 없는 옷이나 신발을 위한 방습 스프레이, 비행기 날개의 결빙 방지 코팅 등 새로운 제품 개발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mo1.jpg » 모기에 3㎜ 지름의 빗방울이 부닥치는 모습. 빗방울의 무게는 모기의 최고 50배에 이른다. 앤드루 디커슨 외, PNAS 제공

앞서 날아가는 모기는 빗방울에 부닥치더라도 워낙 체중이 가벼워 충격량이 적기 때문에 곧 빗방울에서 벗어나 살아남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빗방울 ‘폭탄’에 모기가 맞는다면?).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002924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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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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