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수수께끼’ 풀렸다…심해 아귀가 암수한몸이 된 까닭

조홍섭 2020.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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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 위해 면역기능 차단…제3의 면역체계 가능성 주목


an1.jpg » 심해 아귀 암컷의 배에 수컷이 기생충처럼 매달려 있다. 수컷은 혈관을 통해 영양분을 제공받는다. 에디트 비더 제공.

캄캄한 깊은 바다에서 지느러미 일부가 변한 살덩이를 낚싯대처럼 드리워 사냥하는 심해 아귀 일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왜소한 수컷이 독립성을 포기하고 암컷의 일부가 된다. 100년 동안 수수께끼였던 ‘성적 기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19세기까지 심해 아귀는 암컷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낚싯대도 큰 입도 없는 수컷이 잡혔지만 다른 종으로 간주했다. 1922년 아이슬란드 생물학자 비아르니 자에문손은 암컷 몸에 두 마리의 작은 수컷이 결합한 심해 아귀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지만 “새끼가 어미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신기하다”고 했을 뿐이다.


an2.jpg » 심해 아귀의 다른 종 암컷 등에 왜소형 수컷이 접합해 있다. 시어도어 피치 제공.

1924년 영국 자연사박물관 연구자들은 이들이 암컷과 수컷이라는 사실을 밝힌 이래 이들의 극적인 생식의 비밀이 드러나고 있다. 수컷 심해 아귀는 어둡고 찬 바다에서 희미한 페로몬 냄새를 통해 암컷을 추적한다. 몸길이가 고작 6∼10㎜인 수컷은 자신보다 60배까지 큰 암컷을 만나면 배를 물어 상처를 낸 뒤 결합해 피부와 혈관까지 융합한다.


필요 없어진 눈, 지느러미, 내장은 차츰 사라지고 아가미와 정자 주머니만 남은 수컷은 독립된 물고기라기보다 암컷이 산란할 때 정자를 공급할 뿐 평소에는 암컷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기생충처럼 바뀐다.


짝을 만나는 것이 매우 힘든 심해에서 이런 극적인 번식 전략이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은 어떻게 유전적으로 다른 두 개체가 한 몸으로 결합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an3.jpg » 심해 아귀의 일종. 등지느러미 첫째 가시가 변한 낚싯대와 살점을 미끼처럼 흔들어 먹이를 유인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척추동물은 바이러스나 세균과 오랜 싸움을 겪으면서 다른 생물체의 침입을 극도로 꺼리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면역체계를 갖췄다. 장기이식은 단적인 예로 엄격하게 기증자와 이식받는 사람을 골라 맞춘 다음에도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약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식자 몸의 면역체계가 낯선 장기를 공격해 죽인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면역학자들과 미국 어류학자는 성적 기생을 하는 심해 아귀 10종 31마리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어떻게 부작용 없이 다른 개체가 한 개체로 결합하는지 밝혔다.


3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심해 아귀에는 외부 생물의 침투를 피부에서 감지하는 기능이 없다고 밝혔다. 주 저자인 제러미 스반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외부 침입을 파악하는 유전자뿐 아니라 침투한 적을 공격하는 킬러 티세포 등도 거의 무력화 돼 있다”며 “심해 아귀의 면역체계는 다른 척추동물 수만 종과 전혀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게다가 일부 심해 아귀에서는 면역 방어에서 매우 중요한 항체도 없었다. 교신저자인 타마스 뵘 박사는 “만일 사람이 아귀처럼 면역 방어 수단이 없다면 곧 죽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심해 아귀가 잘살아가는 비결은 뭘까.


an4.jpg » 성적 기생을 하는 심해 아귀의 일종. 심해에서 가장 성공한 분류군으로 꼽힌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아직 그 실체는 모르지만 심해 아귀에 적응 면역 대신 또 다른 면역체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저 생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번성한다.


성적 기생을 하는 심해 아귀는 심해에서 가장 성공한 분류군으로 꼽힌다. 성적 기생을 하는 분류군은 아귀목의 5개 소집단 가운데 하나인데 가장 다양한 168종이 기록돼 있다.


an5.jpg » 심해 아귀의 일종. 성적 기생은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해 성공적인 번식 전략임이 입증됐다. 시어도어 피치, 워싱턴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뵘 박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화로 처음 면역체계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를 이용하는 성적 기생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어도어 피치 미국 워싱턴대 어류학자는 “심해 아귀에서 이런 놀라운 번식방법은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했고, 성적 기생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종도 있다”고 말했다.


심해 아귀는 전 세계의 수심 300m보다 깊은 심해에 분포하며, 수컷이 독립적인 종과 일시적으로만 암컷과 결합하는 종, 전적으로 결합하는 종 등 다양한 번식 전략을 갖는다.


인용 저널: Science, DOI: 10.1126/science.aaz944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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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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