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보다 무서운 것

조홍섭 2011. 04. 01
조회수 18038 추천수 0

불신과 소통부족이 공포 키워
 
후쿠시마 직접 피폭 사망자 없지만…오염지역 낙인 사회경제적 '사형 선고'


 

체르노빌2_그린피스.jpg

체르노빌 원전의 사고 뒤 모습. 후쿠시마 이전엔 최악의 사고였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직후 국내 원전 여러 곳의 격납용기 안에까지 들어가 보는 드문  취재 기회를 얻었다.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직접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원전은 ‘다중 안전 장치’를 갖춰 절대 안전하다며 한 기술자가 들려준 비유가 인상깊었다. 내일 아침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머리맡에는 전자식 자명종을, 발치에는 태엽식 자명종을 놓아 만일의 사태에도 반드시 하나는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다중 안전이란 설명이었다.
 

그런데 지각한 경험을 돌이켜 보니, 대개 알람이 작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알람을 끄고 다시 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 사람에겐 공학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체르노빌과 스리마일섬 사고를 일으킨 결정적 요인 가운데는 설계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려던 안전장치를 작업자가 판단착오나 실수로 억지로 멈춘 것이 포함돼 있다.
 
 
방사능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장기화, 광역화 조짐을 보인다. 다른 재해와 달리 원전 사고는 시간이 지나도 사태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반감기가 짧은 요오드 131 등이 붕괴하면서 방사능은 40일이 지나면 처음의 10분의 1로 줄어들지만 이후에는 반감기가 30년인 세슘 137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방사능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원전 안에는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어, 후쿠시마 원전처럼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나면 수명이 긴 방사성 물질은 두고두고 오염을 일으킨다. 체르노빌 사고 때 방출된 세슘 137의 총량은 1980년까지 대기권 핵실험으로  내보낸 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 20배나 많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을 측정하는 모습.jpg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환경방사선을 측정하는 모습.
 

 
이제 우리는 몇 주가 될지 몇 달이 될지 모르는 방사능 공포 속에서 살게 됐다. 이런 불안을 부추기는 건 인터넷도 언론도 아닌  ‘절대 안전’만을 되뇌는 정부와 원자력 전문가이다.
 

원전과 방사선 안전에는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 대기와 바다에 국경선이 쳐 있는 것도 아니고, 식량자급률은 27%에 불과하다.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수십년 뒤 자신은 물론 자손에까지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데 이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어떤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누출됐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절대로 안전하다고 얘기하는 전문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아직 극미량에 그친다는 당국의 방사선 측정치를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다. 과학적 측정과 예측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원전의 안전만을 감싸려는 태도가 신뢰를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요오드와 세슘이 전국에서 검출됐을 때 중요한 건 ‘극미량’이 아니라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방사능이 대량 누출되는 최악의 사태가 오더라도 피폭 허용치에 못 미친다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시뮬레이션도 순진하기 짝이 없다. 체르노빌에서 보듯 자연이 그렇게 예상한 대로 움직일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큰소리 치다가 조금이라도 예상과 다른 오염이 벌어졌을 때 촉발될 시민들의 공포는 어쩔 것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사재기로 텅 비어버린 일본의 한 슈퍼마켓 매장.jpg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텅 비어버린 일본의 한 슈퍼마켓 식품 매장.
 


이 기관의 누리집에는 불안한 시민들의 문의가 빗발치는데, 답변을 보면 “의료방사선이나 인공방사선이 모두 같은 것”이고 “방사능은 귀하의 몸속에도 주택에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등 방사선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의 태도라고 믿기 힘들다. 기술자의 눈에는 모든 방사선이 같을지 몰라도, 어떻게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의사의 관리 아래 자신이 선택해 쪼이는 의료용 방사선과 사고로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원전 방사능이 같단 말인가.

 
국내 원전에 대한 전면 안전점검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불과 한 달 동안 전국의 원전 21기를 점검하면서 김황식 국무총리는 “원전을 새로 재설계한다는 각오로 충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말 잔치와 달리 유럽연합은 원전이 자연재해나 테러에 취약한지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연말까지 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지금까지 방사선에 의한 급성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낙인찍힌 후쿠시마 인근에서 농사짓고 어업을 하며 살아온 수십만 명의 주민들에겐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 없다. 방사능 자체보다 그 사회·경제적 파장이 더 무서울 수 있다.

 

대피소.jpg

후쿠시마 대피소의 주민들. 지역사회의 붕괴가 당장의 방사능 피해를 넘어선다. 


이제 원전은 최악의 사고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시설이 됐다. 그렇다면 원전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 시민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객기가 이륙하면 제일 먼저 승무원이 비상탈출 방법을 설명한다. 즐거운 여행길을 비행기가 추락하는 끔찍한 사고 얘기로 시작해도 기분을 잡친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쓰는 전기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원전에게 최악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대비책을 요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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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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