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고 자식 버리는 새들의 은밀한 사생활

조홍섭 2011. 04. 22
조회수 82898 추천수 0

  진화생물학자가 추적한 책 <암컷은 언제나 옳다>
 짝짓기와 번식 주도권 쥐고 수컷 무한경쟁 몰아
 먹이 안 물어오면 가차 없이 ‘서방질’ 윽박질러


산에 가면 짝짓기 철을 맞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부드러운 신록이 돋는 때에 맞춰 곤충의 애벌레가 깨어나고, 이 영양가 많은 먹이가 풍부할 시기를 놓치지 않고 새끼를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짝을 이룬 새들은 공들여 집을 짓고 하루 1000번 넘게 둥지를 들락거리며 벌레를 물어 날라 새끼를 키운다. 깃털이 빠질 정도로 지극한 어미 새의 이런 헌신을 우리는 자연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열에 아홉은 외도하고, 이혼율 100%도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보면, 새들의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더 멋진 깃털의, 더 잘 우는 수컷이 주변에 없는지 끊임없이 곁눈질하는 암컷, 암컷이 알을 품고 있거나 새끼를 기르는 동안에도 외도를 일삼는 수컷, 먹이를 잘 가져다 주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겠다고 대놓고 윽박지르는 암컷, 90%에 가까운 외도율과 종에 따라 100%인 이혼율…. 자기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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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은 언제나 옳다>(브리짓 스터치버리 지음 정혜영 옮김/이순/1만 3800원)는 부제처럼 복잡하고 은밀한 새들의 사생활을 파헤친 책이다. 캐나다 요크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지은이는 새들의 ‘불륜’ 전문가이다.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참새 목에 속하는 명금류 새에게 무선추적기를 달아 행동을 추적한 평생의 연구 결과가 이 책에 담겨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새들의 행동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은 그것을 모두 유전자로 풀어낸다. 한가지 사례를 보자. 붉은풍금조 수컷은 알을 품는 동안 암컷에게 지성스럽게 먹이를 가져다 준다. 상식적으로 암컷이 둥지에 오래 머물면 알을 부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관찰 결과는 달랐다. 암컷이 둥지에서 오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부화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먹이를 나르던 수컷을 잠시 붙잡아 두는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암컷은 성난 울음소리로 수컷을 한동안 부르더니 가차없이 수컷과 품던 알들을 버리고 다른 수컷을 찾아 떠나버렸다. 이 수컷은 새끼 양육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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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컷은 화려한 장식과 멋진 목소리나 춤으로 끈질긴 구애

 
범인을 잡는데 쓰는 디엔에이(DNA) 검사 기법을 생물학에 도입했을 때 새들은 가장 큰 ‘피해자’였다. 대부분의 새들은 일부일처제로 정숙하다는 1950대 생물학계의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던 것이다. 조사 결과 명금류 종의 86%가 빈번하게 외도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은이가 아카디아딱새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암컷 가운데 절반 조금 넘는 숫자가 비밀 파트너와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바람 피운 대상이 이웃에 사는 수컷은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른 새의 영역 네댓 개를 넘은 곳에 있는 수컷들이었다. 암컷 한 마리의 짝짓기 상대는 스무 마리 이상이었다.

 

수컷들은 암컷과 짝짓기를 할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유럽울새의 수컷은 구애할 때 암컷에게 먹이를 주는데, 암컷은 마치 새끼처럼 먹이를 끈질기게 조른다. 먹이 공급 속도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조르는 소리는 점점 크고 잦아지는데, 문제는 다른 수컷들도 이 소리를 듣고 암컷 주위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먹이공급이 시원찮으면 서방질을 하겠다는 위협인 셈이다.

 

그럴 만한 생리적 이유가 있다. 산란기에 암컷은 하루나 이틀에 한 번 배란하는데, 정자가 이 난자와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정도이다. 수컷이 수정에 성공하려면 산란기 동안 암컷과 교미해 정자가 암컷 난관 바닥의 터널에 저장되도록 하거나 배란 직전에 교미하는 길밖에 없다. 타이밍을 잘 잡아야 후손을 남길 수 있다.

 

수컷은 이 짧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섹시할 필요가 있다. 암컷은 수컷을 치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 더 화려한 장식과 더 멋진 목소리나 춤을 추는 수컷을 고른다. 이런 ‘성 선택’은 생물진화의 큰 원동력이다.

  
 힘을 합쳐 둥지 틀지만 알 낳자마자 ‘이혼 경주’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형질을 암컷이 선택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건강한 수컷만이 정교한 회전과 점프, 도약이 들어간 춤을 출 수 있으며, 빨간 색 깃털이 잘 발달한 수컷은 오로지 식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잘 생산한다는 증거이다.

 

새들의 새벽 합창도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암컷은 밤새 공복 상태에서 어떤 수컷이 더 복잡한, 그래서 에너지가 더 드는 노래를 부르는지 유심히 지켜본다. 수컷 중 누가 건강한지가 거짓 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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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은 짝짓기와 번식의 주도권을 지니고 수컷을 무한경쟁에 몰아넣는다. 선택권을 쥔 암컷은 배우자를 속이고 불륜을 저지르며 자식을 버리기도 한다. 물론 수컷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달팽이솔개의 이혼율은 60%에 이른다. 암컷의 3분의 1은 아직 새끼가 독립하려면 1달은 남았는데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다른 수컷과 새 둥지를 튼다. 새끼를 기르는 부담은 수컷에게 넘어간다. 수컷의 20%는 선수를 쳐 먼저 달아난다. 힘을 덜 들이고 유전자를 더 퍼뜨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이다.

 

유럽오목눈이의 이혼율은 100%이다. 암수가 힘을 합쳐 둥지를 틀지만 알을 낳자마자 ‘이혼 경주’가 시작된다. 대개 수컷이 다른 암컷과 살림을 차리기 위해 달아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암컷은 낳은 알을 둥지 바닥에 숨긴다. 그 와중에 암수가 동시에 둥지를 버리는 사태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 새가 살아남는 건, 한 철에 여섯 개나 둥지를 틀 만큼 활발한 번식활동 덕분이다.

 
 떠돌이알바트로스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지극정성

 
모든 새들이 이혼을 밥 먹듯 하는 건 아니다. 떠돌이알바트로스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새끼를 먹이기 위해 둥지에서 2000㎞ 밖까지 날아가 먹이를 구해오는 헌신을 부부가 교대로 한다.

 

수컷은 자신이 외도를 하기 때문에 암컷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암컷의 간통과 불륜을 눈치챈 수컷은 어떻게 행동할까. 놀랍게도 수컷은 그런 일이 없었던 듯 행동한다.

 

둥지에 몇 개의 알이 있다. 그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자신의 정자로 수정된 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 건지 가려낼 재주가 없으니 정성껏 품고 먹이를 물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알은 전혀 없는데 애만 쓰는 안타까운 수컷도 적지 않다.

 

지은이는 새들이 짝을 선택하고 이혼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이기적인 종족 번식 욕구가 작용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새를 그 유전자의 발현체로만 볼 것도 아니다. 개체로서의 새가 자식을 기르는 헌신과 희생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굳이 여기서 유전자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지은이는 사람과 새를 등치하려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경쟁과 갈등이 어떻게 행동의 진화를 구체화하는지에 대한 여러 유사점이 인간과 새에게 있지만, 새들의 감성이나 생각, 의사결정 과정이 인간과 똑같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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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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