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최강 동안’ 변신으로 성공했다

조홍섭 2011. 02. 01
조회수 60901 추천수 0
늙어도 앳된 애완견으로 ‘진화’해 사람 사랑 듬뿍
원숭이보다 지능 낮지만 눈치 9단으로 생존 탁월
 
 
지금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지만 우리 집 반려견 초롱이는 언제 봐도 귀여웠다. 요크셔테리어 특유의 털북숭이 얼굴에 숨겨진 커다란 눈동자, 짧은 주둥이와 반짝이는 검은 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모습이 어린 아기 같다. 초롱이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왜 그렇게 어려 보이냐는 것이었다. 만 15살에 세상을 떴으니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대략 아흔이 넘은 나이였는데도 그랬다. 초롱이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애완견은 앳돼 보인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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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의 ‘진화’, 어리게 더 어리게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1998)란 책에서 미키마우스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흥미롭게 논의했다. 그는 미키마우스가 처음 나온 뒤 50년 동안 형태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꼼꼼히 조사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우선 눈이 커졌다. 눈의 길이는 머리 길이의 27%에서 47%로 늘어났다. 머리의 길이는 키에 비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두개골이 확대됐다. 이런 변화를 한 마디로 뭉뚱그리면 ‘어린애처럼 됐다’는 것이다.

 
아기는 사람들에게 강한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아주고 싶다거나 보호해 줘야지, 라는 감정을 촉발시킨다. 먼저 커다란 머리에 비해 몸통과 팔다리가 작다. 눈은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주 커 보이지만 다른 부위가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면서 점점 작아 보인다. 이가 나면서 턱은 점점 커진다. 따라서 유아기의 특징은 큰 두개골, 큰 눈, 작은 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마도 미키마우스의 제작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물학적 원리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굴드는 말한다.

 
‘네오테니’(neoteny)란 진화생물학 용어가 있다. ‘유아화’로 번역되는 말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어릴 적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생물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도 대표적으로 네오테닉한 동물이다. 사람과 침팬지는 태아 모습이 거의 비슷하지만 태어난 뒤 사람은 느릿느릿 성장하면서 어린애다운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한다. 사람 쪽에서 침팬지를 보면, 우리와 유전자의 98.5%가 같아 가장 가까운 친척이면서도 왜 이리 못 생겼냐고 아쉬워하겠지만, 침팬지 쪽에서 보면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애들 같은 한심한 모습으로 비칠지 모른다.
 

사람이 개를 아는 것보다 개는 사람을 더 잘 알아
 
산천어도 그런 예이다. 산천어는 원래 송어다. 송어는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양양 남대천 같은 하천 상류에 알을 낳는다. 깨어난 송어는 어느 정도 자라 바다로 가 성장한다. 어릴 적 송어는 분홍빛 둥근 반점이 나 있는 모습이 동글동글하고 예쁘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먼 바다에서 자라 산란기가 돼 하천에 찾아올 때는 입에 길쭉하게 삐져나오고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나는 등 억센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산천어는 바다로 가지 않고 하천에 그대로 머무는 육봉형 송어를 가리킨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어린 송어의 모습을 나이 들어서까지 유지한다.

 
또 다른 네오테닉 동물이 바로 개이다. 개는 늙도록 어려 보인다. 사람이 그렇게 기른 결과일까 아니면 개 스스로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먼저 개의 행동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동물행동학에서 인지능력을 알아보는 이런 실험이 있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두 개의 통 가운데 하나에 과자를 넣는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뚜껑을 꼭 막는다. 실험자는 가리키거나 쳐다보는 식으로 어느 쪽에 과자가 숨겨져 있는지 동물에게 슬쩍 암시를 준다. 실험대상인 원숭이와 개 가운데 어느 쪽이 과자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을까. 정답은 개이다. 심지어 생후 아홉 달 된 강아지와 원숭이를 이 게임에 붙여놓아도 강아지가 이긴다.

 
지능만으로 따진다면 개가 원숭이를 따라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지만 개는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고슴도치 가시에 코를 찔려 낑낑대는 동료를 옆에 두고도 고슴도치에 코를 들이대는 게 개다. 그러나 이 실험은 개가 사람의 사소한 동작에서 의미를 잡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는 지난 수 만년 동안 사람과 살아오면서 독특한 인지능력을 길러왔다. 우리가 개를 아는 것보다 개는 우리를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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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학명이 ‘가족처럼 친근한 늑대’라는 뜻
 
개는 돼지나, 양, 소 등보다 먼저 사람이 길들인 최초의 가축이다. 하지만 개의 기원은 최근까지도 수수께끼였다. 습성이나 외모로 보아서 개는 늑대와 가까울 것으로 누구나 짐작했지만 딱 부러진 근거는 없었다. 진화론의 선구자인 찰스 다윈은 개가 늑대, 코요테, 자칼 등이 복잡하게 교배해 만들어진 종이라고 믿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콘래드 로렌츠는 개의 일부는 자칼, 나머지는 늑대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의 기원에 관한 좀 더 분명한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유전자 지문을 검색하는 분자생물학의 도움이 필요했다. 캘리포니아 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로버트 웨인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1997년 마침내 “개는 길들인 늑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우리가 기르는 개의 학명은 ‘가족처럼 친근한 늑대’라는 뜻이다. 연구팀은 전 세계의 개 67종 140마리와 늑대 162마리로부터 세포를 얻어 그 속의 디엔에이 지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개의 유전자는 늑대와 1%만 다를 만큼 비슷했다. 늑대와 코요테의 유전자 차이는 6%이다. 개와 늑대는 교배가 가능하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늑대 개’는 번식력이 있다.

 
이 연구는 다른 ‘유전자 시계’ 연구와 마찬가지로 암컷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모든 개의 어머니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마지막에 4마리에 이르렀다. 이들은 말하자면 ‘이브 개’인 셈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암 늑대였고, 나머지 셋은 늑대와 가축화된 개 사이의 교배로 생겨난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개의 가축화는 단 한 번 일어났고, 그 대상은 늑대였다는 것이다. 스웨덴 웁살라 대 칼스 빌라의 연구로는, 개의 유전적 다양성은 동아시아가 가장 풍부하다. 이 지역이 가장 일찍부터 개를 길들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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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가축화가 인류를 멸종에서 살린 구세주?
 
고고학자들이 찾아낸 가장 오래 된 개의 화석은 서아시아에서 발견된 1만4천 년 전의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의 결과는 달랐다. 개의 기원은 3만~13만5천 년까지 거슬러 올랐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 정착한 이후 개를 길들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연구결과는 개와 함께한 인류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5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져나갔을 때 이미 이들 수렵채취인들 곁에는 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첫 만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늑대 무리가 사람들 주변을 얼쩡거리게 됐다. 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과 채집을 하는 사람들이 남긴 음식찌꺼기를 노렸을지도 모른다. 늑대는 사냥꾼이지만 동시에 청소부이기도 하다. 당연히 사람을 덜 무서워하는 늑대에게 먹이를 얻을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갔을 것이고 새끼를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늑대가 사람을 선택했고 그 결과 개가 탄생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 예컨대, 사람 주변을 얼씬거리던 늑대의 새끼들을 사람이 가져다 기르는 일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동물을 가축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 늑대는 사회성 동물이다. 어릴 때 사람 손에서 자란 늑대 새끼는 사람을 자기 무리의 우두머리로 간주해 복종한다. 집에서 기른 늑대의 유용성은 곧 밝혀졌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놀이 상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집이나 다른 가축을 지켰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보다 뛰어난 사냥능력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개의 가축화가 인류를 멸종에서 살린 구세주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늑대는 무리를 이뤄 사냥하는데, 사냥한 먹이는 잡은 늑대가 먹는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에게 바쳐 권력 순서대로 나눠 먹는다. 길들인 늑대는 아마도 먹이를 사냥한 다음 먹지 않고 주인을 기다렸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육체능력과 도구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사냥이 늑대를 이용하면서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가축과 마찬가지로 늑대는 식량사정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한 살아있는 비상식량이자 잠자리를 덥히는 침낭 구실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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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350품종 4억 마리, 인간 다음
 
일단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더라도 늑대가 개로 바뀌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터이다. 수 만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성난 개의 이빨에서 늑대의 기억을 어렵지 않게 되살릴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은 좀 더 온순하고 사람 말을 잘 듣는 개체들을 선택해 기르는 육종을 의도적으로 오랜 세월 거듭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이 있다.

 
러시아 세포 및 유전학 연구소 드미트리 벨리예프는 이런 선택을 통해 은여우를 가축화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이 실험은 그가 죽은 뒤 류드밀라 트루트 박사에 이어지는 무려 40년간 계속됐다. 그 결과 4만 5000 마리의 은여우 가운데 100마리의 온순한 형질을 가진 개체를 얻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선택과정에서 온순한 형질만 얻어진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귀가 복슬거리고 꼬리 끝에 흰색 반점이 생기는 다른 형질도 따라서 선택됐다는 사실이다.

 
늑대를 개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늑대의 모습은 주둥이가 짧아지고 전체적인 윤곽이 동글동글한 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모습은 늑대가 어렸을 때의 형태와 유사하다. 말하자면 나이를 먹어도 어린 모습을 간직한 늑대가 바로 개라는 얘기다. 인류는 오랜 선택 끝에 사납지 않고 사람 말을 잘 듣는 ‘어린 늑대’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늑대는 사람의 행동을 재빨리 이해하고 보살핌과 먹이를 제공받는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모두 350품종 4억 마리의 개가 산다. 포유류 가운데 인간을 빼고 이처럼 성공한 예는 드물다. 수많은 동료 인간이 식량부족으로 죽어가는데도 인류는 애완견 사료를 생산하느라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이만하면 늑대의 변신은 성공한 게 아닌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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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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