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야생동물 ‘빛 공해’ 시달린다

조홍섭 2020. 03. 18
조회수 15350 추천수 1
1월 스키리조트 무주읍 수준 밝기…삵, 하늘다람쥐 피해 우려

do1.jpg » 야간 스키장의 조명이 야생동물을 교란하는 빛 공해로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여 년 전 국립공원 가운데 최악의 환경파괴를 겪은 덕유산이 그때 지은 스키리조트 때문에 이번에는 심각한 ‘빛 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공조명의 영향은 스키 성수기인 겨울철에 특히 심해, 무주덕유산리조트가 내쏘는 빛의 양은 인근 도시인 무주읍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사실은 성찬용 한밭대 교수와 김영재 영남대 교수가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덕유산의 빛 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빛 방사량이 가장 많은 곳은 무주덕유산리조트내 스키하우스와 호텔이 위치한 지점으로 1월의 야간 빛 방사량이 8월보다 2.7배 많았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덕유산국립공원 구역 중 빛 공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은 공원면적의 6.5%인 14.8㎢로, 여기에는 무주덕유산리조트를 비롯해 무주구천동 관광특구, 공원 관통 도로인 37번 국도와 49번 지방도 주변이 포함돼 있다. 연구자들은 “겨울철 스키 슬로프와 부대시설 조명이 덕유산국립공원 빛 공해의 주원인”이라며 “특히 겨울철 빛 공해가 심한 까닭은 장시간 야간 조명을 하는 데다 조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나뭇잎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do2.jpg » 위성에서 감지한 2018년 1월의 빛 공해. 덕유산국립공원 한가운데 있는 무주덕유산리조트(가운데)의 빛 방사량이 인근 도시 무주읍과 맞먹는다. 성찬용·김영재 (2020)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공.

연구자들은 빛 공해가 심한 이들 지역에는 담비 등 포유류 4종, 새호리기 등 조류 2종, 꼬리치레도롱뇽 등 양서파충류 9종, 감돌고기 등 어류 2종 등 다수의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야행성인 동물은 빛 공해에 취약한데, 무산쇠족제비와 삵 등의 포식자는 먹이 사냥 중 발각돼 사냥 성공률이 떨어질 수 있고, 하늘다람쥐 같은 야행성 소형 동물은 둥지에서 나오기를 꺼려 활동시간이 줄어드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빛 공해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박새를 대상으로 피해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는 2014년 나왔다.

조우 상지대 교수팀은 빛 공해가 심한 대학 내 박새와 빛 공해가 없는 치악산국립공원의 박새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빛 공해가 심한 곳의 박새들이 자연 지역에서보다 아침에 먼저 울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새 암컷은 새벽에 먼저 우는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하는데, 빛 공해로 미성숙한 수컷이 짝짓기에 성공하거나 아직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새끼가 깨어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do3.jpg » 빛 공해가 심한 곳의 박새는 일찍 울고, 그 때문에 미성숙한 수컷이 교미해 번식 성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랜시스 프랭클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성찬용 교수 등 연구자들은 “보호 야생동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서식환경에 대한 모니터링과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립공원 안에 무주덕유산리조트 같은 대규모 건축물뿐 아니라 주거용, 사찰용 건축물도 많은데 야간 인공조명에 대한 규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스키장의 야간 조명은 안전 문제가 있어 호텔 등 시설 중심으로 조명을 줄이고, 국립공원 인접 상가와 숙박시설에서 주민과 협의해 빛 공해를 줄이는 조명 개선을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가운데 대도시에 인접한 북한산, 계룡산, 무등산, 경주 등의 빛 공해가 가장 심하며, 군부대가 위치한 변산반도국립공원과 공원 한가운데 스키리조트가 있는 덕유산이 뒤를 잇는다.

인용 저널: 한국환경생태학회지, DOI: 10.13047/KJEE.2020.34.1.6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