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살벌은 사람처럼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다
여러 여왕벌 동거 복잡한 사회생활, 불필요한 경쟁 낭비 피하려 진화
257개 유전자 관여 밝혀져, 시각적 학습 아닌 독립적인 유전적 진화 결과

전화번호는 쉽게 잊어도 아는 사람의 얼굴을 잊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해, 우리 뇌에는 이 일을 전담하는 부위가 따로 있을 정도다. 사람의 시각정보 처리 가운데 얼굴 인식 능력이 가장 강력하다.
이런 얼굴 인식 능력은 사람과 같은 사회성 동물인 짧은꼬리원숭이와 양, 그리고 뜻밖에도 곤충인 쌍살벌에게서 발견됐다. 쌍살벌 가운데 일부 종(Polistes fuscatus)은 사람처럼 얼굴이 다 다른데, 이들은 더듬이와 무늬, 색깔의 미묘한 차이를 잘 구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티벳 미국 미시건대 생물학자 등은 201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 쌍살벌이 동료의 얼굴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미로를 이용할 실험을 했는데, 쌍살벌은 먹이인 애벌레나 추상적인 무늬보다는 동료 쌍살벌의 얼굴을 이용한 실험에서 가장 빨리 배우고 정확한 해결책을 찾았다.

이 쌍살벌은 종종 여러 마리의 여왕벌이 하나의 둥지를 튼다. 따라서 말벌 사이의 먹이 분배, 일 분담, 번식 우선권 등을 둘러싸고 분쟁의 소지가 커 복잡한 권력구조와 엄격한 위계질서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얼굴 인식이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쌍살벌과 같은 속이지만 종이 다른 쌍살벌(Polistes metricus)은 여왕벌이 한 마리이고 덜 복잡한 사회구조를 이루는데, 얼굴 인식을 전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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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포유류와는 두뇌의 크기와 구조가 전혀 다른 쌍살벌이 어떻게 동료 얼굴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는 복잡한 능력을 얻게 됐을까. 이 말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포유류와는 전혀 다른 진화를 거쳐 이렇게 진화했을 수도 있지만, 개별적 말벌이 살아가면서 일종의 시각적 패턴 인식 능력을 획득했을 수도 있다.
당시 연구결과를 전한 <네이처>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라스 칙타 영국 퀸매리대 행동생태학자는 “만일 쌍살벌이 진화적 적응을 통해 얼굴 인식 능력을 얻었다면 이처럼 작은 두뇌의 동물이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일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가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될 것”이라며 “그런 능력을 두뇌의 대대적 재조직화를 통해 획득했을까, 아니면 아주 작은 변화로도 그처럼 놀라운 기술을 진화시켰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 의문을 풀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앞서 연구에 참여했던 과학자를 포함한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실험 생물학> 1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쌍살벌의 얼굴 인식에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 쌍살벌의 얼굴 인식에는 257개의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능력이 단지 말벌 개체가 배운 시각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포유류와 독립적으로 오랜 진화 경로에서 획득한 결과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개별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사람과의 관련성은 있는지 등은 앞으로 규명할 과제로 남겼다.
저자의 하나인 에이미 토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물학자는 “밝혀진 유전자를 실험적으로 조작해 쌍살벌이 서로의 얼굴을 잊거나 더 잘 기억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실험 생물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li J. Berens et al, Cognitive specialization for learning faces is associated with shifts in the brain transcriptome of a social wasp,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7) 220, 2149-2153 doi:10.1242/jeb.1552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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