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개구리 장날

조회수 9811 추천수 0 2011.12.07 04:08:02

(개구리 장날)

 

시작은 안개비에 때론 이슬비가 내리다 말다해도 이젠 소용없다. 열흘 가량 흐리고 비 오시는 날이 계속되자 언제 해를 만났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긴 수난 속에 지칠 대로 지친 이웃한 곤충들은 무더기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텐데…….

역시나, 자주 뜨락으로 눈을 돌려도 생명의 자취는 한참 멀다. 빗소리라도 그나마 울리지 않으면 그저 적막강산.

이따금씩 팔랑거리는 작은 흰나비 날갯짓엔 안타까움이 그득, 꽃에 든 꿀을 건네지 못해 축 처진 얼굴을 땅에 바짝 떨어뜨리고 있는 색 바랜 개망초들은 우는 가, 조는 가.

 

아무리 물의 날이 길다 해도 문득 비 오시는 바다, 짙은 청색 바탕이 못내 그리웠다. 마냥 하글대는 백색 파도머리가 진정 간절했다. 몸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도 더는 참고 말리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깊이 잠들어 차갑게 식어있는 트럭 시동을 오래 애써 걸고 의장대 교차 칼로 도열하듯 빗발에 허리 푹 숙인 풀잎들 사열을 받으며 터덜거리는 오솔길로 나섰다.

쨍! 냉기 도는 운전석도 좀 있으면 나아질 테지, 8월도 오늘로 마지막 날.

 

비 오시는 틈을 비집고 내 모르는 어느새 과객의 손길을 받았는가, 길에 떨어져 설익은 채 으깨진 알밤 껍질들을 보니 맘이 서운타. 버려진 밤톨 색깔도 아직은 흰색일 뿐 익은 색이 아니다. 햇살이 크게 모자라다 보니 알밤도 나이를 덜 먹는다?

잠시 차를 세우고 물속에서 집어 올린 흠뻑 젖은 중간 크기 밤톨 하나, 연질 껍질일랑 맨입으로 문제없이 벗겨내고 통째로 입에 넣는다. 타의에 의한들 올 첫 알밤을 드디어 입에 넣은 것이다. 물맛인지 밤 맛인지 도통 모르겠다.

 

전진할 수가 없었다.

침목다리 끝에서 헛 심장만 부르릉 달달거리는 고물 트럭은 혼자서만 자꾸 울컥거릴 뿐 더는 다리 밖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맙소사! 눈 아래 말끔하도록 비로드 빛 윤기로 반짝이는 젖은 포장도로 위에 질펀하게 펼쳐진 크고 작은 산개구리들의 사보타지가 바퀴를 옹골차게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삶의 여정을 깊이 있게 생각한다거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숭고한 모습이 아닌 줄은 내 안다. 조금이라도 온도가 높은 포장도로에 바짝 엎드려 그의 온기를 빌려볼 가벼운 속셈일지언정, 무고한 날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서선 순 억지를, 된 배짱을 부리고 있다. 가장 가까이 앞장선 중치 크기 한 녀석은 아예 정면을 내 쪽으로 향하고 있어 노골적 맨몸 떼쓰기로 제대로 한판 시위를 벌이는 중, 피해갈 여지는 한 틈도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맘속으로 정겨운 바다를 기리는 파릇한 그리움일랑 멀리 물바다 건너갔음을 금방 알아챈다.

 

벌써 4년째 내 차는 클랙슨이 듣지 않는다. 고치고 싶지도 않다. 사위가 워낙 고적한 산골짜기에선 이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개구리 녀석들이 클랙슨 소리에 반응을 보여 순순히 비켜나 준다면야 얼마든 돈 들여 수리를 할 테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내 어디서도 읽은바 들은 기억은 없다.

그래, 가슴 저리도록 그리운들 비 오시는 청색 바다가 다 무엇이랴! 이것들을 박차고 전진할 만큼 나는 매몰차지 못하고, 미련한 차바퀴를 견딜 만큼 개구리는 단단하지 못하고, 청색 부름으로의 유혹, 백파로 마구 치달릴 동쪽바다는 너무도 멀다.

무작정 떨치고 나선다면야 제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하조대 청색 바닷가에 이르는 동안 녀석들 황당한 삼각형을 열쯤은 무너뜨려야 할 것이고, 무자비 살생이란 양심의 가책을 안고도 자비로운 바다가 청량한 빛으로 눈에 옳게 들어올 리도 없다. 그래도 밝은 대낮엔 어찌어찌 피해를 줄여간다 쳐도 돌아오는 길, 어둔 밤에는?

브레이크 밟은 다리에 스르르 맥이 풀리자 잘 알았다는 듯 차는 제 알아서 슬슬 뒷걸음친다. 어차피 침목다리 세심교는 안으로 경사롭기 때문이다.

 

참고 참은 끝에 오늘, 한가로울 줄만 알았던 오늘이 하필이면 개구리 장날, 망할 녀석 개구리 놈들은 부디 잘 먹고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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