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연기)
아름드리 밤나무 썩은 그루터기 밑동에 노란 영지버섯 한 쌍이 달렸더라, 크기는 제법이어도 아직 여물지 못한 게 다 익으려면 시간 깨나 걸릴 듯, 뒷날을 기다린들 내 차지가 되려나 몰라, 그래서 소문난 천연의 영지 차를 내 운으로 마셔 볼 수 있으려나 몰라.
앞동산 가시 엉겅퀴도 제 씨앗을 한창 깊은 보랏빛으로 여물이고 큰 달맞이 꽃대도 절반쯤 성숙해 있다. 반가운 밤손님, 초대받은 은근한 방문객이 될 것을 약속하며 앞으로 한 계절을 단단히 기약해 둔다.
매년 성깔이 달라지는 뜨락 식물 군상들이 올해도 여느 해 같지 않다.
작년엔 뜨락과 주변을 온통 독차지하고 있던 개망초, 이제 막 시작된 개망초 꽃밭이 한결 성기다. 덕분에 범이라도 튀어나올 듯 온갖 잡초들로 무성하던 뜨락도 바닥이 보일 만큼 한산한 편다.
아무리 뜨락 표정이 달라진다 해도 참쑥 향당쑥의 끈질긴 자리 굳힘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남을 애써 구축하는 법도 없이 그저 제 고집을 굳건하게 유지할 뿐다.
이상한 점 하나는 끈질기기로 저 유명한 민들레가 너른 뜨락에 아직 한 촉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제 자리를 잡아 노랑꽃에 이어지는 우주선 같이 둥글고 아름다운 홀씨날개 공을 자랑할는지 몰라.
운 좋게 반 양지에 자리 잡은 초롱꽃은 아직 싱싱한데 말짱 양지에 자리 잡은 초롱꽃 봉오리들은 벌써 누렇게 탈색된 채 한해의 마무리를 서둘고 말았다.
상황이 훨씬 좋은 반 양지보다 왜 뜨거운 온 양지에 유난히 무리 지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 음지의 꽃들은 번식력에 별로 표가 나지 않는데 비해 양지의 꽃들은 수명은 짧아도 매년 눈에 띄게 포기 수가 늘고 있다. 가파르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존을 포기하지 않음, 이래서 스스로 앉을 자리 입지를 선택할 수 없는 식물들의 입장이란 무조건 딱하다.
엄청 질기고도 짓궂은 녀석 새삼 줄기를 함부로 부러뜨려 숨통을 틔워 줬더니 둥굴레 녹색 콩 열매가 혼자서 잘도 익어간다. 잘생기고 늘씬한 잎새 10여 포기도 그새 기운을 회복한 듯 깔끔하다. 공들인 만큼만 눈치 봐서 콩알 몇 알갱이쯤 회수할 수 있을까 몰라, 하지만 이일만은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얼룩 다람쥐네 춘궁기, 작년 가을에 비해 몸집이 절반으로 줄어있는 토종 다람쥐가 가장 궁색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힘써 숨겨뒀던 알밤도 지금쯤은 모두 고갈됐을 테고, 새로운 먹거린 일러도 한참 이른 시기, 그토록 통통하던 볼따구니도 마냥 날씬해져있어 보기에 안쓰러움을 더한다. 철모르는 새끼 다람쥐들의 기운 빠진 안타까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몇 알갱이씩 달려있는 둥굴레 열매, 채 익지도 않은 열매가 어쩐지 아랫부분만 다 떨어지고 없더라니, 결국 내 손을 빈 씨앗 번식보다 기왕이면 입장 딱한 다람쥐 편에 이루어짐이 역시 순리일 것이다.
새벽 세시까진 올 첫 열대야에 누워선 뒤척이고 서면 어슬렁거렸다.
쥔일 수 없는 손님 열대야가 밤을 낮인 줄 알고 깜박 물러가질 못한 것일까, 달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빛만 희끔한 그믐인데 말다. 이래서 객은 객이되 불청객이란 소릴 사서 듣는다.
웬 소나긴가 했더니 창밖을 감돌아드는 솔바람 소리, 그 맑은 머리로 차라리 깨어있으란 부추김인 듯, 덕분에 이른 계절 밤손님은 슬그머니 꼬리를 사린다. 이래서 아직은 밉지 않은 불청객.
토종 밤나무의 비릿한 향기를 쫓아 반딧불이는 기꺼이 시야 가까이 다가와 준단다. 그저 빈객일 수 없는 반딧불이, 벗이라도 너무 아득한 벗이기에 다만 바라보기만 할 뿐, 그를 향한 아릿한 그리움에 기대어 난 또 한해를 연명했나보다. 영원한 짝사랑일지언정 그래! 지금에 날 숨 쉬어 살게 하는 보람은 다음 주쯤 찾아온다는 반딧불이 약속다. 신실한 벗은 결코 날 외면치 않을 테고 내 기다림의 한해는 드디어 정점을 맞이할 꺼다. 그쯤 야밤이면 불청객이야 아무래도 좋아라, 황송함이 깊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난 어둠에 선 채로 바위가 될 꺼다. 또 선바위가 될 꺼다.
여린 주홍반이 동쪽 하늘을 느릿하게 밀고 올 무렵, 심상의 원형질을 찾는 구도여정은 아직 갈 길이 먼데, 지금 당장 가슴으로 저며 드는 건 먼 마을 강노인 댁 밥 짓는 연기, 밥 짓는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