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단풍소리
“하나, 둘, 셋, 넷…” 정갈한 역광의 아침 뾰족한 햇살이 배면으로 쪼이면 순백의 털 복숭이 초록의 콩꼬투리는 투명한 제 속 알갱이들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고스란히 들키고 맙니다. 아직 설익은 풋콩 꼬투리, 이것들이 넉넉히 농익어서 검어지면 이름하여 풀 단풍이 되고, 10월도 햇살 좋은 어느 날 오전 10시쯤 작으나 큰 목소리, 명징한 웃음소리로 “틱, 띠딕, 또드락!” 여리고 해살 맞은 음성을 투명한 대기면 산소 밭에다 환하게 뿌려댑니다.
누렇게 말라가는 풀밭 가운데 살그머니 쪼그렸다가 미진함에 아예 털썩 주저앉으면, 그래 그렇지! 철모르는 콩꼬투리 속의 작은아이들 여럿이 기다렸다는 듯 얼굴로 볼따구니로 함부로 뛰어듭니다. 넓은 세상에 닿기 전 내게로 품안으로 먼저 달려듭니다. 그들이 태어날 내일의 세상, 가을뜨락 한복판에서 나는 다소곳이 숨을 죽입니다. 당연한 듯 고개가 숙여지고 시키지 않아도 눈은 스르르 감깁니다.
육신의 눈이 꼭 감겨야만 심안이 열리고 드디어 가슴 속 폐부 세포까지 깊숙이 취하게 됩니다. 결국 가을 들판 풀 단풍소리에 전신일랑 흠씬 적시고야 맙니다.
모이고 고여서 이슬진 향기 방울이 행여 떨어질라 심장의 고동조차 작게 줄여주면, 이쯤이면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몽롱한 듯 아득해짐이 겁나지 않는다면 코끝에 감도는 농익는 가을 짙어진 풀 향기라면, 사색을 향유할 때 필연의 안주로 삼으시면 더 없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