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냉엄한 초원

조회수 134144 추천수 0 2011.10.24 00:11:08

냉엄한 초원

 

냉엄1.jpg

 

싸구려 똑딱이 디카 표준렌즈만으로 접사가 될까? 워낙 작은 야생화 ‘털별꽃아재비’를 발견하고 신중하게 표준접사 한계치까지 접근해 촬영하느라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초원에 바짝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문득 이상한 기운이 돌아 퍼뜩 뒤를 돌아다봤습니다.

 

이마에서 얼굴에서 땀방울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아하! 작은 소요가 다른 편 풀잎 위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내 입장에서 작은 소요라 말했지만, 잠깐 한눈을 팔고 있었던지 더위를 식히려 일시 쉬고 있던 참인지 꿀벌 한 마리가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만 날개 곤충계의 맹수 ‘호랑파리매’에게 덜컥 걸려들었던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꿀벌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풀잎을 온힘 온 다리를 총동원 사력을 다해 꽉 붙들고 있었고, 호랑파리매는 마다하는 녀석을 기필코 끌고 가려고 날갯짓을 맹렬하게 휘젓고 있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한 차례씩 온 힘을 다해 파리매가 날개를 날릴 때마다 ‘이잉-잉’ 소리가 제법 대기를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던 겁니다. 원래 가장 은밀한 사냥꾼의 하나인 파리매 족속들이란 평소엔 날갯짓 소리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나, 얼마나 꿀벌을 맹렬하게 붙들고 흔들며 가자고 통사정을 하면 그처럼 큰 진동음이 발생하기도 하겠습니다. 내가 느꼈던 직선적인 느낌, 수상하도록 서늘한 기운은 바로 이것이었던 겁니다.

 

냉엄2.jpg

 

그저 망연토록 바라보고만 있을 뿐 목전의 사태에 임해서 난 어떤 행위든, 누구 편이든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있을 수 있는, 없을 수 없는 태연한 비극 즉 냉엄함이란 지금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뿐, 함부로 시비선악을 논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까지도 나는 모르지 않습니다. 여름 한복판 염천의 뙤약볕 아래 초원 한 귀퉁이엔 이 같은 지극히 천연스러운 경우도 얼마든지 내포되어있음입니다.

 

몸에 철석같이 밴 습관이겠죠, 무심중에 렌즈를 다시 접사 한계치까지 바짝 들이대고 주의껏 이처럼 사진 꼭 한 장을 성공리에 일단 찍었습니다. 내겐 거의 동물적 본능이랄 수 있습니다만 아차! 이 같은 사소한 듯 부주의한 행위 하나가 꿀벌에겐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고하고 호랑파리매에겐 아닌 행복을 가져다주는 동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유난히 반짝이는 은백색 사진기의 접근을 알아챈 꿀벌이 위험대피본능에 따라 회피하려고 무심코 다리를 놓았다가 그만 파리매의 간절한 요망대로 어디론가 냉큼 끌려가게 되었던 겁니다. 참으로 난처한 상황에 임해서 신나라! 하며 파리매가 쏜살같이 사라져 간 빈 하늘을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나로서 결단코 본의는 없었지만 기왕에 꿀벌 세상에서 악한이 된 바에야 호랑파리매 세상에선 동무가 되었다는 발언도 전혀 위로되지 않습니다.

 

‘뚝뚝’ 땀은 계속 소낙비 오듯 흘러내리고 눈은 따갑지, 하늘엔 오늘따라 지랄같이 조각구름 한편 보이지 않았습니다. 8월도 한복판, 깊숙한 초원의 내밀한 야사 일장에 온통 몰입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혹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훅훅’ 단내 나는 입에선 알 수 없는 한숨 한 모금 부지 간에 길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새어나왔습니다.

아! 현기증, 나도 모르게 풀밭 위에 털썩 그만 주저앉았던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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