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물방울의 일생

조회수 22452 추천수 0 2011.09.27 04:00:07

 

(물방울의 일생)

 

3줄기 각개 흐름들이 모여 비로소 강원도 양양군을 관통하는 남대천을 이룹니다. 길이 40여 킬로미터인 본류 남대천, 지류로서 20킬로 남짓 갈천, 16킬로 미만인 막내 오색천이 그것입니다.

가장 깊은 곳, 시원이야말로 오대산 꼭대기에서 발원을 한다지만 그래도 비교적 깊은 끄트머리에 속한다는 이곳 면옥치 최상류를 발원지로 잡아 본류 남대천의 아름다운 가을여정을 하루를 할애해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간곡하게 맘먹고 있던 바를 오늘에 드디어 실행하기로 했음입니다.

 

짙은 산안개가 야밤 동안 좋이 모이자 마침내 알맞은 이슬 한 방울이 되었습니다. 산중의 정기와 밤의 요정이 합작으로 빚어낸 응집물질은 이제 막 얻어진 물방울이란 이름과 함께 온 산하를 장장 어울려 흐르기를 허락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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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상류란 어느 물길이건 이처럼 물방울 한 알갱이로부터 드디어 대장정은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하듯 흐름이랄 것도 없이 급하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순 낙하동작으로부터입니다.

 

한 방울의 낙하로부터 모여진 보석 알갱이들이 작은 흐름을 갖추기 시작하되, 아직까지는 일개 산골낙수일 뿐 개천이란 이어진 이름은 붙여질 수 없습니다. 면옥치 계곡도 상류, 거기서 더 찾아들어간 비경 속에 숨은 한 줄기 가느다란 물길입니다. 산간 계곡의 평균 각도는 급격한 45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평적으론 시속 20킬로 정도의 비교적 빠른 속도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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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은 드디어 흐름이란 이어짐을 갖췄습니다. 실개천일지언정 이제부터 산지를 벗어나 개울이란 이름을 비로소 갖습니다. 흐름의 각도도 평균 10도 미만을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부터의 천은 자체로서 운동 능력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도 크게 모인 물줄기라면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보일 수 있으며, 시속 10킬로미터에 불과할지언정 물이 양적으로 더해지면 그의 파괴력은 깨뜨림이라는 가장 큰 위력을 갖습니다. 바위 돌을 산으로부터 떼어내는 역할은 이로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평상시엔 보통 걸음으로도 폴짝 뛰어 건널 수 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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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징검다리를 이용해야지 한 걸음으로 단번에 건너뛰긴 무리일 만큼 개천은 성장을 했습니다. 평균 각도는 5도 미만, 속도도 건장한 사람의 걸음과 비슷한 시속 5킬로미터 정도로 느려져 있습니다. 작은 낙엽 한 장을 물에 띄워 그의 궤적을 초시계로 살펴보면 속도는 거의 정확하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물의 양이 더해지면 이번엔 막강한 밀어내기 위력을 행사합니다. 아름드리 바윗덩이가 개천 바닥을 함부로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다 서늘해질 정도로 가공스런 위력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얌전한 가을단풍 그늘 속으로 제 위력을 감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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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옥치를 흐르던 물길과 오대산에서 법수치를 거쳐 온 물길이 합류되는 지점, 예로부터 물고기가 성하다는 뜻인 어성전 이곳 마을에서부터 개천은 산간계곡 지류를 벗어나 남대천 중상류라는 위치와 제 이름을 얻습니다. 흐름의 각도는 이미 3도 미만으로 급격히 안정되었고 속도도 시속 3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10킬로 정도를 흘러 온 이즈음부터 물은 쓸어내기라는 위력을 이번엔 갖습니다.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존재라면 그것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건, 산언덕이건 가리지 않고 잠깐사이에 본연의 직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가을의 오붓한 정경 뒤엔 이처럼 가공스런 위력이 감춰져 있음을 한가로운 여행자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관망자들은 개천이 펄펄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뿐, 여기서부터 남대천은 정확한 북쪽을 지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양양의 남대천은 남한에선 거의 유일하게 정 북쪽바다로 흘러가는 개천, 회귀성 연어의 본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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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으로부터 30킬로미터 정도를 순탄하게 지나 원일전 도리 수리도 지나 용천마을 입구에까지 흘러오는 도중 서너 개의 작은 개천이 모인 결과 비로소 본연이자 주류의 남대천이 어느새 되어있습니다. 물길의 각도와 속도도 이전과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개천이 대천으로 폭은 크게 넓어져 있을지언정 흐름은 그만큼 안정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위치도 그래서 중하류라 합니다.

 

산, 산, 가을 산이 물에 잠겼습니다. 한창 제철인 단풍을 녹여서 보내려는지 물에 흠뻑 잠겨있습니다. 말 그대로 옥색 일색인 남대천에 왜가리와 백로가 노닐긴 딱 좋습니다. 여기서부터 큰물은 일부 쓸어내기와 쌓아두기를 번갈아 합니다. 역시 자세와 방향이 지극히 안정된 까닭입니다.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천은 드문드문 모래를 보입니다. 자갈과 바위 등 보다 부담되는 무게는 훨씬 상류로부터 차례로 부려놓고 가볍기에 날렵한 흙들만 이곳까지 쓸고 와 흐름이 적당히 느려진 강안에 내려놓습니다. 이조차도 전반적인 천의 길이가 짧고 경사도 급한 편이기에 더 고운 진흙과 뻘 성분은 미처 내려두지도 못하기 마련입니다. 천의 길이가 긴 서해안의 그것에 비해 동해안에 개펄이 일천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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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을색으로 힘차게 물든 설악의 대청봉 붉은 머리가 구름에 무겁게 가려져 있습니다. 바로 양양 읍내를 힘차고 의젓하게 관통 중인 영동지방의 젖줄 남대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배경이며 위용입니다. 설악산에서 발원한 갈천, 오색천 두 개의 형제 물길과, 더 먼 오대산에서 발원된 본류가 읍내 입구에서 비로소 합류되어 짧으나마 강으로서의 위용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대천에 그칠지언정 2킬로미터 남짓한 흐름을 두고 누구라도 차마 강이라 불러주진 않습니다.

봄철이면 바다에서 남대천으로 소상하는 무지개 색 황어들의 힘찬 용틀임으로 강물이 하마 몸살깨나 앓는 곳, 귀한 산삼과 무수한 송이버섯, 멧돼지에 산토끼도 키우고 사람들의 식수로도 얼마든지 배려되며, 마지막까지 귀한 물고기 진객 연어의 가을 소상을 안내하고 생명의 찬가를 기록하는 동안의 생명수, 남대천의 위대한 역할이자 성업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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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시원인 면옥치 깊은 산골짜기로부터 약 35킬로미터를 굽이굽이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흘러온 물방울이 드디어 바다로 들어가는 합류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보매 알고 있는 한 이곳 하구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제일 높은 산은 가장 낮은 물방울을 함부로 가로막지 않았으며, 맹물인들 태산을 한 번도 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리에 따라 순종적으로 흐를 뿐임에도 제 할 일일랑 빠짐없이 남김없이 수행하자 비로소 물방울은 큰물이 되었습니다.

 

표준적인 시간상으로야 하루 남짓한 여정, 우주의 시각에선 단지 찰나에 불과한 극미한 여정이겠지만, 흐름이 막상 종막을 맞이하려는 즈음의 아쉬움 때문인지 자주 멈칫거리고 맴을 돌며 석호에서 머무는 시간을 그야말로 물처럼 소모시킵니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이들도 어쩔 수가 없을 겁니다. 멈춰서 맴을 도는 숙고의 시간동안 다음의 순환과정이 보장되어 있음이 곧 순리이자 자연스러움임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 올려다 보이는 물방울의 원천이자 씨앗 되는 구름을 달리 부운이라 칭할까요? 약 2,000년 뒤 먼 이역의 어느 곳에서 반드시 순환될지언정 다시는 똑같은 과정이 똑같은 장소에서 오늘처럼 반복되진 않을 겁니다. 이처럼 성심을 다해 순리를 따를지라도 사사로이 인연에 엮이지 않음을 곧 무의자연이라 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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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해안 경계 석호의 출구에서 반짝거리는 물방울의 눈빛 하나와 언뜻 눈길이 마주친 것도 같았습니다.시원으로부터 멀리까지 함께 나란히 흐르며 지나온 내 작은 정성에 대한 우정의 눈인사에 겸해 우연이라도 기적이라도 우리 살아서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니 영원한 작별을 알리는 마지막 시그널임을 묵계로 알겠습니다.

걸음이 차마 쉬이 되돌아서지지 않음은 과정을 함께 해온 여운 때문이겠지요, 자꾸 머뭇거리는 내 정감 약간도 그에 딸려서 함께 보냈습니다. 결국 물방울은 대양으로 속해지고 그의 수명도 일정도 모두 닫았습니다. 난 골짜기 시원으로 다시 되돌아가야할지언정 이제부턴 민물로서의 남대천 물방울은 그 일생을 닫으매 곧 동해의 넓고 푸르고 늠름한 바닷물인 것입니다. “안녕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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