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삼을 대토령으로

조회수 16060 추천수 0 2012.11.06 17:49:26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白富欽

글머리에

   필자는 제헌국회의원 선거, 즉 대한민국 시작 초기부터 투표에 참여하였던 퇴경(頹景)의 노인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시작한 역사도 어언 64년이라는 연륜이 쌓였다. 사람으로 치면 장년기를 지난 셈이다. 우리가 그 동안 국회의원과 대통령선거를 여러 차례 치렀다. 뿐만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의회의 선거 등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은 선거를 통하여 조직화되는 사회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번 제 18대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막중한 일들이 예상된다. 북한의 김정은은 김일성대학을 나와 서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고 하니 지금까지 와는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분열된 국론의 통합,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통찰, 한미연합군의 작전권 이양, 대기업의 비대에서 오는 빈부의 격차 등 중대한 문제들이 예상되는 시기니 만큼 어느 때보다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겠기에 필자 나름으로 인물 선정의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함이지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어느 후보를 비방하고자 함이 아님을 명백히 한다.

1. 역사의 개략

   본론에 앞서 역사의 개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왕조를 둘러엎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창건한 이태조의 정치참모였던 정도전(鄭道傳)의 혁명 이론은 통치권이 백성을 위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민심을 잃었을 때는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왕권도 교체 될 수 있다는 이론에 입각하여 왕조 교체를 실행하였다.

   그는 재상(宰相)을 최고 실권자로 하는 권력의 배분이 합리적인 관료체제라고 하였으나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까지가 자기의 운명인 듯 제 일차 왕자의 난 때 참살되었다.

  그의 주장은 왕이 정치를 전횡할 경우 현명한 왕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왕으로 계승될 경우도 있을 것을 예상하여 관료체제의 정치제도를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전이 죽고 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것은 매 4년마다 현명한 대통령을 국민들의 손으로 뽑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야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가려서 당선시키는 일이 우리 국민(유권자)들의 몫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특히 그렇다.

2. 막대기 선거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때 당선된 제헌의원들이 그해 7월 17일에 대한민국의 헌법을 선포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였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길 때는 군주국가(君主國家<임금의 나라>)였으나, 36년이 지나고 국권을 회복할 때는 민주국가(民主國家)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이니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로 투표하여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그들로 국회가 구성되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일부 국민을 제외하고 많은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세상에 백성이 임금을 뽑다니’ 불충(不忠)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백성들도 있었다. 낯선 정치 제도인데다가 문맹자가 많았으니 불가피하게 막대기를 표시로 민주선거는 시작되었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사람도 얼마간 생존하고 계시겠지만, 그때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니 막대기 선거란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르는 계층도 있을 것이다. 막대기 선거란 1,2,3,4.의 숫자를 모르는 유권자가 있었으니 기호가 3번이면 막대기 세 개를 내리 긋고 그 아래에 입후보자의 이름자를 쓰고 그 아래에 기표할 공간을 두었던 선거를 말한다.

   이는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라기보다 민주주의 형식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했다는 요식행위에 불과 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하지만 선출된 제헌국회의원 200명 대다수가 쟁쟁한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당시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많은 수가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 했던 독립투사였거나 항일운동에 직간접으로 헌신한 애국지사가 많았다. 아니면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진 명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인격의 잣대는 독립운동이었고 애국심의 척도도 또한 국가의 독립과 관계가 깊었으나 간혹 애국자로 가장한 범부도 있었다.

3. 민주주의 국가의 탄생

   미국에서 돌아온 전 대통령 이승만의 주도하에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면서 정체(政體)는 군주국가(君主國家)에서 민주국가(民主國家)로 탈바꿈을 하였다.

   나라는 임금님이 다스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백성들이었다. 따라서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제배를 올리던 백성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을 뽑는 투표에 참가하라니 촌닭 시장통에 갖다놓은 것처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님의 권한으로 나라를 통치할 대통령을 백성들(유권자)의 손으로 선출한다는 새로운 제도는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는 자유세계의 조류였고 시대의 변화였다.

4. 민주주의의 시작

   민주주의를 역사로 따지면 우리는 아직 유치원생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된 국토, 해방의 혼란과 무질서, 6.25 전쟁을 치른 폐허 속에서 발전시킨 민주주의였으나 지금은 세계에 우뚝 선 나라로 성장하였다. 여기에는 나라를 이끈 대통령과 전체 국민의 피 땀 어린 노력이 있었고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희생자도 있었다.

   이런 시련의 과정을 이끌어 온 역대 대통령이 대 수로는 17대 이고 사람의 수로는 10명이다. 이들 중 나라를 발전시킨 대통령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치적(治績)을 통하여 그들의 자질을 분석하여 이번 재 18대 대통령 선거에 거울로 삼고자하는 것이다.

5. 역대 대통령의 면모

역대 대통령

1~3대 이승만 (李承晩)

재임

1948.07 ~ 1960.04

전 정무공무원, 독립운동가

4대 윤보선 (尹潽善)

재임

1960.08 ~ 1962.03

전 정무공무원, 전 국회의원

5~9대 박정희 (朴正熙)

재임

1963.12 ~ 1979.10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0대 최규하 (崔圭夏)

재임

1979.12 ~ 1980.08

전 정무공무원

11,12대 전두환 (全斗煥)

재임

1980.09 ~ 1988.02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3대 노태우 (盧泰愚)

재임

1988.02 ~ 1993.02

전 정무공무원, 전 군인

 

14대 김영삼 (金泳三)

재임

1993.02 ~ 1998.02

전 정무공무원, 전 국회의원

15대 김대중 (金大中)

재임

1998.02 ~ 2003.02

전 정무공무원, 전 정치인

16대 노무현 (盧武鉉)

재임

2003.02 ~ 2008.02

전 정무공무원, 전 변호사

17대 이명박 (李明博)

재임

2008.02 ~

전 정치인

*이 자료는 컴퓨터다움(daum)에서 인출하였다.

  이 사진을 보면서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국민들은 그 때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분석에 앞서 유행하는 유머 한 토막을 소개 한다.

   이승만은 국통(국그릇을 마련했다.) 박정희는 밥통(밥을 배불리 먹게 되었다.) 최규하는 자물통. 전두환은 골통. 노태우는 물통. 김영삼은 깡통 이다.(김진배 저,『유머화술』도서출판 무한, 1993,25쪽.)

 

   유머는 웃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전혀 상관성이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상관성이 전혀 없다면 유머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웃으며 들었어도 여운이 남는 말이니 독자 나름의 음미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64년간에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들의 출생지를 지역 별로 보면

황해도 1명 (이승만)

충청남도 1명(윤보선)

경상북도 2명(박정희,노태우)

강원도 1명(최규하)

경상남도 3명(전두환,김영삼,노무현)

전라남도 1명(김대중)

일본 오사가 1명(이명박)

   이들을 연령 별로 보면

70대가 2명 (이승만, 김대중)

60대가 4명 (윤보선, 최규하, 김영삼, 이명박)

50대가 2명( 노태우, 노무현)

 

40대가 2명 (박정희, 전두환) 이다.

   대통령의 권한 별로 보면 윤보선 대통령은 내각 책임제였고, 총리는 장면이었다. 나머지 분들은 모두가 대통령 중심제였다.

    한 사람의 자연인이 범부(凡夫)로 살았다면 그 가문에 끼친 영향에 따라 파조(派祖)가 되기도 하고 족보의 계승자로 기록될 뿐이지만 대통령을 역임한 경우는 국민과 국가에 영향을 미쳤으니 그 치적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역대 대통령의 치적에 대하여는 본인이 쓴 자서전도 있고, 명필가들이 쓴 평론도 있고, 정견을 달리하는 정객들의 논평도 있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그 많은 자료를 다 읽거나 기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논평의 대략을 토대로 제 18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참고 자료를 도출하고자 한다.

   지난 17대를 거친 대통령들은 정당을 대표한 입후보자가 당선되었다. 이들 모두가 훌륭한 대통령이기 보다 국가 재산을 도적질하다가 옥살이를 한 경우도 있고 국민의 존경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엘리트(elite) 정치 체제가 아니고 민주주의 선거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국민들의 평균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 이유는 출마하는 사람이 국민들 중에서 후보자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주장일 것이다. 이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피선거권만 있으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뜻일 것이다.

   피선거권을 가진 국민이면 누구나 출마는 할 수 있더라도 사람을 가릴 수 있는 올바른 기준이 있다면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사람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엘리트(elite) 정치체제보다 우월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역대 대통령의 치적(治績) 분석

   역대 대통령의 치적을 살펴보기 전에 집고 가야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로 국토가 분단되는 과정에 신탁통치(信託統治)에 관하여 찬탁(贊託)과 반탁(反託)으로 갈라져 좌우익의 분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남북에 독자적 정부가 세워 졌지만 필자는 정치를 논평할 소양이 없는 사람이니 역대 대통령들의 치적을 살펴 제 18대 대통령 선출에 거울이 될 만한 자료를 찾고자한다. 그렇지만 필자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논평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 1∼3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재임기간 1948.07∼1960.04) 초대에서 3대까지 권좌에 있었다. 대통령직에 오른 경로는 두 가지 방법이었다. 초대는 국회의원들의 간선(間選)이고 2,3대는 국민들이 직선(直選)이었다.

   전 대통령 이승만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평가가 다양하다는 것은 치적 재단(裁斷)에 사용한 자[尺]가 여러 종류라는 뜻이다. 첫째가 사상적인 자, 둘째가 주, 객관의 자,(개인적인 이해관계도 포함),셋째가 부화뇌동(附和雷同)의 자, 이 밖에도 여러 종류의 자가 더 있을 듯하다.

   어떤 종류의 자가 가장 정확한 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극히 대립적이다. 그 대략을 열거하면

(1)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

(2) 이승만이 남북 분단의 원흉이다.

(3) 이승만이 청산했어야할 친일파를 기용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다.

(4) 정치기반이 없는 이승만이 친일파 기용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5) 서울을 사수한다는 방송을 틀어 놓고 혼자 도망쳐 많은 국민을 희생시킨 민족 반역자다.

(6) 이승만이 미국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찬, 반 이론이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1960년 부정 선거를 감행하여 대통령으로 4선에 당선 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실각 하와이에 망명하여 병사했다. 법을 지키고 순리로 살았다면 국장으로 예우받았을 사람이 가족장으로 겨우 국립묘지에 안치되었다.

 

   우리 속담에 ‘뒤가 꾸리다고 잘라 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과 같이 이미 기정사실이 된 역사를 잘라낼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의 전진에 거울이 되어야 할 뿐이다. 선대의 잘못이 후대에 반면교사의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이었거나, 종신 대통령의 권좌를 놓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사오입으로 개헌을 하지 않고 법을 따라 순리로 살았다면 반대는 있었겠지만 건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을 대통령이었건만 지나친 욕심 때문에 평생 쌓은 공적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사후세계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영혼이 있다면 조국의 발전상을 보고 내가 아니라도 잘하고 있구나하고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자도 당사자가 죽으면 법에서도 기소를 중지하는데 죽은 사람의 치적으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옳건 그르건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다. 지난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갈 방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는 조국의 분단, 해방의 무질서, 6.25전쟁, 절대 빈곤으로 많은 국민이 기아에 허덕이던 시대였다.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운 만큼 나라의 정치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보면 잘못된 일도 있고 잘 한 일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지나간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이승만이 남긴 거울은 주워 붙일 수 없는 깨진 거울 조각 이상의 의미는 없다.

   제 4대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재임기간 1960.08∼1962.03)

이승만이 하야하고 국민투표로 당선된 윤보선이 내각책임제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1962년 3월22일에 사임하였다. 사임 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한을 대행하였다. 윤보선은 대통령으로써 쿠데타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본인이 물러난 유약한 면이 그가 남긴 거울이다.

   제5∼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재임기간 1963.12∼1979.10)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국회를 강제 해산하고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의 말문을 막고 1962년 3월 22일 대통령 윤보선의 사퇴 이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였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윤보선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제 6· 7에도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나 8· 9대는 유신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의원들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평가도 이승만 못지않게 양극화 되어 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1)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덕분이다.

(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국법을 짓밟고 정권을 강탈한 무법자다.

(3) 1961년에서 1979년 까지 18년간에 경제를 11배로 성장시켰다.

(4)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던 기간에 친일을 한 반역자다.

(5) 야당의 극열한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비롯한 시기적절한 정책으로 국가를 발전시켰다.

(6) 고급 장교로써 남로당과 관련이 있었던 간첩이다.

(7) 민족의식의 철학이 없었던 개인 주의자다.

(8) 대기업 위주로 경재를 성장시켜 빈부의 차를 극심하게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점과 단점이 많은 거울을 남겼으니 취사선택이 필요한 자료이다.

  제 10대 대통령 최규하(崔圭夏)(재임기간 1979.12∼1980.08)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급서하자 같은 해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권한대행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재임 기간도 짧았지만 앞의 두 분과는 달리 치적에 대하여 분분한 이론이 없는 분이다. 그에 대한 일부 자료를 보면 확실히 능력은 있었는데 힘이 없던 분이다. 라는 평이 있다.

   평생을 연탄보일러로 사신 깨끗한 대통령으로 기록된 분이고, 8개 국어를 구사할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광주 민중 항쟁 사태의 수습을 끝내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사임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기자들의 질문에 “과오없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오는 과오대로 반성하면서 미래의 삶에 시행착오를 줄이는 바탕으로 삼고 업적은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는 깨끗하고 유능하였으나 유약한 거울을 남겼다.

   제11∼12대대통령 전두환(全斗煥)(재임기간 1908.09∼1988.02) 최규하 대통영의 사임을 계기로 11대 대통령으로 취임 하였고 12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에서 대의원들의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치적에 대하여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형을 살다가 나왔으니 재론은 사족일 것 같다. 다만 광주의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결정됨에 따라 그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에 많은 비용을 국고에서 지출하였을 것이다.    

   그의 창안으로 국정을 개발한 정책개선은 없고 수천억 원을 긁어모아 탐욕의 흉한 거울을 남겼다.

   제 13대 대통령 노태우(盧泰愚)(재임기간 1988.02∼1993.02)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치루고 시대의 흐름이 유신헌법은 개정이 불가피한 시기였으나 머무적거리다가 국민들 항의에 못이겨 국민의 직접 선거로 당선 되었다.

   전 대통령 노태우도 비자금이 뇌물로 판정되어 형을 살았으며 법원에서 언도한 추징금액이 무려 2,628억9500원이다. 뿐만이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선거자금으로 3,000억 원을 줬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보면 이들은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하려고 대통령을 한 것이 아니고 한 몫 잡으려고, 장성 출신이면서 보통 사람으로 위장하였던 인면수심의 거울을 남겼다.

   제 14대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재임기간 1993.02∼1999.02) 김영삼 전 대통령은 9선 의원이라는 한국정치사에 특출한 인물이고 민주화의 화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그렇지 않고 말은 민주화이나 행동은 독재자로 기록되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선한 3,000억 원의 힘으로 대통령에 등장한 김영삼은 임기 중에 IMF를 불러들여 막대한 국부를 유출시켰고 중산층은 무너지고 서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치르게 하였고 국가 경제를 파탄시킨 거울을 남겼다.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金大中)(재임기간 1998.02∼2003.02) 평생 삶의 목표가 대통령인 듯 그는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출마로 뜻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는 몇 번의 번의를 거듭하였다.  소망을 이룬 것은 전라도 도민의 단결된 열망이 뒤를 받쳐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열망에는 경상도 출신의 대통령이 전라도를 홀대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어쨌든 칠전팔기(七顚八起)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피로 갈라 선 북한을 찾아가 화해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많은 신어(新語)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만든 신어 중에‘햇빛정책’이 있고, 세계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악법도 법으로 인정하였으나 김대중은‘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는 말을 남겼다. 전임 대통령 김영삼이 불러들인 IMF를 벗어난 것이 그의 업적 중의 하나다. 남북 화해의 과정에는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도 한 몫을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사형 선고를 받고도 집념을 성취시킨 거울을 남겼다.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재임기간 2003.02∼2008.02) 서민 대통령으로 알려지고 김대중 전임자의 뒤를 이어 평양을 방문했으나 남북 교류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돈 정치의 표상인 차떼기 정치의 진상을 파헤친 것이 인상에 남는 업적이다, 집권 당시 사건의 중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거울을 남겼다.

   제 17대 현 대통령 이명박(李明博) (재임기간 2008.02∼)

전임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의 집권 기간을 잃어버린 십년으로 평가하고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공약으로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등장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남북문제와 대기업 특혜 정책으로 빈부의 차가 더욱 벌어지니 국론이 분열된 듯하다. 뿐만이 아니라 형님의 형무소 행을 지켜보는 거울을 남겼다.

  이상으로 역대 대통령의 면모와 치적의 대략을 살펴보았다. 필자가 정치 평론가가 아니니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올바른 대통령 선출의 기준을 모색하고자 쓴 글이니 이해가 있으리라 믿으면서 대통령의 자질을 살펴보기로 한다.

7. 인격의 척도(尺度)

   대통령이 될 자격을 역사의 인물에 비춰 본다면 우리 역사에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은 모델들이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사조의 흐름이 바뀌었으니 지금 시대의 거울이 될 수가 없다.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하자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아야 하는데 인품을 알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전해 오는 속담에‘바다 속은 알 수 있어도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고 지인지면부지심(知人知面不知心)<사람의 얼굴은 알아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고도 하였으며 인면수심(人面獸心)<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같다>이라는 말도 있다. 이러니‘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공약은 이행 불능할 경우도 있지만 정치는 항상 변화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공약은 이행하기도 어렵지만 변화된 현상에 맞지않는 공약을 이행하려다가 나라를 망친 경우도 있다. 정치는 그 때의 현실에 적합한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하지, 공약이 중하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약은 무모한 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를 앞질러 내다볼 수 있는 선견지명의 소양(素養)을 갖춘 사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를 우리는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과거가 중요하다. 도적질에 경험이 있는 자는 기회가 주어지면 도적질을 할 것이고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불법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에게 대권을 쥐여 주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라는 생각이다.

8. 대통령의 자질

(1) 역대 대통령의 철학과 사상

   철학과 사상은 그의 처신을 통해서 비쳐지는 것이지만 그렇게 살필 수가 없으니 그의 저서를 살펴보기로 한다. 저서에 그의 사상이나 철학이 담겼다고 하더라도 실천이 없었다면 위선에 지나지 않지만 참고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자료는 글을 쓰기 위하여 제시하였을 뿐 다 읽어보지 못한 자료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교회 핍박>

윤보선 전 대통령

<구국(救國)의 가시밭길>

박정희 전 대통령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국가와 혁명과 나>

<지도자의 길>

최규하 전 대통령

<팔순기념문헌집 '玄石片貌'>

 

전두환 전 대통령

저서가 없음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

김영삼 전 대통령

<40대 기수론>

<지도자의 길>

<인생을 뜻있게 보내려면>

<정치는 길고 정권은 짧다>

<나와 조국의 전신>

<회고록>

김대중 전 대통령

<분노의 메아리>

<내가 걷는 70년대>

<독재와 나의 투쟁>

<김대중 옥중 서신>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경제론>

<민족의 새벽을 바라보며>

<공화국 연합제>

<한국 민주주의의 드라마와소망>

<세계 경제 8강으로 가는 길>

<한국의 통일>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나의 길 나의 사상>

<김대중의 21세기 시민 경제 이야기>

<나의 삶 나의 길>

<대중 참여 경제론>

<내가 사랑한 여성>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경천애인>

<21세기와 한민족>

<김대중 자서전 - 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이명박 지금의 대통령

<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온몸으로 부딪쳐라, 어머니,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6· 3 학생운동사>

   역대 대통령 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저서가 가장 많다.많이 팔린 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 이다.

(2) 역대 대통령의 퇴임 후의 모습

  지난 64년간 우리가 선출하고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역대 대통령의 퇴임 후의 모습을 살펴보면, 국민들의 아우성에 국외로 추방된 얼굴도 있고, 유약한 성품으로 부하를 통제 못하고 중도에서 물러난 사람, 단군 이래 5천년의 가난을 물리친 공적에도 불구하고 장기 집권을 도모하다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 민주화 요구를 피로 보복하고 비자금을 조성하여 형무소에서 옥살이하다 나온 사람, 비자금으로 재벌을 꿈꾼 낯가죽 두꺼운 얼굴, 국가 발전에 공적은 쌓지 못하고 IMF를 불러들여 국부를 유출시키고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한 얼굴, 동족상잔의 피로 갈라선 북녘을 찾아가 화해의 악수를 한 얼굴, 재임 당시 사건의 무게를 감당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현직에서 형무소로 가는 형을 지켜봐야하는 안타까운 얼굴들이지만 그 형에 그 아우는 아닐까? 라고 바라보는 눈도 있을 것이니 실로 어려운 자리다.

   이상으로 제18대 대통령 선출에 참고가 될 거울을 찾아보려고 장황하게 치적을 들춰보았으나 미래의 길을 활작 열어 보이는 온전한 거울은 없다. 깨진 조각들 중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비쳐볼만한 자료를 골라 본다면, 우리 민족을 5천년의 가난에서 구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과 분단 50여년의 벽을 넘어서 화해의 악수를 나눈 김대중의 치적이 거울이 될 만한 자료이다.

   우선 그들이 남긴 거울 중에서 취해야할 것부터 살펴보면 첫째가 우수한 두뇌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 사범을 나와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는 일등의 성적이었으나 조선 사람에게 단독으로 일등을 줄 수 없다는 일인들의 간교(奸巧)로 일본인과 공동 일등으로 졸업했고, 다시 일본 육군 사관학교로 편입하여 일본인과 공동 일등으로 졸업한 우수한 수재였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만큼 담대하고 강인한 의지력의 소유자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은 우수한 두뇌와 강인한 의지력이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거울에서 버려야할 점은 크게 4가지이다. 첫째, 국가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한 것. 둘째,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할 때 친일을 한 것. 셋째, 남로당과 관계가 있었다는 것. 넷째, 민족의식의 철학이 없었다는 것 등이다.

   위의 버려야할 세 가지 행위는 확고한 민족의식의 철학이 없었기 때문에 그 좋은 머리로 오직 자기 개인의 출세와 영달에만 전념한 나머지 시류에 맞춰 쿠데타를 일으키고, 친일도하고, 남로당에도 관계하는 등의 행동을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9.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 참고할 자료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는 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거울에 비친 영상에서 버려야할 4가지 문제는 모두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해결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지금의 사회 여건에 반민족적인 쿠데타를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고, 친일파와, 남로당은 없어졌으니, 제 18대 대통령은 머리가 출중하게 좋고, 강인한 의지력에 민족의식이 확고한 철학을 갖춘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근면한 국민들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는 활짝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치적에 보는 거울이다. 한국은 민간 정부로 체제가 바꿨지만 군사정부가 계승되고 있는 북한을 찾아가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는 것은 당장 통일로 발전되지는 못하였더라도 민족사에 길이 남을 거울인 것이다.

   다시 강조 하지만 인간은 영혼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우수한 두뇌가 없으면 새로운 창조는 불가능하고, 강인한 정신력과 건강한 육체가 없으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고, 민족의식이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제 18대 대통령은 위에서 지적한 소양(素養)들을 갖춘 사람을 선출하면 나라는 구김살 없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실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배점을 정리해 보았다.

1) 대통령으로 선출할 사람의 소양 검증을 위한 자격 배점

(1) 출생 시 타고난 두뇌와 학습으로 개발된 두뇌의 검증 자료

① 초등학교 성적표(1-6 최상위 성적,<IQ,150이상> 전교 일등<박정희 전 대통령의 우수성 참조>) 【30점】

교육과 학습으로 개발된 두뇌

② 중 고등학교 성적표 (<최상위 성적, 전교 일등><(늦게 발육하는 천재가 있는 점을 감안>)【20점】

③ 대학교 성적표 (<최상위 성적, 전 과목 A학점이상><노력과 의지력 감안>) 【10점】

(2) 연구 성과(<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창의력과 탐구력 감안>) 【10점】

(3) 창의적인 두뇌 (<발명 및 특허><새로운 발상과 실천력 감안>) 【10점】

(4) 사회봉사 사업이 실적 (약자 배려의 기본)【5점】

(5) 건강상태(준수한 용모와 건강<카리스마있는 위용>)【5점】

(6) 수신제가(修身齊家)(본인의 덕망과 화목한 가정)【5점】

(7) 기타(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공로가 있는 경우)【5점】

총 【100점】

2) 대통령으로 선출해서는 안 될 사람 【감점】

⑴ 평생 군에 종사한 장성 출신 군인(전두환 노태우의 경우 참조)【30점 감점】

⑵ 평생 정치만 한사람(김영삼의 경우 참조) 【30점 감점】

⑶ 사회봉사 실적이 전무한 사람【10점 감점】

⑷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혼이나, 미혼인 경우)【10점 감점】

⑸ 건강이 나쁘거나 성격이 유약한 사람(윤보선 최규하의 예)【10점 감점】

⑹ 기타 결격(선대나 친인척이 국가에 해를 끼친 사람)【10점 감점】

【총100점 】

여기에 기록한 배점은 역대 대통령의 치적을 참고로 배정한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배점을 유권자에게 적극 홍보하면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상대의 인격을 폄하하거나 비방 또는 흑색선전으로 얼룩지지 않고, 돈으로 대통령을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돈 봉투 사건 없이 유능한 인재를 선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각 정당에서 추천하는 후보들도 이 표를 참고하여 추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2,08,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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