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섭생의 의미 1-5

조회수 7886 추천수 0 2012.10.28 01:16:52

(섭생의 의미)

 

[반소사음수(飯蔬飼飮水)하고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라도 낙역재기중(樂亦在其中)이라]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즐거움 또한 그 안에 있더라.’

문장의 시작은 고풍스럽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한학의 고전을 인용했으되 실체에서도 다름이 없음을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여름날 찬물에 말은 밥에 날 배추나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어도 입에선 달기만 하더라, 추운 날 더운물에 밥 말아 북어포나 양배추를 쌈장에 찍어먹어도 그득하기만 할 뿐 모자람일랑 모르겠더라, 육신은 그저 살기만 하면 그뿐 보다 잘 먹고 잘살기에다 의미를 두지 않기로서니 호탕함과 대범함 즉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단초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입 하나 다스리기에 성공하자 근심과 번뇌의 시작이 어딘지 알 수 있었고, 여타 잡다한 것으로부터의 집착은 의외로 벗어나기가 쉬웠다. ‘시작이 절반’이란 격언은 참으로 옳은 말, 몸과 맘이 하나로 합쳐져 거칠 것 없는 단출한 삶은 여기서 의미의 정점을 찾았던 것이다.

 

난 정확하게 닷새에 한 번씩 변을 본다. 공교롭게도 이곳의 5일 장날과 날짜가 일치해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기억하게 되어있다. 월말, 날짜의 흐름이 불가피 어긋날 땐 기묘하게도 하루를 당기거나 늦춰 수치를 정교하게도 맞춰 간다. 뭐 좋은 거라고 억지로 참거나 몸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건 물론 아니다. 다만 섭취하는 음식물의 양을 의식적으로 줄인 건 사실이다. 다른 이들의 양에 비해 물경 절반 이하일 것이다.

작심하고 오지 산골짜기에 들어왔으니 도회지에서 하던 돈벌이를 위한 그악스런 머리 쓰기와 몸부림은 자연 피하게 됐고, 몸 움직임이 작으니 먹거리를 단출하게 줄여도 어려움 없었다. 통계를 살펴보니 지난 1년 동안 혼자 섭취한 쌀의 양이 정확하게 36킬로그램이었다. 1킬로그램의 쌀로서 정히 열흘을 먹는단 의미로서 농촌 사람의 1/3, 도시인 평균치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양임은 사실이다.

 

난 식사시간이 됐다 해서 의무적으로 음식을 입에 우겨넣진 않는다. 정규적인 1일 3식이란 의미와 이유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욕구가 없으면 물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따름을 자연스러움으로 삼고 있다. 식탐이 사라진 대신 음식 가림은 전혀 없다. 머무는 곳이 오지 골짜기다 보니 맛난 음식 몸에 좋은 음식을 가릴 처지가 아님은 당연하다. 무얼 먹을까 걱정하는 적도 없다. 있는 걸 먹을 뿐이다. 모자라다 싶으면 즐겁게 고기도 구워 먹되 양은 넘치도록 하지 않는다. 상추와 함께 이따금씩 먹어주는 삼겹살을 세어보면 여덟 조각으로 충분하다. 통조림일지언정 생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철이면 값싼 양미리도 한 두름쯤 계단 밑에 걸어둘 줄도 안다.

대자연의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야채가 부족함을 감지하고 있으나 그조차 절실하게 여기진 않는다. 김치는 가능한 떨어뜨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를 쓰긴 하니 최소한의 야채 보충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 양이 준만큼 흡수되는 효율이 매우 높단 건 변 보기에서 분명하게 인지가 된다.

양 즉 밥통이 준 걸 확인하게 되는 재미난 경우도 있다. 모처럼 장보기를 위해 읍내에 내려갔다가 큰맘 먹고 사먹는 한 끼 외식이 자못 부담되는 것이다. 한 끼 외식의 양이면 내겐 평소 하루 분의 식사 양으로서 모자람이 없었고, 결국 남들에겐 평범한 한 끼가 내겐 과식이 되고 만다. 비록 짜장면 한 그릇일지라도 그러하다. 산 속에서 갖춰진 버릇인 만큼 음식물을 남기지 않음은 철칙으로 여기고 있으니 따라 나오는 반찬까지도 말끔하게 비우기 마련이다. 두 번 이상 이용해 얼굴을 아는 식당에선 나만 가면 그토록 좋아한다. 눈치와 미소로만 어림 감을 잡는 게 아니다. 미쁘단 찬사를 직접 귀로 들었음이니, ‘맛나요!’ 란 간단한 칭찬 한마디 덧붙이면 입이 금세 귀에 걸린다. 저도 좋고 나도 좋다.

하지만 이렇듯 순응의 상관관계 속에도 깜찍한 문제가 하나 숨겨져 있었으니, 감사와 감탄을 반찬삼아 단무지 하나까지 남기지 않고 참말로 맛나게 먹어줄 줄 아는 특급 손님이라며 특별히 양도 많게 내놓는 선심을 탓할 순 없는 일, 하매 외식 횟수를 줄임으로서 내 위장사이즈 즉 분수를 넘기지 않으려는 덕분에 도리어 업소가 매상에 차질을 본다는 고도의 한계성 상대성 이론을 쥔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사소한 외식에도 분명한 선제조건이 하나 있다. 뭔가 내놓을 만한 표 나는 보람 있는 일을 했을 경우가 아니면 짜장면 한 그릇일지언정 외식은 결코 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남대천 귀로 반 백 리가 다만 회한으로 점철될 뿐이니 욕구에 따라 먹은 게 살로 갈 리도 없다. 내게 있어서의 보람이란 당장의 현실에선 거의가 글 작업이다.

 

절간의 스님은 아닐지라도 집에선 김치 담은 그릇에 묻어있는 한 점의 양념까지도 물로 깨끗이 헹궈서 마신다.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일단 버릇을 들이면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며 설거지도 그만큼 손쉽고 배출되는 오염 물질도 따라서 극히 줄어든다. 삼겹살 굽느라 모여진 프라이팬의 기름도 만두 튀김용으로 알뜰하게 다 쓴다. 그래도 바닥에 남음이 있을라치면 가끔씩 맨밥을 볶아 말끔하기로 하는 등 기름성분일랑 이제껏 단 한 방울이라도 누옥 밖으로 내보낸 기억은 없다. 부득이할 경우 휴지로 닦아 페치카에서 소각시켜버린다. 보기엔 자질구레 하달지 몰라도 뒤로 남는 향 대자연에의 당당함은 크다. 사찰 스님들의 엄중한 발우공양으로부터 보고 배웠을지언정 허식의 계단을 난 또 한 칸 넘어설 수 있었음에 합장으로 감사한다. 대신 물은 남들에 비해 배 이상 많이 마신다. 차를 끓여 마시던 생으로 마시던 하루 5리터 정도는 기본이다.

 

음식 섭취 양을 절반 정도로 줄였음에도 체중은 오랜 동안 거의 변동이 없고, 효과를 확인할 수 없어 그간 먹던 치료약을 끊은 지 오래되어도 몸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저절로 됐다. 이러저러한 이유인지 건강이 얼마만큼 찾아진 걸 스스로 느낄 수가 있다. 참으로 고맙고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에의 악착같은 집착을 덜기도 했지만 심보를 보다 여유롭게 갖으려 애쓴 덕택이 아닌가 생각한다. (계속)

 

*자연수상록 '한 스푼' (어문학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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