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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철들자마자 너무 쉽게 생의 철문이 ‘철커덩’ 닫히고 마는 생사유전의 원리는 여기서도 통렬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은 인간에게 죽지 않을 만큼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을 건네 줄 따름이란 공전의 언급이 그처럼 허랑할 수가 없었다.

선배 쥔도 응급으로 입원하고 없는 아랫마을을 일부러 찾아 준 서울 손님들에게 현지인으로서 토종 옥수수도 나누고 크게 치하도 하고, 나름대로 소박하나마 정겨운 접대를 하고 돌아오는 귀로에 비치는 짙은 단상을 워낙 의미심장한 시로 남긴 바로 다음날이었다. 하도 진하고 절절한 시구라서 내심 환란의 원인을 내 시가 공연히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도록 공교로운 시점임은 사실이었다.

 

이건 진짜 거짓말 같았다. 강릉에서도 자신없다하여 서울 여의도 백혈병 전문병원 응급실에 입원한지 불과 2주일 만에 이번엔 몹쓸 놈의 수마, 미증유의 대홍수가 남대천 하필 개울 한복판 작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오선배의 집과 농장과 자동차와 기천 평 너비의 밤나무가 울울창창하던 숲까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쓸어가 버린 것이다. 2002년 8월말일 ‘루사’란 예쁘기 그지없는 이국 소녀 이름의 맹렬한 태풍의 짓거리였다. 남은 자리엔 평평한 모래밭과 무수한 자갈들만이 저간의 정황을 마치 거짓말처럼 덮어두고 있었다.

일평생에 겨우 한번 정도 있을까 말까한 치명적인 위기도 이처럼 쌍으로 동시에 들이닥칠 수 있단 사실이란 이제껏 살아오면서 보고들은 바 일절 없는 경우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기 힘들지언정 엄연한 현실이었다.

바로 그랬었다. 서너 달 전 봄철 어느 날 소나무의 엄청난 솔방울 달리기 숙제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유독 미심쩍어하던 ‘심상치 않은 조짐’이란 불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곧 벌어진 사태 바로 이것의 예시였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미증유의 폭우와 범람이 그것일 거란 족집게는 범인인 나로선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자연계의 내막은 그토록 치밀하고도 엄정했다.

 

유머보다 깊은 페이소스성 웃음, 뒤집어질 정도로 정곡을 차고 나가는 일침의 언사를 선배는 좋아했다. 자신의 곤고한 일상생활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 필요 절실한 요소가 웃음이란 걸 양자 간 묵계로 알고 있었음이고, 난 약간의 능력이 있었다. 어쩌면 육신의 보약에 앞선 심상의 예방약 차원이었을 게다. 뇌하수체 호르몬 엔도르핀의 자구적 효과를 유독 철저히 믿는 선배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근거도 희박한 민간처방의 한의학을 지독스레 신용하다 못해 일상에서 스스로 처방한 근거도 희박한 약물을 물대신 상식 음용하던 습성은 이번 발병과의 인연을 조심스럽게 추정하기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허황 잡다한 사고가 실정보다 늘 앞서있었기로 다소 부족했던 현실감은 다행히 도움 되는 동반자 형수를 만나 다시 새 자리를 잡을 무렵이었단 건 안타까움을 넘어 차라리 유감이 되고 말았다. 인복은 몰라도 시간 복은 더럽게도 없더란 탄식이 흘렀다.

예순을 얼마 앞둔 인사들 거의가 그렇듯 질곡 같은 세상의 한복판을 여지없이 살아온 분, 달라진 세상도 의식하고 인정할 줄 알았기에 작지만 변화된 모습을 때가 되면 수용하려했던 자세도 있기는 있었기에 안타까움의 근원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선배는 절대로 이곳에 들어오면 안 돼!”

안정 가료의 중요성을 미처 알지 못했던 선배는 내 마지막 전화 충고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듣지도 않았고, 그것은 회생 불가의 판정에 다름없었다. 흔들림이 덜한 가깝고 안정된 읍내에만 머물러있었어도 방도를 구할 뒷날을 길게까지 참으며 기다릴 순 있었을 것이다. 일부 뜻 있고 영향력 있는 이웃들로부터 최대한의 배려가 모아지고 있었으니까, 현대식 고도의 치료기술도 일단 상식이란 그릇 위에 담겨져야만 하는 것이니까.

백혈병은 완치까지 흔들림 없는 신체 절대안정이 무척 중요하다. 독한 약물이 체내에서 제대로 작동을 하려면 약물이 신체의 절대 주도권을 잡아야 하나, 재난의 뒤끝과 당장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화급한 일들과 당장을 살아가야 할 새 살림살이 장보기까지, 성한 사람이라도 녹녹한 일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길도 길 같지 않게 완전히 망가진 비포장 험로를 함부로 덜컹거리고 다니면서 여분의 기력을 낭비한다면, 약보다 원래 질병이 당연히 더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땀 한 방울도 함부로 흘리지 말아야 할 만큼 안정가료라는 수술 못잖게 중요한 치유과정도 지긋지긋한 물 따라 또 건너가 버리고 말았다.

 

미증유의 대홍수가 지상을 함부로 쓸고 간 후 두 달 가까이 지나서 승용차도 아닌 트럭이나 겨우 비켜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뚫리자마자 일은 시작됐다. 이전의 길은 다 버리고 완전히 새로 만든 비포장 코스였다.

누가 그처럼 방대한 일을 매일같이 내일처럼 돌아봐 줄 수가 없었기에 그중 거리가 가장 가깝고, 시간도 맘먹기에 달린 윗동네 이웃인 내 몫이 되어야했고, 지원은 기껍고도 당연했다. 하지만 상식을 앞세워 난 속으로 단정했다.

‘선배는 다시 회복하지 못해!’

일껏 성심으로 도우면서도 환장할 일이 있다면 바로 이점이었다.

약물 통원치료와 동시에 파손으로 험한 악로를 수도 없이 덜컹거리며 다녀야 하는 전혀 불필요한 왕복 반백 리, 중환자에겐 있어선 안 될, 말 그대로 고난의 길, 사서 구하는 신체 학대는 병든 혈액이 더욱 활성화될 뿐이기에 파국으로 향하는 비포장, 바깥 상황처럼 안으로도 무너진 외길일 따름이었으니 갈데없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었다.

 

평소 사람이 죽고 사는데 의외로 전문지식이 가름하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경우 상식선 안에서 문제는 시발하고 생사가 결정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다가오는 위험을 모두 예방할 순 없을지라도 자청해서 발발하는 경우는 대부분 깊은 지식보다 일상에서의 상식 준수 여부가 말해준다. 여기서 상식은 과욕과 허식을 삼가는 것이야말로 첩경이더라.

큰일일수록 실행은 가급적 단순하게 임해야 함에도 잔머리 속에서 쉬운 일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치고 끝이 건강한 경우를 난 보질 못했다.

 

이미 뿌리 채 휩쓸고 지나간 수마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고 손실일 테지만, 선배여! 남아있는 병마만은 반드시 이겨내 달라, 내가 판단에서 경솔하기 짝이 없는 미운 인사가 되어도 얼마든지 좋고, 던져오는 책망도 기꺼이 즐겨 달게 받을 것이니, 견디지 못할 다중의 고난이란 지상엔 없다함을 반드시 증명해 달라. 제발이지 한번만 내 말을 듣고, 꼭 한번만 그렇게만 해 달라. (계속)

 

*자연수상록 '한 스푼'(어문학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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