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비 그친 사이

조회수 16863 추천수 0 2011.10.13 00:40:07

비 그친 사이

 

물이란 아래쪽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흐르면서 무한에 가까운 살아 있는 일을 알게 모르게 수행하고 증거 또한 여러모로 남기기 마련입니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음용수가 되기도 하는가 하면 다종의 곡식을 키워 내 측면에서 인체를 생육시키기도 합니다. 인체의 75%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척추동물 인간의 태곳적 발생 기원도 따지고 보면 물에서란 학설은 믿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지난겨울 기록적이랄 만큼 워낙 눈이 드문 마른 겨울을 보내다 보니 산천의 모든 식생들이 한동안 갈증으로 몸살을 심하게 앓았었습니다. 결국 개화의 시기를 잃거나 미뤄 두었던 초목의 꽃들이 한꺼번에 의무를 토해내느라 시기를 압축시키지 못했던 양봉업자들은 누구든지 실패의 깊은 시름 속에 녹아들었다 합니다.

봄철 한 두 차례나마 양으로 내려주신 덕택에 농사지을 양으론 겨우 채워지긴 했으나, 봄 이후 한 달도 열흘이나 더 지나서야 겨우 흐를 만큼의 비가 내려주었습니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과 아쉬울 만하면 한차례씩 내려주시는 빗물의 이유와 의미를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기온이 30도를 가볍게 오르내릴 만큼 연일 쨍쨍 내리쬐는 폭염의 햇살 덕분에 난 뒤늦게 시작한 야생사진촬영을 크게 압축해서 단기간에 마칠 수도 있었으니 누구의 아쉬움이 내겐 복으로 다가오는 이율배반적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철이 되었기로 남방에서 올라오는 태풍의 서슬과 곧 장마가 시작될 조짐이 겹치기로 이르렀으니 이즈음의 강우는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이젠 한발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큰비가 오시려느냐. 는 우려로 바뀔 비상한 즈음인 겁니다.

올 여름은 누구도 발생과 진로를 예상할 수 없는 태풍을 제외하면 장마라도 크게 심하지 않고 짧게 지날 것이랍니다. 어쨌든 모자라면 모자랐지 넘칠 리는 없을 것이란 예보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으로선 점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되는 방향 살길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법 흐를 정도라지만 지금까지 내린 비의 양으론 개울물은 평소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동안 메말랐던 산천이 아까운 빗물을 자꾸 안으로 속으로 머금기만 한다는 뜻입니다.

 

농군들 대를 이은 고난의 상징인 천수답의 깊은 한을 피하기 위한 지혜로서 이 지방은 가파른 개울을 개발해 길고 긴 인공의 농수로를 만들어 흐름을 아래 농지로 유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급경사 산간지가 많은 영동지방의 독특함에 창안한 기발함이랄 수 있습니다.

이전엔 대부분이 자연 친화형이라서 수로가 지나는 길목마다 여분의 은덕을 사방으로 베풀어주는 혜택도 깊었습니다. 아울러 이웃 곤충들도 커다란 불편 없이 수로를 건너다니고 이겨낼 줄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기록적인 수난을 겹치기로 당하고 지방의 경제사정도 나아지면서 자연 친화형 완만한 수로는 배타적이고도 완곡한 차단형 콘크리트 인조수로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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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요철도 있고 얹혀 자라는 풀들이 걸림돌 역할을 해 식생들이 건너다녀도 좋은 가급적 생명친화적인 수로가 졸지에 직사각형 절벽의 연이은 차단형 함정 즉 해자로 변했음을 말함입니다. 인간들에겐 튼튼하기에 발전이라 칭할지 몰라도 넉넉한 선덕을 베풀던 생명친화형 산간 농수로가 일거에 각박한 악덕의 함정, 해자로 탈바꿈했음을 말함입니다.

막강한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이 같은 구조물에 들인 막대한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재료와 방법이 바뀌었을지언정 농사엔 한 치라도 이득이 늘어날 린 없을 뿐, 모든 자연물엔 해악 일변도일 뿐이니 인간 사고의 무지몽매함을 나는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덕성이 사라졌을까? 지혜가 전승되지 못했을까? 무위사고의 가장 기초적인 발상도 상식에서 작동되지 못함을 꼬집음입니다. 언필칭 고등인간이란 호칭은 의심받아서 마땅한 즈음입니다.

 

작금의 (U)자 구조 콘크리트 인공수로가 이후로는 공사도 쉽고 싸고, 자체 안정성도 올라가며, 수로 관리도 한결 손쉬울 뿐 주변 식생에 피해도 훨씬 덜 가는 (V)자형 수로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현재구조의 수로는 어느 정도 흐르는 물의 양이 확보되어야 끝까지 물을 흘려보낼 수 있지만, (V)자형 수로는 어지간하면 목적지까지 물을 운반할 수가 있기에 실익은 발군으로 상승합니다.

90도 직각 두 개로서 180도 역리의 참담한 난관을 단지 누워있는 하나의 90도로 줄여 줌으로서 대폭 늘어나는 순리와 생명의 덕성을 취하지 않을 이유란 없을 겁니다. 단순함의 미덕인즉 이 경우의 다각화는 허방다리이자 악덕의 상징일 뿐입니다.

 

본격적인 강우라기엔 가랑비를 약간 면한 비일지라도 새벽녘이 되어서야 적당히 그치는 듯 했습니다. 가랑비에 이어지는 이슬비일지언정 아직은 우중이라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간 내린 비에 냇물은 어떠하며 다양한 식생들은 어떤 상황에 면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음입니다. 본격적인 개울에 면하기 전에 농수로 두 개를 어쩔 수 없이 먼저 확인해야합니다.

아직은 자연 친화형을 유지하고 있는 근동에선 거의 유일한 수로, 오솔길 중간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이 서방의 수로는 보호를 위함인지 물길이 미리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극심한 물의 흐름을 견디지 못해 매해 입는 파손 때문에 크게 손을 봐야 하는 수고를 사전에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랫수로도 상류 입수구로부터 이미 단단히 차단되어있었습니다. 따라서 물길 아래쪽은 모두 비워져 있었으며, 수로의 좌측 개울 쪽과 우측 산간 쪽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고스란히 사각형의 함정 해자가 역시 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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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함정 속에 얼른 눈에 띄는 식생이 하나 있었으니 주변에 흔한 시커먼 색상에 볼품이야 별로 없는 어린 ‘물두꺼비’ 한 마리가 매끄러운 콘크리트 직벽을 기어오르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녀석이야 안타까워하거나 말거나 난 내 일이 우선이려니 쩔쩔매는 모습을 먼저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곧 이유도 망설임도 없이 꺼내주고 그의 대가로 사진 한 장을 더 남겼습니다. 비교적 양순한 녀석들인지라 잘 달래면 녀석들의 사진 한 장 찍는 일에 어려움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오늘처럼 갑자기 내려간 기온이라면 어떤 녀석들은 내 손바닥의 온기에 슬며시 기대기 하느라 다만 눈감고 조는 척 할 뿐 내려주어도 내리지 않으려 응석을 부리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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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고 도는 직벽 콘크리트 농수로를 따라 걸으며 모두 여섯 마리의 어린 물두꺼비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기분에 따라 어떤 녀석은 물 쪽으로 내려주고 느낌에 따라 어떤 녀석은 산 쪽으로 올려주었습니다.

 

무감각한 인간들의 자기본위 무의식적 행위가 막상 대자연의 일각에겐 어떤 해악을 끼치게 되는지 난 차제에 고발하지 않을 수가 없음입니다. 그렇게 상하가 차단된 콘크리트 함정의 불편을 겪는 식생들이 두꺼비 뿐일 리는 없습니다. 온갖 식생들이 이의 각박한 정황에 크게 영향을 입을 건 불문가지였습니다. 덕분에 친근하고도 맑은 곤충인 초록색 대벌레 한 마리도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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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있건 말라있건 현대식 농수로가 함정은 분명한 함정이었으니 의외의 소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늘 궁금해 하던 개울 속 식생의 수수께끼 하나가 단번에 풀려 주었으니 바로 초대형 ‘민물가재’를 발견한 일이었습니다. 

 

이 지역처럼 자연의 맑음이 아직은 제법 확보되어 있는 곳에서 6년 가까운 동안을 살아오면서도 나는 이제껏 단 한 마리의 가재도 개울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발견된 새끼도 아닌 한 마리의 거대한 어른 민물가재는 단순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모저모로 돌려가며 달래가며 손가락을 때때로 꼬집혀 가며 사진을 속속들이 찍어두었습니다. 다른 곳에선 비교적 흔한 가재가 막상 개울물의 본판인 이곳 남대천 상류에서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이고 소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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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물 맑고 인적이 없는 상류 쪽에다 신중하게 방면해 줄 필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집중적인 호우 소식이 다 지나간 것은 아니니 하루 이틀간만 내 보호 아래 서재에서 나와 함께 놀다가 보다 안전한 갈 곳으로 보내 줄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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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보다 상류에서 쓸려 내려온 친구였을 터이니 식생이 차단되는 곳을 지나서 작은 폭포 위, 침목다리 아래, 오솔길의 시초인 물웅덩이가 다른 곳 아닌 생각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지금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이전엔 정갈함의 대명사 물고기 쉬리 가족이 길게 터잡이 하던 곳, 일단 그렇게 하는 편이 보다 마음 편할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흔하되 내겐 단순하지 않은 손님, 진객입니다.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야생 사진 촬영에 들어간 기간이 한 달을 넘기면서 찍혀지는 고정된 대상물이 점점 줄어들 줄로 알았으나, 그러한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외의 손님들이 자꾸 늘어나는 실정을 반가움 절반 놀라움 절반으로 절감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렇다 해서 그간 살아온 기간이 엉뚱하달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치열하고 심도 깊은 시간을 보냈으되, 내면이 워낙 진솔한 대자연은 이처럼 깊이를 차마 알 수 없을 따름이란 생각은 분명히 옳을 것입니다.

 

비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이른 아침 반 시각 만에 만난 손님들은 두꺼비 여섯 마리, 대벌레, 가재 그리고 그제부터 은근히 개화를 기다리던 대형 야생화 한 송이였으며, 내 사진기는 일단의 고발성 사진기록과 함께 아직 남아있는 보물들을 어김없이 무지막지하게 오늘도 담아 날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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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 돌아가는 날. *

 

논에서 쓸려간 올챙이들과 표면의 소금쟁이를 제외하면 다슬기 한 톨, 잡고기 한 마리 남아있지 못할 만큼 심한 몸살을 앓았던 개울에 분명한 생명력이 되돌려졌으니, 우연히 회수한 대형 민물가재가 나와 함께 보낸 지 이틀 만에 대자연, 제 바닥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이른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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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작은 폭포가 있는 개울 소는 어제까지의 허망한 곳일 수 없음입니다. 희망과 소망과 생명력이 소록소록 자라는 터전이 된 것입니다.

이전부터 줄곧 그랬듯 아까워서 난 거기에 침 한차례라도 뱉지 못할 것입니다.

환영인 듯 환영하듯 청아한 하늘이 가재 돌아가는 맑은 물빛에 비춰졌습니다. 흰 구름 한 조각도 개울물 속에 동동 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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