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돌풍이후

조회수 13335 추천수 0 2012.09.12 00:22:52

(돌풍 이후)

 

차마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 가운데에도 피할 수 없는 궁금증은 잘 가는 야산, 결국 마을 뒷동산으로 스쿠터 핸들을 향하게 했습니다. 마을을 지나치는 도중에도 어제의 우박과 돌풍의 흔적은 역시나 여지가 없었습니다. 도처에 질펀하던 수국은 일찌감치 목욕이나 한 듯 한 잎의 꽃술도 남겨두지 않았고, 울담이건 텃밭이건 무성하던 씀바귀, 끈끈이 대나물, 민들레 등도 간 곳이 없었습니다. 파도 고추도 그렇거니와 특히 이 동네 올 감자 농사는 초비상이 될 것 같습니다.

 

곧 도착한 야산도 어련했습니다. 물리적 내성이 다소 강한 꿀풀만 드문드문 남아있었고, 하늘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이제부터 절정기를 맞이할 개망초들은 아무 곳이나 부러져 꽃이라곤 일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비단 개망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길고 깊은 은덕에 기대기로 한 시절을 살아내야 하는 수많은 곤충들의 안위 일생을 생각할 때 내 가슴 한곳도 그처럼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위가 두텁게 가려진 나무 밑에 개망초만 약간 살아남아서 드문드문한 남은 흰빛이 밝기보다는 차라리 처량해 보였습니다. 대기를 온통 장악하듯 멀리서도 눈에 확 띄던 키 큰 붓꽃들도 일천할 뿐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준비성이 비교적 단단한 벌들이야 제법 분주했어도 눈치가 그래 그랬는지 도처에 그토록 흔하던 곤충들도 별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무자비한 우박세례를 어떻게 견디었을 진 알 수 없지만, 동물적 본능으로 보다 많은 수가 살아남았을 것으로 나는 믿고 싶습니다.

다 쓰러진 건 아니라는 증거인 듯 가끔씩 눈에 띄는 나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듯 아무 곳에서나 눈에 띄는 누구에게나 막무가내로 남은 희망을 걸어줘야 했습니다.

수풀 한편에서 찢기는 듯 새소리만 그칠 새 없이 들려왔습니다.

계절이 너무 잔혹스럽고 허무하지 않느냐는 듯 허탈함을 넘어서 비명으로 내겐 들렸습니다.

도처가 무너진들 아쉬움을 참고 대충 산비탈을 둘러보고 돌아서려는데 줄곧 그치지 않던 새 울음소리의 정체가 이내 가까이서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발아래 지나치던 풀숲에서 내가 가까이 서 있음에도 울기를 그칠 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허리 숙여 풀숲을 들여다보니 아하! 아직 어려서 날지 못하는 어치 새 새끼 한 마리가 거기 바닥에 떨어져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wind0.jpg

 

 이제 겨우 솜털사이로 날개깃을 겨우 자라게 할 뿐 아직 꽁지도 나지 않은 어린 녀석의 몸엔 무수한 잣나무 바늘 잎새가 아닌 게 아니라 도처에 배겨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우박 돌풍 사태와 연관이 직접 닿을 수밖에 없는 일목요연한 상황이었습니다.

몸에 무수하게 배긴 잣나무 뾰족한 바늘 잎새가 아프지 않을 린 없었을 테니, 아기 새가 그토록 피울음을 울어도 되는, 울 수밖에 없는 필연한 입장이었습니다. 어쩌면 나 들으라고, 듣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그토록 심하게 울어 제쳤던 모양입니다.

보호책이라곤 일천한 맨바닥에서 얼마나 견디어 왔는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에 원기가 제법 들어있는 걸 보면 아주 위험한 상황은 아닌 듯 했습니다.

당겨보니 의외로 몸에 깊숙이 단단히 배긴 잣나무 뾰족한 바늘 잎새들 다수를 제거하고, 양 날개를 번갈아 들어 올려가며 찬찬히 살펴봐도 뼈대도 괜찮은 듯 다행히 핏자국도 없었고, 털이 빠진 흔적도 없으리니 부상당한 곳을 얼른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아직 한참 어린것이 혹독한 바람과 부러지는 나뭇가지에 쓸려 둥지로부터 어쩔 수 없이 이탈된 것이란 결론은 확실했습니다. 그러는 도중에도 찢어질 듯 아기 새 녀석의 울음을 넘어선 비명은 그칠 새가 없었습니다. 눈에 익은 어미가 아닌 여타 인기척이라면 회피본능에 따라 숨고 달아나기 바쁜 족속일진데 지금처럼 목이 터져라 열린 외침이라면 누구든 어떻게 좀 해달라는 애소인 줄을 모를 리 없겠거니와, 어미 새인들 달리 구호할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한 번 더 세심히 살펴 솜털 사이에 여태 깊이 숨어있던 바늘잎 하나를 마저 제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늘잎들이 깊이 박혔던 자리가 어서 다물어져서 외부감염으로부터 방비될 수 있도록 힘을 뺀 검지로 곳곳을 살살 문질러 줬습니다. 워낙 보드랍고 따듯한 어린 녀석의 여린 감촉이 손가락 끝을 통해 내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이되어 왔습니다. 그제야 아기 어치 새는 울음을 완전히 그쳤습니다.

 

 wind1.jpg

 

잠시 당황됐습니다. 너무 어린 녀석을 보호막도 일천한 야생자연의 바탕에 그냥 놓고 가자니 맘도 맘이 아니었고, 내 집으로 데려가자니 그도 그렇고, 어딘가 위탁으로 구명할 방도도 당장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오목하게 감싼 내 손아귀 온기가 그래도 의지할 만했는지 녀석의 몸뚱이가 더는 떨리지 않았습니다. 초기 둔탁 흐릿하던 녀석의 눈동자에도 안정감과 함께 밝은 생기가 빠르게 돌아옴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이제까지 참기 어려웠던 바늘잎 박힌 통증이 온전히 가셨다는 증빙입니다.

wind2.jpg

 

그때 어딜 갔다 왔는지 주변 잣나무 가지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어미 어치 새 한 쌍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이 어린 녀석의 뒤 처리를 간단히 정리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그렇습니다.

가까운 잣나무가지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내 모습과 제 새끼 가운데에서 가슴 깨나 태우는 듯 했습니다. 부드럽달 순 없는 째지는 듯 날선 고양이 소리로 애타는 마음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같이 어미의 피가 마를 눈치를 내 모르는 바 아니었습니다.

옳거니, 빼곡한 바늘잎이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기 새가 폭풍에 휘말려 부러지는 잣나무와 함께 떨어진 이후 긴 시간 동안 원기도 잃지 않고 씩씩하게 버틸 수 있었던 덴 역시 어미가 계속 먹이를 물어다 줬기 때문일 공산이 컸습니다.

 

wind3.jpg

 

더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남향의 산록 잘 마른 곳을 골라 주변에서 마른 검불과 낙엽들을 한데 주워 모았습니다. 밑에는 길고 적당한 돌도 하나 구해 받쳐줘 천적들의 눈도 가리고 아기 어치 새가 함부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를 가능한 방비했습니다. 어미는 내 하는 꼬락서니를 줄곧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한참 전부터 아기 새는 울음소리를 그쳐 있었습니다. 몸도 떨지 않았습니다. 역시 내 손안의 따스한 온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기 새를 임시둥지 그 폭신한 한복판에 내려놨습니다.

wind4.jpg

 

어미 새의 존재를 나뭇가지 사이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후 공연한 헛기침 한번 크게 내어준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른 척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내 할 바는 여기까지가 전부이니 나머진 알아서 처리하거란 무언의 전달이었겠죠.

 

돌아서 나오던 중 발아래 떨어진 잣송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기 새처럼 아직 성숙되지 못한 큰 솔방울만한 잣송이가 역시 어제의 돌풍과 우박을 받아 떨어진 듯 했습니다. 생각도 없었습니다. 분명한 내 행위였지만 나로서도 딱히 이유를 댈 수가 없습니다. 송진 냄새가 짙은 어린잣송이를 임시둥지로 다시 돌아가 아기 새의 코앞에 놔줬습니다. 끈적끈적한 진액이 손에 쉽게 묻어났습니다.

 

길게 앞장선 내 그림자를 내가 밟으며 황혼이 모처럼 붉은 석양도 그저 무덤덤할 뿐, 각별하게 느끼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줄곧 아기 새의 찢기는 듯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석양은 돌아오는 사이 잠깐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굵은 소낙비가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또락 또드락” 나만의 명상실 테라스에 앉아 바깥에 낙수 지는 소리를 듣는 지금에 다시 생각해도 난 알 수가 없습니다. 어치 어린 새끼를 비 오시는 바탕 거기다 그냥 그렇게 놔두고 온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를, 또 설익어 떨어진 잣송이, 아기 새에겐 원수와도 같을 잣송이 하나를 왜 하필 거기 임시둥지에 다시 넣어주고 왔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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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저 포토에세이 '산내들 편지'4권에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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