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연과 길들임

조회수 11819 추천수 0 2012.09.21 01:57:42

(인연과 길들임)

 

여름 한철엔 완전 무성한 녹음 덕택에 멀리 아랫마을 초입의 집 한 채 조차도 누옥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골짜기에 길게 파묻혀 살다 보면 바깥세상이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공연히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랴 여간해서 마을 쪽으로 옮기는 산책은 삼가지만 큰맘 먹고 내려가다 보면 한적한 산마을이란 표현이 무색해짐을 발견한다. 왕복 2차선 포장도로가 1차선으로 줄어 있을 만큼 외지 피서 차량들로 좁혀져 있기 때문이다. 교통 혼잡이란 희귀한 도시형 단어가 여기서도 적용되는 부산한 한철인 것이다.

개울 따라 곳곳의 빈터엔 온갖 색깔 텐트들이 바닷가 피서지를 방불케 하고 풍성하고 넉넉한 남대천 중상류 물빛도 조금은 지쳐 보인다. 근년 들어 몇 차례 중앙의 텔레비전에 이곳 강원도 산골마을의 천연덕스러움이 방영 소개된 뒤로의 일이다.

남대천 지류 3개중 가장 길고 뚜렷한 본류이면서도 참 오랜 동안 고이 감춰져왔던 산골마을이 이제야 피할 수 없이 대중의 발길을 허용한 이유란, 갈천과 오색천 등 다른 두 개의 지류에 비해 소통이 막혀있었던 막다른 도로 탓이 가장 커다란 이유였을 것이다.

 

맑고 순수한 자연 바탕을 요원해 함께 은혜하자고 몰려오는 인사들을 꺼려서가 아니라, 난 내려오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다시 걸음을 되돌리고 만다. 원래 하던 짓대로 한적한 산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자 함이다. 실은 아랫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뭘 좀 사고 싶었지만 그도 그냥 말고 만다.

무심코 발길을 돌리면서도 난 스스로에게 깜짝 놀란다. 의도적인 경원이랄 순 없어도 지은 죄도 없이 한 인간이 무고한 다른 인간들을 피하는 분명한 기피행위였기 때문이다. 마치 야생동물이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지도 모를 두려운 상대를 멀리서 보고 피신하는 행위와 뭣이 다르단 말인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너그럽게 봐줄 성질의 것이 아닐 수 있단 말이다. 옹골차게 닫혀있는 내 심상의 고통스런 증거, 이를 숨기고자 하는 본능일지도 모를 일이란 자탄이 회오리 되어 일렁이는 잠시 동안의 흔들림이 있다.

인간을 그리워함이 말로는 거짓이 아닐진대, 행동은 그리움을 회피하는 일, 그러나 난 자신을 믿어야한다. 일시 흔들림이라도 깊고 원천적인 진리와 새 가치관 추구를 위한 것일 뿐, 인간을 향한 마르지 않는 애절함이 결코 거짓이 아니란 심상의 다짐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기피행위는 자기부정의 황망한 의식파괴에 다름이 없을 것이고, 난 존재 속 부 존재, 살아있으나 절반은 죽어있는 심각한 착란 의식적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매사가 목적 있는 의식의 흐름일 필요는 없을지라도 존재와 부 존재의 가름은 삶과 죽음의 관계와 다를 바 없어지기 마련이다.

세상과의 인연이 연결되어있으면 그것이 존재로서 삶이고 연결이 단절되면 그것이 바로 부 존재로서 죽음인 것이다. 인연은 육신의 인연도 있겠지만 의식상의 인연도 있고 이것이 내가 그리움을 함부로 또 온전히 놔버릴 수 없는 이유다. 기왕에 의식 세계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나와 다른 생명체의 의식 세계에까지 동질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매, 그의 생명가치 동등성 추구가 바로 현상에서의 내 일인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길이 든다는 건 의미가 매우 단순한 감성적 쏠림이다. 아울러 서로에게 길들이기는 이성과 두뇌의 소관이 아니라 철저히 감성과 가슴 언저리 책무다. 선악 가름에도 구애받지 않고 조리와 부조리란 이성적 판단도 무위에 그치고 만다. 거의 맹목적인 의식의 일방 흐름인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어느 편이 주체가 되어 길을 들이는 건지, 들이우는 건지 불분명한 경우가 허다하다. 전기한 바와 같이 누가 누굴 길들이는 건지 애매할 땐 속함의 부담감 또한 내 쪽이 클 수도 있음이며, 내 감성적 풍부함이 때론 와병의 원인이 된다는 엄연함도 경험으로 취할 만큼 알고 있다. 길들이기에 실패한 때문이라기보다 인연과 집착의 굴레라는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내걸기 때문일 것이다.

 

야성이 강한 녀석들일수록 물론 기를 쓰고 날 외면한다. 그조차 지금은 하나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 빈말이 아니다. 야성이 강해서건 멍청해서건 구태여 이유를 가르지도 않는다.

 

본의 아니게 가을철 토종 얼룩 다람쥐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큼 길이 들어있으나, 다른 짐승들은 가급적 길을 들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미 길들어있는 이웃한 다람쥐에게조차 올핸 더 이상 호의적인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으려 굳게 맘먹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곳에 아주 터잡이를 하지 않으리라고 맘먹은 이상 떠날 때 얻어질 인연 단절의 아픔을 면하기 위해 지나친 정들이기를 피함이고, 다른 하나는 녀석들과 나와의 자존심 문제가 한 가지 걸려있음이다.

서로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의식적인 호의는 베풀다 보니 제 놈들의 코가 기고만장하게 높아져 있음을 이즘 여실히 느끼고 있다. 불과 2미터 정도도 안 되는, 손을 내밀면 쉽게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내가 있어도 두발로 곧추선 토종얼룩다람쥐의 궁둥이가 내 쪽을 향하고 있단 말이다.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단 말인즉 내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삭제행위가 아니곤 해석을 달리 가할 수가 없다.

‘저기 골짜기 누옥에 이웃한 아저씨 길게 두고 보니 영 맹물이더라!’는 단 하나의 뜻이 아니고 뭣이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존재일지언정 예전 인간계에선 제법 높은 지성을 인정받았던 언필칭 현대판 선비인데, 아무리 저들이 우선하는 산골이라도 코앞에서 궁둥이가 감히 내 쪽을 향한단 처사는 적지 아니 약 오름을 담보하는 참말로 고약한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곳 인간세상에서나 통하는 깍듯한 선비대접, 이웃어른에 대한 반듯한 인사를 바램도 아니다. 그저 있거니 없거니 처럼 무시당하지나 않으면 좋겠거니와, 아니라 해서 곱다시 무시당할 나 역시도 아님이다. 나 또한 녀석에겐 눈길조차 주지 아니하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잔뜩 모로 꼰 채 내 갈 길을 느직하게 따로 가고 마는 것이다. 이따금씩 어험! 하는 헛기침도 뱉으면서, 어차피 신경전이니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종종 있는 이 같은 신경전에서 내가 이겨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결국 뒤 또는 옆을 내 쪽에서 먼저 흘낏 돌아보게 되고 녀석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쾌재의 증거로는 몸을 약간 더 움직여 아까처럼 내게 궁둥이를 슬쩍 돌려댐으로써 확실한 승리의 결판을 선언하곤 함이다. 이 같은 겹치기 낭패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여간해선 상상할 수 없는 일, 괘씸죄로 엉덩이 근처에 가해지는 내 손가락 퉁기기 징벌조차 감당치 못할 여리고 가여운 작은 녀석들이 말이다.

결국 자꾸 반복되는 이 같이 쑥스럽고 민망하고 일방적인 상황을 개선키 위해 내 쪽에서 먼저 화평의 손을 내밀었던 것이고, 토종얼룩다람쥐는 못이기는 척 알밤이 가득 실린 내 손바닥에 올라와 줌으로써 눈치전의 승패를 떠난 우정과 화평이 화창하고 믿을 만한 가을날에 시작됐던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큰맘 먹고 손바닥 위에 올라와선 절대로 궁둥일 내 쪽으로 향하는 법이 없단 점이다. 가끔씩 나와 깜장콩알 같은 눈을 똑바로 맞춰줄 만큼 익숙해졌다한들 제 놈들도 거기가 어딘 줄 모르지 않는단 말이다.

그저 선한 줄로만 알았던 토종 얼룩다람쥐 녀석들에게도 성깔 못된 일면이 숨어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나중에야 그게 성깔이 못돼서가 아닌 수줍음이 깊어서란 걸 알고는 오해도 눈 녹듯 스르르 풀리고 녀석들에게 쏠리는 애정도 더욱 각별해졌었다. 물론 궁둥이로 나를 왕따 놓는 원인이 진짜 못된 성깔 때문이라 하더라도 녀석들에게 향하는 내 일방적인 애정을 차마 허물진 않았을 것이다. 머리로다 만사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가슴에서 우러나기로 무작정 사랑할 순 있다지 않은가.

이토록 눈치싸움이란 불가피한 동기가 아니었다면 어떤 동물이건 인위적인 길들이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거실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득불 떼쓰는 온갖 새들도 끝내 마다 한 채 방충망을 절대로 열어주지 않고 있음이니까, 동거 또한 하나의 사랑방식이긴 하겠지만, 인연도 영속성이 보장될 수 없을 바에야 내가 취하고 싶은 방식은 아닌 것이다.

 

옳거니,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거쳐 결국 크게 양보해서 길들여진 건 다람쥐가 아니라 도리어 내 자신이었다. 오해에서 시작한 길들임일지언정 날 길들여 준 다람쥐를 사랑하고, 신심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감연히 너에게 우애와 구애의 손길을 내민 나 자신도 사랑한다. 사랑의 본질이 이와 같을진대 자신에 대한 사랑 고백이 하나도 쑥스럽거나 부끄럽지 않다.

예고도 없이 폭풍우처럼 몰려드는 대죄 대속함의 고해성사(告解聖事)를 거부하지 않는 만큼, 용서가 아닌 다음에야 아주 가끔씩은 나 자신을 사랑해도 괜찮은 것, 생각해보면 별단의 가치이기에 용서가 앞서지 않아도 사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그렇지 않다면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고 말 테니까.

 

얼룩다람쥐 사랑함이야 변함이 없을 테지만 그렇게 개시된 좋은 인연이라도 이젠 정리를 해야 한다. 우정이 됐든 애정이 됐든 인연 속에서의 의무 또한 부가될 것이고 그게 부담되어서라도 올핸 얼룩다람쥐 저 혼자 맘껏 수줍어하라고 그냥 놔둘 작정이다. 다신 손을 내밀지 않을 작정이란 말인즉 정듦이 반가운 게 아니라 정 뗌이 괴로움임을 진즉에 알았기 때문이다. 필요할 경우 토종다람쥐 궁한기 구휼은 당연히 시행하겠지만 그를 빌미로 만들어지는 인연의 굴레는 동기가 선할지라도 부담과 의무를 동반한단 깨달음이 불현듯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래서 서로 한 걸음쯤 살짝 떨어져있음이 더 잘 보일 뿐만 아니라 피차에게 두루 이롭단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는 격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깨닫는다. 의무와 정성은 베풀지언정 그것으로 인한 보람을 기대해선 옳지 않단 뜻, 많은 경우 기대는 인연으로 연결되고 서툰 인연이 집착과 고통으로 귀결됨으로써 애초의 선심조차 다치게 되는 허망한 경우를 경계하란 의미 즉 정정당당함의 은유적 서술임을 말함이다.

피치 못할 의무는 당당히 받아들이되 피할 수 있는 기대기는 피함이 삶을 덜 힘들게 사는 한 가지 슬기일 수 있다. 불가에서 인연의 쓰라림을 줄곧 일깨우는 뜻이 여기에 있음이리라. 좋은 인연이란 분명히 일생에 가치가 있는 일일지언정 이 또한 최선의 덕목은 아니란 것, 인성이 냉정하기에 인연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원활한 자유의지를 위해 내 욕구를 자제함이란 뜻, 무욕의 삶이란 인연을 함부로 만들지 않는 곳에서 출발한다는 엄연함을 깨달을 때 삶이 갈수록 오묘해진단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기왕에 만들어진 인연, 기왕에 든 정이 아니던가, 내 들고난 자리에 표가 나지 않도록 언젠가 있을 이별에 대한 준비도 혼자서 이행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내 편에서 욕을 좀 먹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중의 더 큰 아픔을 생각해 ‘맹물 같은 이웃집 아저씨 언제부턴가 맘이 변했더라!’ 는 이 골짜기 뜬소문도 변명치 않고 감내할 것이다. 개구리 녀석들 일부는 멍청하기에 거기에 동조할지 몰라도, 가슴이 순수하고 더 멍청한 들꿩 녀석들만은 결단코 그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속 모르는 다람쥐들이야 무조건 날 무정탈 것이고, 덕분에 아픔은 나로서 족할 것이다. 더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 녀석들 붙들어서 함께 데리고 살면 좋을 것 아니냐는 철없는 소릴 쉽게 할 테지만, 내 행위적 근본으론 어림도 없는 일.

부산한 듯 요란한 듯해도 여름은 자꾸 뒷모습을 보이고, 나야 흔들리거나 말거나 느릿하게 구르는 시간은 전설 속 가을을 향해 묵묵히 제 길을 간다.

 

-졸저 자연수상록 '한스푼'에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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