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꽃, 벼꽃이 피었습니다.
이 서방 네 아래 위 무논에도 벼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지구상 수많은 인종을 먹여 살리는 알곡의 중요도에 비해 워낙 음전한 모습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기조차 어려운 유백색의 꽃을 기어코 피워냈습니다. 광채도 없이 음전하거니와 며칠 버티진 못합니다. 그저 다소곳이 제 몫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아예 눈에 띄지 않는다 해도 전혀 서운해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지 벼꽃을 수정시켜주는 친구들은 주간형 곤충들이 아니라 산들바람과 야간의 나방이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참엔 웬 꿀벌이 다 찾아왔습니다.
수수만년 우리네 충실한 사계절 먹거리 주곡이 되어 대를 이어 이 땅에서 살게 하는 벼꽃이야말로 ‘생명의 꽃’ 그 자체이고말고요. 제아무리 지천으로 화사하고 크기도 큰 꽃들이 더 왕성하게 널려있어도 그는 일시적인 눈요깃거리일 뿐임을 우린 종종 잊기도 합니다. 잠시 마음을 위로 위무해 주는 관상용 꽃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영육을 함께 아울러 건사토록해주는 너무나도 귀한 꽃이기에 이처럼 새삼스럽지도 않게 그러나 반듯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거기 푸른 가을하늘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깃동잠자리 한 쌍은 덤이랍니다.-
성숙의 계절 가을이 깊이 무르익으면 잘 숙성된 존재의 고귀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마저 숙이는 대표종입니다. 꽃도 워낙 음전한데다 열매까지 머리를 깊게 숙임이라니 생각할수록 귀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은 단순히 예의상에 그침이 아니고말고요.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물결처럼 황금빛 일렁임으로 하나하나 이들의 수고를 위로 줄 때 비로소 들려오는 천상의 잔잔한 타이름, 호소를 난 들을 줄 압니다.
“어서 나를 넉넉히 베어다 잡숫고 화엄세상 이승에서 길이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