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어요!

 

 

길게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처가 공고하리 안정된 곳이 정해진다면 근방에다 심어주려고 몇 년 동안 조금씩 모여 놓은 심의 씨앗들을 더는 쥐고 있을 수가 없었음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씨앗의 발아율은 떨어질 것이고 임자 학은 아직 기약 없는 철새여야 했음이고, 학의 벗 부운도 머물 곳을 함께 허락 받지 못했음입니다. 때문에 맘 같지 않게 무고한 씨앗일랑 길게 붙들어두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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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태풍이 곧장 한반도로 올라올 것이란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장맛비와 함께 내습할 것이란 이중의 고난 예고를 특히 강조하기에 라디오 방송은 새벽부터 바빴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청평댐 수문을 열어 저수공간을 미리 비워두느라 새벽 순행 시에 보인 북한강은 뻘 바닥까지 훤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래 그런지 시원함도 그리 개운치 않는 길,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으리니 딱 고정된 장소, 이미 내정된 바탕으로 제법 후텁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스쿠터는 일로 내달렸습니다.

때는 하필 반공일, 토요일인지라 외지차량들로 남이섬 유원지로 가는 길은 오전도 일찍부터 제법 붐볐습니다.

길이란 어차피 무념 무색하게 활짝 열려있는 것으로 그뿐, 길을 따라 들어오는 저들은 그간 수고로움의 대가려니 나름대로 여유시간을 즐기면 좋을 것이었고, 나가는 나는 나대로 뜻 있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면 같은 길을 동상이몽으로 달리기로서니 아무렴 다채로워서 그만이었습니다. 어느 지역이 폭우에 상처를 입을지 미리 염려해 어려운 휴식시간조차 겸손과 예의란 이름으로 방안에 숨어 지내라는 주문도 하릴없는 짓일 것입니다.

다른 땐 이동과정도 일의 한 부분인지라 스쿠터를 거의 기다시피 끌다시피 지나다니던 산록도로, 강변로도 지금은 좌우로 곁눈질 하나 돌리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을 수행하기 위해 거의 처음인 듯 일로 내쳐 달렸습니다.

 

해묵은 부엽토 천지, 두텁고 잦은 강우로 습한 산 바탕은 포장도로와는 역시 달랐습니다. 한결 시원한 깊은 숲 어둔 그늘은 온갖 자연의 식생들이 주야로 애쓰는 땀 냄새 향취들로 가득 충전되어있었고, 지난 계절엔 바닥이 훤히 드러나 다니기에도 손쉽던 곳들이 이젠 우거질 대로 깊어져 발걸음을 자꾸 막아서더이다. 거미줄도 한몫을 더했고요.

그렇게 올해 결실된 말끔한 두 쌍 네 알갱이와 묵어진 것 몇을 모두 들고 지난 오월 어느 날 나를 따라와 준 산삼이 자생하던 곳, 그간의 경험과 요령을 최대한 되살려 가급적 안정된 몇몇 곳에다 고르게 산개 시켜 수십과를 심어주는 동안은 온전히 대자연에 혼연일치로 동화되어진 호흡이기에 지극히 안정된 박자임을 자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속설엔 “될성부른 녀석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으나, 기실은 그 이전에 안착하는 곳 단 한 뼘치 차이로 장구한 세월을 살아남느냐 못하느냐는 시초부터 냉정하게 가름 지워집니다. 임자가 자리조건이 유난히 엄중하고 까다로운 산삼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오로지 영물 심이 무사장수를 기할 수 있는 복되고 안정된 터전, 외래의 그릇된 음택 지향 기복형 풍수지리사상이 아니라 그간의 숙고와 경험으로 겨우 눈치나마 챈 우리 토양에 맞는 전래의 풍수지리 요령을 총동원해 곳 일컬어 명당을 찾아내느라 내 모든 의식은 지극히 집중적이고도 단순 명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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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나 자신은 이의 은덕과 복락에 기대기할 순 없을 것이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지 내 양식과 양심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 뒤에 어느 누군가 보다 복된 후대를 다시 만나서 제 역할을 넉넉히 수행해줄 것을 바라고 믿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같은 심보아래 이제까지 쌓여진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동원해 지금 신중하고 엄정하게 찾아 고르는 것은 갈데없는 활로, 후대의 안일을 소원하는 생명력의 올곧은 방향성, 역사라는 시계바늘의 바른 지향성임은 분명했음이니, 이로서 누구는 또 하나 가슴속에 실로 영원이란 이름의 보배, 내밀한 전설 하나를 여분으로 남겼습니다.

 

아차! 내가 미처 무심했음일까? 착각이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수행한 혼자만의 비밀스런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개울을 되 건너 산록 바깥 스쿠터가 기다리고 있는 한길가로 나오자 그제야 한 가지 과정에 온통 몰입되어 있느라 미처 의식치 않았음에, 주변생물들이 진작부터 한꺼번에 와르르 가장 크게 소리들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헉! 소리에 스스로 놀랄 정도로 뭇 소리란 느리게 천천히 귀를 열고 글리산도로 들어옴이 아니라, 한 순간에 폭발하듯 귀청을 왕창 때리며 액셀로 쳐들어왔음입니다.

쓰르라미, 참매미, 말매미 등속에 섞여 울 줄 안다는 메뚜기 종에다 온갖 풀벌레 등 울음곤충들의 외침은 가히 산천을 떠메고 갈듯 천지간을 온통 뒤흔들어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힘찬 공동의 서슬에 파랗게 질린 싱싱한 여름이 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길 위에서 누구처럼 왈칵 달칵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옳고 정당한 일, 더 묵히면 도리어 죄가 될 일을 무사히 잘 끝마쳤다는 여유로움에 절로 토해지는 깊은 낼 숨이 느껴지는 동안만이라도 가만 놔두지 않고 귀가 멍해지도록 쳐들어온 내겐 돌연한 외침들, 애써 호흡과 정신을 가다듬으며 가만히 귀기울여듣자니 누구에게 고하고자 함인지 알 듯도 한 내용들, 아하! 감추어 은밀히 행하고자 했음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오늘 숨 쉬고 존재하는 이곳 산천의 모든 실체들은 내 행위를 속속들이 지켜보매 시종일관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방대한 대자연의 만인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할 만큼 천지로 가득한 온갖 음색의 연주자들, 축복인 듯 지금을 맘껏 구가하는 그들 발성의 뜻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왔어요, 올 것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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