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동행
엊저녁 계단을 올라오다가 문득 완전히 성숙해 크기가 물경 2.5센티미터에 달하는 ‘등검정쌍살벌'이 눈에 띄었습니다. 엄연한 말벌의 한 종류로 야외에선 맹렬한 성품을 자랑하는 곤충계의 맹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학인 태생적으로 벌을 무서워하지 않거니와 천리에 순종적인 이들의 성품을 굳게 믿음과 함께 일단의 접속 요령 또한 모르지 않습니다. 하매 모르기에 살짝 쏘인 내 탓인 경우는 한 두 차례 있어도 거기 있는 줄 알고 쏘인 적은 아직껏 한 차례도 없습니다.
하필 내 발이 놓일 자리에 떨어져 벌벌거리고 있었으니 밟혀 무참해지는 경우는 피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들의 생사거취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견지해 오고는 있으나, 이번 같으면 이것도 인연이라고 약간의 구휼과 더 약간의 자비지심의 행사도 마다치 않습니다.
아직은 산 생명이기에 일단 손아귀에 포옥 감싸 안고 그래도 바깥보다야 따스한 내 서재 안으로 일단 초치를 했습니다.
아무 말이 없은들 저도 알고 나도 압니다. 작년 열혈로 보낸 활기찬 계절에 뒤이어 한 겨울 혹한 속을 생체로 자알 버텨낸 용장의 마지막 순간이 멀지 않았음을 말입니다. 그런 뒤 이승에서의 인연을 안심하고 후사로서 맡길 수 있는 내 눈 아래 하필 돌아와 있었다고 믿으면 그뿐입니다.
이들은 제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동족들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져 홀로 맞이합니다. 이웃이나 후세에게 일점인들 폐해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남김없이 바스러져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불개미 먹거리로 보시(普施)가 되어 깨끗이 바라밀(婆羅蜜) 세상으로 돌아감이 보다 대종입니다.
일시나마 돌아온 생기와 함께 한참을 놀아준 뒤 앉은뱅이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다른 일에 온통 몰두하느라 깜박했습니다.
새벽에 문득 눈에 띄기를 방안의 온기 때문인지 그때까지 힘겹게 벌벌 기면서도 살아서 움직이곤 있었습니다. 내 커피 한잔 타는 김에 기왕의 티스푼에다 따숩고 진한 설탕물 약간을 만들어 놓아줬습니다. 한참을 녀석은 그렇게 스푼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무 말이 없은들 저도 알고 나도 압니다. 참 세상, 이승에서의 마지막 조촐한 만찬임을 말입니다.
몇 시간 뒤 동창으로 빗겨드는 이른 아침 햇살을 외면하고 힘겹게 찾아 들어간 그늘 속에서 조용히 잠자듯 죽어 있었습니다.
바깥 대기는 희나리 하나 없이 맑았고, 아무렴 우주 시각은 단 일점인들 멈춘 적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