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허수누이

조회수 16422 추천수 0 2011.12.05 04:46:38

(허수누이)

 

읍내에 장을 보러갈 때도, 공과금 내러갈 때도 분신인 듯 누구는 꼭 카메라를 메고 갑니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의례히 가급적 멀리 빙 돌아들기 마련입니다. 멀리라야 거기서 거기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시간을 잠시라도 허비하지 않으려는 익숙해진 습관을 따른 일은 아주 좋은 의외의 결실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늦은 봄날 방금 씨앗을 심은 콩밭을 지키는 아리따운 임자를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수누이1.jpg 

 

어느 고운님의 아이디어인진 모르겠지만 참으로 대단한 발상에 창조적 의지가 발군으로 엿보이거니와 예술적 내공도 단박에 읽혀집니다. 게다가 내부 골격도 예사 허드레 것들을 주워 모은 게 아니라 신중하게 설계 제작된 데다 입성 또한 밭 가운데 허수아비의 상식처럼 낡데 낡은 몹쓸 것이 아닌, 내 보긴 제대로 된 새것이었습니다. 한갓 새나 쫒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세워놓은 게 아니라 바라는 용도를 넘어 다분히 치밀하게 계획되고 성심을 다한 의도적인 발상 곧 창작 예술품이 아닐 수 없음입니다.

 

모자를 너무 깊숙이 눌러쓴 탓이겠지요, “음! 좀 기발하군!” 이란 느낌 하나뿐 막상 사진을 찍을 당시엔 저간의 사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리 현대식 최신기술이 총 집약된 디지털 사진기라도 하나의 일반 공산품에 불과한 즉 다분히 기술적인 메커니즘과 그의 한심한 기능성에 종속되지 않고 사고에서 감연히 탈피한 입장이라지만, 피사체 중에도 어느 일부는 렌즈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인간의 눈으론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실상도 세상에 더러 있기는 있다는 걸 우린 압니다. 이야말로 우리네 인간의 자의식에서 기인된 주관성의 비좁은 한계를 뛰어넘어야 비로소 사물과 생명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들 수 있는 객관성 범 우주의 필요적 요소일지도 모르겠다는 발상이 의문으로 있기는 있습니다만, 이에는 자신도 확신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바가 다가 아니’란 상투적인 문구만 되새길 따름입니다.

 

어쨌든 ‘비둘기 맘 콩밭에 가 있다’란 속언처럼 허수아비란 우선 근동에 산비둘기들을 대상으로 한 방어적 전시시위인 줄 누구라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상으로 겁주기는커녕 이런 또렷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도대체 누굴 어떻게 멀게 쫒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눈치가 이르자 그저 피실 피실 미소만 자꾸 떠오를 따름이었습니다.

하긴 콩 좋아하는 멀리 또는 가까이에 있는 짓궂은 비둘기 식구들 다수를 제게로 몽땅 끌어들인 덕분에 바깥에 남의 콩밭을 희생적으로 대신 지켜준다면 그 또한 가상한 일이긴 하겠습니다만, 그렇죠? 하하하!

 

 

며칠 뒤 맘먹고 다시 대곡리 콩밭을 찾았을 땐 사방에서 비명처럼 외치듯 긴 봄 가뭄에도 불구하고 쥔 네가 상당량 애를 쓰신 덕분에 콩 싹도 제법 크기를 키웠습디다. 말짱 공쳤을지도 모를 주변 산비둘기들 입장이야 딱하거나 말거나 파종초기 가장 위험한 시기는 좋이 지난 셈이죠.

 

허수누이2.jpg

허수아씨는 계속 아름답고 늠름했으니 습관처럼 또 초상사진을 찍긴 찍었습니다만, 누옥에 돌아와 모니터 화면에 둥두렷이 떠오르는 이번 장면을 지켜보면서 난 비로소 무릎을 치며 “옳거니!” 속으로 크게 쾌재를 불렀습니다. 어느 핸가 겨울 한 시즌을 꼬박 한데 들판에서 보낸 딱한 고물 마네킹 허수누이가 그새 바짝 기운을 차리고 이처럼 떳떳하게 되살아나 말끔한 새 의상과 함께 제 역할을 훌륭하게 전향적으로 되찾은 아무렴 바로 그이였던 겁니다.

가슴이 벅차도록 맑고 밝은 환희가 하늘빛 푸른색으로 차고 넘치더이다. 내 사는 이곳 강마을은 물과 시간만이 아니라 기적까지 인연으로 이어져 흐르는 꼭 그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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