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그 예쁜 놈 때문에
오늘 오후는 물경 한 시간을 맨땅과 씨름 씨름하며 생고생을 했다지 뭔가, 흙보다 돌이 많은 강원도 산비탈 임도를 그럭저럭 잘 골라가던 트럭 바퀴가 ‘덜컥’ 그만 개골창에 빠졌기 때문이었지, 그래도 차마 성질을 부리진 않았다네, 성질은커녕 여러 차례 몸부림에 가까운 탈출시도조차 무색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확실한 한눈팔기 곁눈질의 이유가 있었다네, 때마침 동절기 대비 차 적재함에 미리 실어뒀던 삽이라도 없었다면 그나마 난감했을 걸, 심장이 터지려는 걸 어찌어찌 달래가며 꼬박 한 시간씩이나 숨이 턱에 닿도록 돌 천지 땅바닥에 혼자 통사정하는 동안에도 이웃한 차량 한대 지나지 않는 이곳은 하필 그런 궁벽한 곳이라네.
그놈, 이 계절에 말도 안 되는 놈, 임도 변에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목만 삐죽이 길 뿐 키는 유난히도 작은 녀석 때문이었을 거야.
옷도 나도 곤죽이 됐기로 간신히 활로 만들어 털털거리며 돌아오던 길도 일부러 지나쳐, 오래 전 끊어버린 소주 두 병을 새로 사 싣고 오던 이유는 이래서 정당한 당위성을 갖고야 말았다네.
그래! 그놈, 나쁜 놈, 내 심장엔 ‘팜므파탈’
때 이른 겨울날, 저녁 붉디붉은 해넘이를 등 뒤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가에 입가에 끊일 줄 모르고 흐르던 빙긋한 웃음의 여유를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생고생이 이유일 순 없을 거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슬 찬 이 계절에 말도 안 되는 녀석.
지금은 내 영혼이 지극히 맑아지는 시간.
우주의 내밀함이 제 비밀스런 천기하나를 조심스럽게 엿보여주는 정밀한 시간.
‘가이아’이론이 머리 들먹이지 않곤 배길 수 없는 한밤중, 진짜 내 시간.
눈에서 잠을 또 앗아가는 이유는 술 때문도 오후가 그저 힘들었기 때문만도 아닐 거야.
그래! 이 쓸쓸한 계절에 말도 안 되는 놈
맞아! 바깥에서 혼자 찬이슬 다 맞고 있을 놈
저런! 나보다 더 지쳐 보이던 녀석
망할 녀석, 그놈의 코스모스 때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