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독(毒)을 먹다

조회수 11934 추천수 0 2013.05.30 00:08:52

(독‘毒’을 먹다)

 

가화(양귀비).jpg

(양귀비)

 

어젠 아침 기온이 20여 도를 넘어갈 만큼 때 이른 무더위가 덮여 왔었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이런 급작스런 무더위 뒤엔 비가 한바탕 쏟아지기 마련이라 은근한 기다림이 있었다.

잠깐 고사리 성장 정도를 점검키 위해 가까운 참숲에 들었다가 제법 숨을 거북하게 하는 더운 기에 굴복 서둘러 돌아오고 말았다.

제법 웃자라 있는 고사리는 그런 중에도 한줌쯤 얻어왔다. 대신 털북숭이 고비는 댓 포기만 얻어왔다. 아직 어린 고비들이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자라기 시작했더라.

산지를 잠시만 걸어도 워낙 야생의 바탕이라 쉬이 숨이 차고 땀도 수월찮게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저녁때 뉴스를 들으니 근동 강릉 지역 기온이 올 처음 30도를 넘겼단다.

 

남녘으로부터 부상해 올라오는 전선이 올라올수록 약해지는 모양이다. 밤늦게 조금씩 내리시는 비는 역시 미약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금의 비는 양을 불문하고 긴박한 생명수에 다름이 없다.

아침이 돼도 땅거죽만 겨우 적셨을 뿐 흐르는 일은 없었다. 지붕 슬래브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없는 것을 보면 그의 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부러 겨우내 묵어있던 물을 모두 비우고 3개의 낙수 그릇을 말끔하게 정비해 놓은 수고가 무색해지고 말겠다. 하늘엔 어둠이 걷혀가며 한 곳부터 빠르게 밝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일이 24절기 중 6번째 절기로서 곡우라니 작아도 때맞춰 와주신 비의 은혜를 길이 기억할 것이다.

 

매년 봄과 가을이면 독식 행사를 한 두 차례씩 갖는다. 봄철엔 주먹 고사리 서너 줄기를 삶아낸 붉으죽죽한 물에 곧바로 라면을 삶아 먹는 것이고 가을엔 버섯 종류가 그것이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는 원리에 추종, 약한 독을 스스로 주입함으로서 신체가 가지고 있는 제독 기능을 각성시켜 쇠퇴를 막을 요량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정결함을 강조하는 현대인의 식 습관은 신체 내성을 되레 약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지나친 화식과 함께 자연이 고향인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게 되는 그런 퇴화 상태에서 갑자기 들어오는 독성 물질에 신체는 기어코 중병을 얻고야 만다는 건 내 지론이다. 병도 병 같지 않은 우리 아이들 아토피성 피부염은 그의 첫 경종인 셈이다.

인공계의 독성은 자체로 그저 독극물이지만, 자연계의 독성은 절반의 약성을 동시에 함유 한다 랄 때, 친화적이고 공존적인 자연으로부터 심신이 멀어질수록 온갖 치료약과 필연적으로 가까워진단 발언은 경고에 준하지 않을 수 없다. 실존하는 어떠한 치료약이라도 또 하나의 독성, 불가피한 독성 물질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도 없다.

 

이곳에 들어온 첫해 가을, 자연 공부를 위한 산행 중에 얻어 온 싸리버섯 한줌의 독성을 제거한다고 했지만, 완전히 제거되지가 않았던지 약간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었음을 새삼 상기한다. 알다시피 고비를 제외하면 천연의 고사리엔 약간씩 자연의 독성이 들어있다. 게다가 지의류인 이끼와 함께 가장 원시적인 양치식물인 고사리는 수십 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온 원천의 독성이기에 인체 조성과도 연관이 깊으리란 추정에서 비롯됨이다.

 

아차! 부작용, 깜박 잊고 이틀 동안 연거푸 복용을 했더니 양이 너무 많았었는지 올핸 가벼운 중독으로 제법 부담스러웠다. 강력한 알칼리 성분이 고사리 독성의 주성분인 모양이다. 위산을 지나치게 중화시킨 나머지 이틀을 배가 늘 뻐근할 정도로 소화가 되지 않았다. 심장에 불시로 가다 오는 통증은 은근한 걱정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같은 시간을 꼬박 잠들지 못했기에 현기증이 좀처럼 물러가지 않았다.

 

아하! 깊은 잠을 좀 자 둬야겠구나! 오후 소주 두 병을 강제로 마시고 서너 시간 푸욱 잠들었다가 이제 깨어났다. 자청한 독식은 몸의 내성을 키우려는 적응력 강화의 일환이었는데, 올핸 더 이상은 삼감이 옳겠다. 아직도 중독이 다 풀리지 않았음을 알겠더니. 오늘 하루는 더 지나 봐야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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