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말벌과 공존

조회수 28320 추천수 0 2011.10.05 01:50:39

말벌과 공존

 

7월도 상순, 저는 제 생활 나는 내 공부, 서로의 배려인 듯 묵인인 듯 열흘이 잠자코 지나갔습니다. 세상에선 가장 무섭다고 접근은커녕 구경조차도 꺼리는 벌 중의 벌, 바로 ‘말벌’을 말함입니다. 학이 누옥의 현관 출입구 옆 슬래브 바로 아래 기대어 하필 집터를 잡았습니다.

말벌0.jpg 

 

양봉 꿀벌집 정도만 되어도 난리를 벌일 참인데 말벌이라니, 대도시 같으면 한집이 문제가 아니라 한 동네가 온통 소개 대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커다란 사건이고 말았을 테고, 불자동차 깨나 동원되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자연이 우선이고 그들이 본연의 임자, 원래 여기가 저들의 고향임을 알기에 그냥 놔두고 공존 각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무섭다는 대추말벌, 쌍살벌조차도 손쉬운 먹이일 뿐 미처 쪽을 펴지 못하는 벌 중의 벌, 왕 중의 왕, 왕벌이라지만, 공존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내겐 그저 옷을 잘 차려입은 얼룩이 또 다른 대형 이웃 한편일 따름입니다.

 

이제까지 산중에서 여러 해를 살아오면서 누 차례 개별적으로 녀석들과 만난 일은 있었고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처럼 내 집 한 울타리 안에서 기거를 하리란 생각은 한 번도 먹지 못했었습니다. 이래서 학이의 융화 친화적 무위사상은 또 한 차례 실증적 증명이라는 냉정한 현실에 임했습니다.

말벌1.jpg 

저 녀석 다섯 마리의 일시 공격이면 사람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단박에 빠진다는 사실 정도는 압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강원도 어느 산마을에서 들일을 하던 노인네가 말벌의 습격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이의 현실 여건이라면 단지 세 마리면 족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등의 우려가 가해지지 않습니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나흘 전 왕벌, 말벌 녀석의 지도자급 거대한 왕초로부터 한차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세밀하게 점검 받은 바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를 판단하는 대단히 중요한 순간임을 다행히 즉각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면일 뿐 낮이 미처 익지 않으면 상대를 판단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이 넘겨야 하는 심사와 견제의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여기서 한편이라도 잘못 길들이기를 하는 날엔 어느 쪽인가는 불가피 퇴진 또는소멸을 해야 할 뿐, 공생은 도저히 불가능하게 되는 매우 긴박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순순하게 모르는 듯, 져 주는 듯 약간의 긴장 속에서 무사히 잘 넘어갔습니다.

신심도 있었고 자신도 있었으나 속으론 적지 아니 긴장을 하긴 했었습니다. 내 얼굴의 정면 코끝 5 센티미터 앞에서 정지 비행으로 빤히 눈을 맞추며 서로를 인식하고자 할 땐 잠시나마 속으로 “너무하지 않니?” 힐난 속에 짐짓 당황되기도 했습니다. 구식 프로펠러 폭격기가 전력을 다해 상승할 때 내지르는 폭음과도 같은 날개 소리의 똑떨어지는 우람함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얼굴에 밀려오는 프로펠러의 바람결도 제법이었습니다.

이 같은 신중하고도 치밀한 점검의 결과가 저들 사이엔 삽시간에 퍼져 나갑니다. 그 뒤론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여 오지 않습니다. 두고 탐색해 보니 괜찮은 아저씨, 안심해도 좋은 차마 맹물이더란 뜻입니다.

아직은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이지만 곧 농구공 정도로까지 자랄 것이고, 사진에서 보이듯 지금도 한창 확장공사 중에 있습니다. 짙은 색상으로 젖은 부분이 이제 막 쌓아올린 벽체입니다. 고운 진흙과 타액 즉 밀랍을 섞으면 아주 가벼운데다 접착성과 방한기능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재료가 만들어 집니다. 요 말벌집을 시중에선 ‘노봉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말벌2.jpg

대부분의 말벌 집들은 안개나 비에 젖지 않을만한 가급적 안전한 곳을 골라 지어집니다. 건축 재료란 토해낸 밀랍이 주종이기에 습기에 젖으면 박테리아 등 유충들의 생육엔 해롭기만 할 뿐입니다. 하매 바람도 잘 통하지 않기 마련인지라 바깥에 더위가 가볍지 않은 지금 성체 일부는 열심히 날갯짓을 해 집이 과열되어 알들이 행여 반숙이나 되지 않도록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경험으로 새겨진 누적된 생존의 지식들이 유전자 속에 단단히 각인되어있는 모양이죠,

 

구형 우주선을 꼭 닮은 녀석들의 둥근 집 노봉방 바로 아래 하필 내 빨랫줄이 있습니다. 햇살에 일광소독이 필요할 시 거침없이 이불도 펄럭펄럭 널어 말리다가 펑펑 두들겨가며 뒤집기도 자주합니다. 도시뿐만 아니라 자연이 본향인 이곳 산골마을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나는 대자연의 순리 공존과 통하는 방식을 눈치 정도는 채고 있습니다. 일부러 라도 위쪽으로 세심하고 느릿한 눈길을 한 번씩 던집니다. 그와 함께 바깥을 오가는 동안 현관문도 드르륵 여닫기를 알리고 일없어도 헛기침을 한 번씩은 던져 줍니다. 게다가 내가 빨랫줄에 붙어서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길을 잘못 든 어린 말벌 녀석이 내 머리건 얼굴이건 툭 부딪힐 때도 혹간 있습니다. 그럼 서로가 ‘아! 미안!’ 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원천적인 저들의 속성 속에는 단지 공생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탐색과 견제를 앞세울 뿐, 저희들의 안전을 위한답시고 무조건적 공격성을 앞서서 발동하진 않는다는 평화 우선적이란 사실이 크게 기특하고 애정과 신용이 더해질 따름입니다.

먼저 공격을 당하고 나서 이를 처리하기 위한 방어적 총력을 펼칠지언정, 예방이란 위험한 발상 아래 선공을 펼치는 적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들과의 공영은 방법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와의 현실공존이 정히 그렇습니다.

이즈음 삶는 듯 찌는 듯 한여름 더위에 바람조차 없을 경우 어미들이 밖에서 날개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대며 알들이 자라고 있는 우주선 벌집안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덩치의 여러 마리가 날갯짓을 한꺼번에 할라치면 가히 폭격기 편대비행을 연상케 하는 우렁찬 폭음이 진동을 합니다. 고등 하등, 식물 동물을 막론하고 모름지기 어미들의 보호본성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된 천부의 자질인가 봅니다.

 

문제는 내가 아닙니다. 막상 뜨락 복판에서 누옥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참말로 기가 막힌 정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현관 왼편엔 이제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한 같은 종에선 천하무적의 맹장 말벌, 오른 편엔 초창기인 수년 전부터 줄곧 터잡이 하며 이미 나완 익숙한 용장 대추말벌, 양쪽의 거리는 빤하게 불과 7미터, 내 누옥에 불청 기대기일지언정 이들이 어떻게 한집 상생을 할 수 있을지가 유일한 걱정거리 그것일 따름입니다. 난 이들을 중재할 방법도 모릅니다.

 

워낙 덩치가 큰 존재인 나는 녀석들의 먹이가 될 순 없어도 저들끼린 서로 먹이가 될 수 있기에 입장이 하나같을 순 없음입니다. 물론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기세는 덩치도 두 배나 큰 말벌 쪽으로 일방 기울어져 있습니다.

잔정이란 말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나완 워낙 익숙해져 있는 대추말벌이기에 이즈음엔 거기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안심 이상의 공존 각생을 해 오고 있습니다. 매년 한 차례도 빠짐없이 내 누옥에 기대길 해왔듯이 올해 새로 지은 집 바로 곁엔 작년에 살던 낡고 빈집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이곳에서 손을 퍼뜨린 수량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그간의 경험으로 내 자신에 대한 평판도 짐짓 유전되고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대추말벌들로부터 위해와 위협을 전혀 의식치 않아도 되는 정황엔 이처럼 우호적인 소문이 전통처럼 통해져 내려오는 요긴한 것임을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말벌3.jpg

 

말벌 즉 이곳에선 초면인 왕벌도 나와 한차례 신중한 길들이기를 하긴 했습니다만, 막상 저들간의 사정은 나로선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연륜이 아직은 안심할 정도로 깊진 않다는 뜻입니다.

자연계에서의 장소란 일시적 사용권, 점유권은 있을 수 있어도 특권적 소유권이란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산물이기에 말벌들이 내 누옥에 기대어 생존을 영위한다 해도 난 뭐랄 수 없음이며, 그들이 이의 정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양해하고 있는지의 여부까지 세세히 알 순 없습니다.

다만 학이와 저들 서로 간에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먹이도 아니거니와, 같은 먹거리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경쟁적 입장도 아닐진대 비경쟁 평화공존이야말로 작금의 정황이랄 수 있을 겁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의식상의 위험 요소일 뿐 사방에 즐비한 것이 위험 요소라면 어차피 생활 자체가 무리일 밖엔 없습니다. 따라서 눈에 띄는 위험으로부터 내 안전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주인인 저들을 무작정 구축 또는 몰살할 순 없는 일입니다. 최소한 대자연 그 속 깊은 세상에 얹혀사는 내 알량한 양식으론 그렇습니다.

 

서로가 강적일지언정 멀리 있어서 한집안이란 의식이 없을 경우와 학이의 누옥이란 매개로 한집 살림을 하는 한 식구라는 개념의 차이와 분위기를 걱정스런 가운데에서 지켜볼 수밖에 지금으로선 도리가 없습니다.

개별적으론 이처럼 공생의 길들이기에 나로서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동네 양 장로님의 순박한 토종벌 2식구가 정착에 실패한 나머지 철수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격이 맹렬한 말벌 두 종류의 안정엔 자못 긴장이 가해지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부디 상생의 두 식구라 해도 좋고 나를 포함한 공존의 세 식구라면 더 더욱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아온 유전적 생명체이기에 자연계 안에서 일개 미진한 곤충이란 느낌을 뛰어넘는 공존의 생명 의식을 나는 믿거니와, 진솔함의 이치를 하나 더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이해는 깊을지언정 자칫 목숨 걸고 하는 공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벌어지는 사고, 자의로서가 아닌 타의에 의한 불의의 사고는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들끼리 발생할 수도 있는 오해로 인한 골짜기의 위기상황에 무고히 휩쓸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방어를 위할지언정 적을 공격하는 부위도 하나같이 가장 중요한 머리와 얼굴로 집중하기에 위험성은 쉽게 치명적이 됩니다. 그래서 미리 작별의 인사를 던져두겠거니와, 늠름한 가운데 운명의 행사하심에 그저 순명으로 임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극히도 사랑했거니와 후세들은 부디 평안한 공존의 화엄세상을 반드시 이룩하십시오. 하하하!

 말벌4.jpg

 

* 두어 달 후, 아직 무사합니다. 계속 안일할 듯합니다. 말벌 집은 늠름하고 나와 함께 줄곧 여유롭습니다, 대추말벌 집 두개는 벌써 비워져 있습니다. 1년의 활동을 잘 마치고 모두 떠나간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길에 나가 보면 대추말벌의 힘없이 헤매는 지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 가슴을 조금쯤 아리게 합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도저히 상생이 불가능한 상극의 두 종류 말벌이 무사히 한해를 한 지붕 밑에서 동고동락한 내막을 알고 보니 내 누옥이 바로 ‘소도’ 곧 ‘참누리’였습니다.

 

 

* 실토하겠습니다. 예들과 얼마나 친한지 내밀한 한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말벌5.jpg

 

말벌의 일속인 ‘등검정쌍살벌’입니다. 이른 봄 며칠 높은 기온에 깜박 속아서 너무 일찍 나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에 땅에 떨어져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던 신장이 1인치나 되는 거대한 성체 녀석을 딱해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더니 어깨로 무릎으로 컴퓨터로 얼마나 생기 있게 나대든지 결국 내 손가락 위에 자리 잡고서야 안심하며 시방 열심히 몸단장하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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