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이유 있는 앙탈

조회수 21776 추천수 0 2011.10.08 00:08:52

이유 있는 앙탈

 

“에구!” 하마터면 발로 밟을 뻔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늘 주위 특히 발밑을 살피는 조심스러운 버릇이 몸에 단단히 배어있는 덕택에 녀석은 살았습니다. 학이는 수림 또는 풀밭에 들어갈 때도 한번 밟은 곳을 다시 찾아 밟는 습관을 악착같이 들였거든요. 소중한 수림의 독단적 생존가치를 흩트리지 않고자 들고나는 내 흔적을 가능한 줄이는데 아주 유용한 또 지당한 배려임을 진즉 깨달았기 때문이죠.

 좀사마귀 4.JPG

‘좀사마귀’ 수컷이 현관 아래 똑 떨어지는 나무 발판 한복판에 하필 올라서 있었습니다. “저리 좀 가거라!” 하고 입으로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 종의 사마귀 중에 가장 작은 종인 좀사마귀는 인기척을 느끼면 허겁지겁 달아나기 바쁜 소심한 족속인데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녀석의 표정을 보십시오,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모습이 아주 반듯할 때 초상사진 한 장 만들어 남겨달라고 지금 애처로운 표정까지 동원해 온몸으로 떼쓰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늦게 배운 뭐가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다니는 야생의 길목이 굳어질 만큼 깊이 몰두할 정도로 자연계의 심상을 애정과 정성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금의 내 뜻 깊은 사진 작업이 산골짜기 도처에 소문나지 않을 리가 없었음입니다.

들어주기 어렵지 않은 귀여운 강짜,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 사진기를 가지고 다시 나와도 역시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흙투성이 지저분한 나무 바닥 배경이 영 맘에 안 든다나, 움직일 생각이란 도통 없습니다. 이전에 찍어둔 ‘좀사마귀’의 말끔한 사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램이 워낙 절실하다면 생기 있고 애교 있는 소원하나 들어주지 못할 나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살그머니 손등 위에 올려놓았더니 앙탈은커녕 글쎄 이토록 의젓하고 늠름하게 원단으로서의 사마귀 폼을 바로 이것이라는 듯, 기다렸다는 듯, 단박에 잡아주지 뭡니까, 장구하게 남겨질 기록의 의미와 멋까지 함께 아는 영리한 녀석이 틀림없습니다.

좀사마귀 6.JPG

 

기왕의 인연이라며 한참을 내 손위에서 놀려주어도 도통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풀잎에 바짝 기대줘도 되레 슬슬 뒷걸음질만 칠 뿐 도무지 넘어가려 하질 않습니다. 의식을 모두 빼앗기는 만큼 산책도 그러려니와 녀석을 이처럼 손에 매달고는 다른 어떤 일인들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부득불 싫다는 녀석을 살살 달래 듯 반 강제로 궁둥이를 밀어 저기 푸르고 너른 녹원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습니다. 만남을 일시 감사히 여기긴 하겠지만 결국엔 사는 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둥두렷한 하늘, 높기도 한 하늘이 그 얼마나, 얼마나 푸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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