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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이 어려울 것 같았던 아랫마을 오선배가 기어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오래 전부터 따로 사는 친아들, 골수검사 결과 유전자가 맞지 않아 이식도 불가능인 외아들 하나만 남겨놓은 채 집, 자동차, 땅, 희망은 물론 하다못해 앨범 증명사진 하나까지 흔적이란 흔적은 남김없이 몽땅 지우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보기조차 처음 대하는 경우로서 어쩌면 흔적을 지워도 그렇게 철저히 또 말끔하게 지울 수가 있음인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숟가락 꼭지 하나까지 말끔하게 가져가 버린 것이다.

화재라면 차마 이 정도는 아니겠고 미리 예고된 병환이란 짐작할 수 없음에, 병환에 뒤이은 홍수 재난이란 이중 겹치기 환란은 잔혹 무상함 이외엔 다른 소감을 댈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동시에 들이닥친 재난인 만큼 순서는 다를지라도 순서 다툼이 흔적 지우개엔 아무런 의미도 차이도 없었다. 화재는 탈 것만 태울 뿐 땅은 남겨놓지만, 대홍수의 수마는 땅과 지도조차 말끔히 쓸어가고 말았다.

이름 남기긴 차치하고라도 성취와 존재의 흔적마저 일습으로 지워버리긴 쉽지 않은 게 인간의 질기고 모진 흔적이라지만, 그조차 가능하단 사실을 난 나이 쉰에 똑똑히 지켜볼 수가 있었다.

물론 선배의 앞선 발병과 뒤의 재난이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불행일지라도, 막급하도록 큰 불행도 겹치기로 함께 올 수 있단 엄연함엔 그저 망연하고 아연할 따름이다.

악착같이 버티던 서울의 병원에 유체가 안치되어 있단 통보가 왔어도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지극한 배신감 상실감은 슬픔을 조차 넘는 것이었으니까…….

 

지난해 서울 병원으로 문병 갔을 때 교환하던 눈빛 굳은 약속을 선배는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선 지 유달리 재촉하듯 날 기다린단 소식은 듣느니 강박증에 준했다.

막상 불행에 닥쳐서야 세상사는 이치와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던 모양이었으나 그땐 이미 때가 늦었음이고, 기왕에 습관으로 자리를 굳힌 요령주의가 깨어지긴 워낙 시간 여유가 없었다.

발병에서 임종까지 꼭 7개월 투병 생활 중 3차에 걸친 서울 출장 입원 치료와 일시 퇴원의 절차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의 인심은 겉으로 대번에 드러나고 말았다. 처음엔 도리와 의리를 말하며 서울 먼 병원에까지 찾아가 주는 척 했지만, 가망성이 없단 소문이 냇물을 따라 퍼짐과 함께 찾아오는 발길들이 곧 소원해지고 말았음이니, 그것이 탓잡을 수 없는 소시민들 인심의 본질일지도 몰랐다.

 

내 사는 곳이 같은 남대천 물길을 10킬로미터 가량 오르는 상류이기에 결국 잔일 큰일을 막론하고 내 편에서 선배의 편의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차량까지 물에 휩쓸려 갔을 뿐더러 있다 해도 도저히 운전이 불가능한 건강 상태를 외면할 순 없었다. 상류에서 하류로 물 흐르는 방향이 그러하듯 선배는 중류 난 한참 상류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의 매일처럼 접촉이 계속될수록 말로는 위로를 하고 의지를 북돋워 세워주긴 해도 희망은 자꾸 줄어감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서서히 무너져 가는 선배의 상태를 곁에서 줄곧 지켜봐야 하는 내 편의 심사도 당연히 편할 리가 없었다.

길까지 왕창 허물어진 이곳에 결단코 들어와선 안 된단 강압적인 당부를 막상 들어와서 다녀보니 어렴풋이나마 이해된 것은 하지 않느니 와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감상적인 시야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이고도 뺄 수 없는 가료 절대안정을 위한 언급이었다.

 

타고난 인성은 분명 호인이었을지언정 그 시절의 삶이 거의가 그랬듯 뼛속 깊이 인이 배긴 찰나적 요령주의는 깨어지기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성장과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단 하나의 의미였을 경우, 이미 예순에 가까운 연륜에서 결정적인 자극이 없이는 결국 그때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버틸 수밖에 없음이었고,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앞서 닥친 병환은 그저 위중하기만 했다. 철저한 실패로 인생 하나를 마감시킨 시간엔 이처럼 냉혹 무정한 일면이 흔하게 있다.

선배뿐만이 아니라 막중한 고생에 한껏 눌려만 살다가 끝내 삶의 의미와 진미를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인사들을 그간 숫하게 봐 왔다. 그렇다 해서 내 자신이 삶의 의미를 다 알고 살아가고 있단 뜻은 아니다. 최소한 길과 길 아님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단 뜻, 괴로움 중에도 의미가 있고, 즐거움 중에도 독이 있단 정도는 남들만큼은 안단 뜻일 뿐이다.

 

한사람의 행위가 일개인, 한 가정의 불행 정도에 그친다면 모른 척 할 수도 있겠으나, 무지의 피해가 주변으로 파급됨도 모자라 길게 유전되어 감은 쉽게 묵과할 수 없는 해악이 된다. 따라서 다음 세대가 믿음직하기 위해선 역시 가급적 젊은 층을 아우를 수밖에 없음이고, 그것은 기성세대의 사죄와 반성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한번 길들여진 가치관은 개선을 위한 수고에 비해 결과가 늘 허망할 정도로 미약하기 때문이며, 차라리 죽음으로서 마감하는 편이 훨씬 쉽기에 특히 그러하다. 오선배가 그렇단 뜻은 아니다.

 

선악과 덕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의 선과 의는 교과서적 이론 차원에 언제나 머물러 있었을 뿐, 가까운 주변에서 실증적으로 보고 배운 바가 없었다. 이렇듯 사회 저변의 전통적 기반은 철저히 단절되고 부정됐기에 찰나적인 귀한 순간을 오로지 투쟁적 일변도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유일한 방식을 버리면 죽는 줄만 알았을 뿐 사회 변천과 의식의 흐름과 변화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생존만이 능사인 시절의 야만성은 특별한 자각이 없는 경우 죽어야만 바뀌는 것이고, 그땐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다만 사회와 주변에 미치는 악 영향은 더 이상 멈춰질 뿐이다. 오선배가 그렇단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의식이 다양해지는 게 아니라, 극소수의 각성파와 대다수의 야수파 두 종류로 단순하게 갈리고 만다. 쓸 사람 몹쓸 사람으로 쉬이 구별되고 만단 뜻이다. 야수파에게 다양해지는 건 경험이 유일하고, 유일한 무기인 자기만의 경험과 찰나적인 요령에 연명을 의지 해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간의 경험은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것, 한결같은 쓰라린 경험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으니, 이경우의 경험누적은 슬기로운 지혜보단 자칫 세상사에 대한 무거운 편견이 자리 잡기에 십상이었다. 오선배가 그렇단 뜻은 아니다.

 

본성은 분명 호인이라 했으니 선배에게 좀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틀림없이 편중 편협한 의식이 바뀌었으리란 예상을 할 순 있었다. 가끔씩 일시적인 삐걱거림은 있었을지언정 의식적으론 흔들림 없는 그간 나와의 교류를 통해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궤적이 다는 아닐 것이란 판단에 즈음해 있었으나, 시간은 선배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쉰여섯이란 나이 또한 변화를 기다려 줄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변화에 성공을 했다 손치더라도 얼마만큼 사회와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남길 수 있었을까, 라는 의혹은 있을 수 있겠으나,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당장의 위기에 봉착해 있을 땐 우선은 먼저 구하고 돕고 볼일, 결국 너무 때가 늦었단 말 이외엔 다른 해석과 변명을 넣을 수가 없었다. 이 대목에서의 오선배는 꼭 그렇다.

 

“산삼 한 뿌리만 먹어봤으면…….”

대홍수의 해가 바뀌어 2003년 1월도 상순, 크리스마스 직전에 결과적으로 마지막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서울 병원에서 선배의 절절한 전화요청이 있었다. 유심히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거의 쇠잔한 목소리는 독한 항암제 약물치료로 인해 녹초가 된 몸에 진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말해줌이었다. 못할 짓 차라리 귀를 막고만 싶었다. 심정 같아선 나라도 속병 들지 않게끔 맘껏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 붓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선배 앞에서 알아서 조심하는 편이었지만 난 처음부터 그럴 줄을 몰랐다.

난 작년에 발견한 중형급 산삼 한 뿌리를 쓸모가 찾아질 때까지 산중 제자리에 그냥 놔두고 있었던 것이고, 외부에 발설할 리 없는 이 같은 혼자만의 비밀을 선배는 살고자 하는 원천의 본능 때문이었을까? 얼핏 눈치를 채고 있었음이다.

“알았어, 4월 중순까지만 잘 참고 기다려 줘!”

한 바가지 크게 내쏘고 싶은 맘과는 정 반대말이 튀어나왔다. 일단 음지 깊은 산중에 허리 만치 두텁게 쌓인 눈이 녹고 심도 싹이 나와서 눈에 보여야만 나로서도 찾을 수가 있었으니 피치 못할 주문이었다.

어쨌든 소원으로 던져 오는 간곡함을 마다할 나도 아니었다. 치료 방법이 된다면 빠질 수 없는 처방일 테고, 천복이 있다면 간곡한 당신의 의지에 산삼의 능력이 더해져 혹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태풍 ‘루사’가 숟가락 꼭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쓸고 가버린 입장을 모르지 않는데 거기다 값을 논할 계제는 당연히 되지 못했다. 그랬었다. 바로 이런 경우에 대비해 용처가 생길 때까지 큰 거 하나쯤 제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있었던 것이다.

눈감기 이틀 전엔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심히 앓는 소리를 뒤로 형수의 울먹이는 애끓는 전화가 있었으나, 아직 3월 상순의 숲 속엔 눈이 기어코 허리까지 쌓여있었으니 손이나 있는 힘껏 쥐어주란 말뿐이 달리 언급을 전할 수가 없었다.

“잘 참고 기다려 달라!”는 충고 아닌 내 마지막 애원성 부탁마저도 청개구리 선배는 끝끝내 듣지 않았다. 시간과 뜻이 모두 합당하지 않을 바에야 즉 시의적절하지 않다면 기 준비되어있는 천복이 거저라 해도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집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화장으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선배는 거짓말처럼 지상에서 사라졌다.

세상사는 무슨 대단한 요령이랍시고 잡다한 유동성 정보는 머리에 가득 담고 있었을지 몰라도, 간단하고 쉬운 자연의 이치는 막상 외면했기에 난 선배의 죽음을 ‘절반의 자살’이라 칭한다. 아직 묻히지도 않은 고인을 두고 말이 너무 심하지 않느냔 타박도 피하지 않겠다.

못난이 청개구리 오선배가 남긴 마지막 절박한 소원은 그대로 차가운 유언이 되어버렸고, 내겐 뜨거운 유감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선배가 가고, 아주 가고 두 달여 뒤 제자리에 놔두고 있던 원래 중형급 뿌리는 물론, 또 다른 보다 대형 4구 산삼을 마저 찾아냈던 것이다.

 

어차피 내 생일도 형식적이란 미명아래 그냥 흘려버리고 일절 찾아먹지 않는 나였다. ‘이건 아니다. 억울하다!’는 판단을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어 서울 장례식장엔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살아있을 때 그처럼 말로도 행동으로도 할 만큼은 다했으니 선배나 나나 허망한 장의예식이란 형식과 절차를 외면한다 해서 서운함은 별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 유감이 다소간 남아있을지라도 먼저 귀가 닫히고 이젠 입까지 닫고 사라진 선배는 어차피 말이 없을 테니까…….

내 처음 만나서 낸 첫마디가 물가에 사상누각(沙上樓閣)이었지만 결국 죽어서야 청개구리 처지를 면했을 테니, 강원도 양양군 15년이란 지긋지긋한 물가 세상을 떠나서 제 고향 전라북도 고창군 선산에 뿌려질 것이란다. (명심하거나 말거나 이 같은 매서운 정황들이 있기에 혼자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한갓 청개구리조차도 한걸음 곁에서 보기에나 그럴듯할 뿐 내성 사나운 물가 가까이엔 절대로 살집을 짓지 않는다.)

 

워낙 남의 말을 새겨들을 줄 모르는 청개구리 선배였기에 속설처럼 바른 쓴말보다 차라리 거꾸로 달콤한 언사를 넣었어야 옳았을까? 그렇다면 한번쯤 내 말을 들어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허면 아직 생존도?

허랑하고 무망한 가정일랑 다 몹쓸 병마와 수마에게 내던져버리고…….

아! 선배, 오 선배는 지금쯤 영면의 길로 한 걸음 먼저 잘 들어섰겠지! (끝)

 

*자연환경수상록 '한 스푼'(어문학사)에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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