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벼락 전나무

조회수 15087 추천수 0 2011.12.12 03:18:36

(벼락 전나무)

 

3월 초순에 내린 눈은 잡다한 모습들을 가릴 건 가리고 있어야 할 것만 또렷하게 드러내 주기 마련입니다. 눈이야 물론 양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직전까지 머물렀던 강원도 산골짝 설국도 본판의 그것이 더 많고 진하고 깊이에서도 한 차원은 다르다마다요.

 

일시 자리 잡은 강마을, 학이네 거처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바로 요 풍경에 반해서 행정상의 어려움이 약간 남아있다는 치명적인 결격정보를 감수하고 비어있는 신축주택에 첫 세를 얻어들었답니다. 이처럼 눈뜨고 일어나면 바로 코앞이 북한강 본류이자 청평호반 중상류인고로 곧 강마을이란 호칭 그대로입니다.

거기 눈 내린 농토 한복판에 수령이 80~100년 쯤 된다는 전나무는 보이는 시각의 총 중에도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눈이 다 시원해짐은 물론이려니와 의지에서 올곧은 방향을 볼 때마다 지표로서 잡아주기에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겉보기 보다 밑둥치는 어른 두 아름은 너끈히 되었습니다.

 

기회 때마다 자주 물어봤지만 나무 나이도 동네 어른들마다 다 틀릴 뿐 누군들 정확하게 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매 불가피 내 짐작에 더해서 그중 평균치를 가늠해서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약 80~100년 정도 된 수령이란 결론입니다.

 

tree0.jpg 

 

어디 한 두 해 경험이겠습니까? 한 여름날 모든 걸 태워버릴 듯 양양하고 도도하며 강렬한 뙤약볕도 노련한 전나무라면 아랑곳할리 없습니다.

 

tree1.jpg 

 

어둔 밤에도 그의 농밀한 실루엣으로 말미암아 내 의식은 어긋나려야 어긋날 수가 없었고, 잦은 밤샘 작업에도 온전히 홀로이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강바람이라도 좀 거세게 불라치면 거기서 들려오는 ‘쏴아!’ 각성음 또한 시시때때로 선연하도록 날 일깨워주기 마련이었죠.

내 아는 수년 동안을 내내 그렇게 한 자리에서 내 의지와 시간 역사를 함께 지켜주는 지표로서 너무나도 훌륭한 이정표로서 늠름하게 올곧게 서있어 주었습니다.

가을날 아침 안개에라도 깊이 젖으면 시 한줄 악속받기 마련인 운치는 숫한 서정과 시상의 발원지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여름도 입구인 6월 초순도 오후, 동네 슈퍼에서 뭔가를 좀 살 일이 있어 밖으로 나왔다가 때 마침 세찬강우가 뇌성벽력과 함께 들이치는 바람에 주차장 테라스 아래 머물며 잠시 소요가 지나가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일기예보에 강우소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지하게 구물거리다 조금 내리시는 척 하다 말다할 뿐이었기에 일이 있으면 일단 움직일 수밖에 없는 어중간한 기상상황이었습니다.

 

tree2.jpg 

 

믿기도 힘들고 공교롭기도 하거니와 뒤편이란 삭막한 아파트이기로 강을 향해 열린 거기뿐 시각을 둬둘 곳은 달리 없었습니다.

전나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약 50미터, 일순 눈앞이 하얗게 마취가 될 정도로 느닷없는 푸른 광선 한줄기에 더불어 ‘꽝’ 단발적인 벽력같은 폭발음 한마디와 함께 벼락이 세상에나! 전나무 상단을 정확히 내리치고 말았던 겁니다.

바로 눈앞에서 산산조각난 상단부분이 ‘우수수’ 마치 추풍낙엽처럼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말 그대로 모진 녀석 곁에 서있던 소나무 한그루도 덕택에 많은 부분 곁가지가 함께 떨어져 나갔습니다.

 

왜정시대부터 동족상잔의 한국동란을 거치는 그토록 기나긴 세월의 엄혹함을 잘 버티고 만 가지 난관조차도 굳세게 이겨온 거목 전나무가 하필 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그만 모습을 허망하게 꺾이고 만 겁니다. 그렇듯 아주 잠깐 사이에 머리 꼭대기 생장점 부분이 불과 몇 초 전에 왕창 잘려나간 안타까운 깡둥 전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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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마음 놓고 눈 돌릴 소중한 한곳을 고스란히 잃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몰라도 꿋꿋하게 서 있다가 한순간에 사라진 의지의 지표수라면 그건 애초부터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순 없는 일이기로 그렇습니다. 생각이야 가능할지 몰라도 가슴에서 그렇게 간단히 될 린 없습니다. 눈은 이제 볼 것을 당연히 보겠지만, 가슴은 지난 옛것, 그도 그리 멀지도 않은 바로 어제의 것이라면 무조건 현실에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마을에 뜬소문은 빠른 탓에 무심한 일부 노인네들이야 하필 벼락 맞은 나무가 벽사의 의미에서 지팡이로도 훌륭하고 또 어디어디에 좋다며 조금씩 잘라가기도 하더니만, 누구도 노거수 전나무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제 세월이 얼마쯤 지나면 나무도 벼락 맞은 제 흔적을 스스로 가릴 것이고, 바쁜 오늘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일시적인 해프닝 일장, 솔깃한 가십거리 정도로 그칠 뿐 곧 잊힐 겁니다.

 

하지만 아니 봤다면 또 모르겠으되 순간적으로 벌어진 사태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바에야 오로지 글쟁이의 짙은 기록 몇 줄과 사진가의 지워지지 않는 사진이 현장의 일각을 해프닝 또는 전설이 아닌 엄연한 실상이란 시간의 이력서에 깊이 각인시켜 순간을 영원 속에 남아있도록 할 겁니다.

 

tree4.jpg 

 

* 2009년 6월2일 화요일 오후 4시30분경, 가평읍 달전리 대표 전나무 벼락 맞다. *

이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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