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동장군 코빼기

조회수 18235 추천수 0 2011.11.21 02:31:33

(동장군 코빼기)

 

깊은 안개의 독특한 서정 때문일까요? 간만에 참기 힘들만큼 좀이 너무 쑤시기로 밝은 정경쯤 얻어 보려 아침부터 무작정하고 스쿠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밤새 너무 냉각되어진 엔진 때문에 시동을 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곧 12월이 되면 작년처럼 스쿠터도 새봄이 되어 날이 풀릴 때까지 긴 동면에 들어야 할 겁니다. 겨울 한철 한시적일지언정 차가운 바깥 한데에 놔두어야 하는 스쿠터는 이젠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 내 사진으로 접하는 자연과의 교류도 한해의 종막을 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길게 통사정한 끝에 엔진에 시동을 겨우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걷는 것과 다름없이 속도야 빠르지 않아도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 손끝이 등이 많이 시립니다. 귀 끝도 쨍한걸 보니 바깥은 영하라는 알림입니다. 문득 옷장 안에 목도리를 생각하지만 이내 떠올리는 방금 전 일기예보엔 아침기온이 영하 4도 근방이었더랍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근동 풀밭엔 무서리가 하얗게 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서리1.jpg

 

어쩐지 다시 회고해 봐도 언제부터인가 모를 정도로 개구리 족속의 면모를 본 기억이 까맣게 사라졌습니다.

지금 나이를 젊음이랄 순 없지만 실지 육신 쇄함이 감정적으론 쉬이 인정 용납되진 않기로 자기보호를 위한 입성단속은 계속 서툴기만 합니다. 양양시절 두어 차례 호된 욕을 볼 뻔 했으면서도 아직껏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냉기라면 이곳 가평이 그곳 양양보다 한 추위 더 윗길인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월을 인정하고 싫지 않다는 억지춘향인 줄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러다 제대로 혼 한번 나지~” 싶으면서도 막상 동장군 녀석만 만나면 그저 어울려 곳곳을 쏘다니느라 까맣게 잊기 마련입니다.

친숙하다고 엄청 봐주고 있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성향을 모르지 않는 동장군의 배려에도 한계는 반드시 있는 것, 올해까지만 철방구리로 그냥 살고 내년부터나 조심을 해야지 일반 맘먹어 봅니다.

 

가을걷이를 벌써 마친 빈 무논엔 제법 살얼음도 다가올 계절을 앞서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동장군의 코빼기, 계절을 가리거나 싫고 좋음을 따지진 않지만 유독 겨울을 좋아하는 내겐 반갑고 정겹고 또한 깊은데다 두루 익숙한 정경입니다.

 

 서리2.jpg

 

 

느릿하게 한 바퀴 동네를 점검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햇살 좋은 양지녘엔 서리가 빠르게 먼저 말라들었습니다.

중요치도 않은 일에 어떤 부지런한 농부네가 새벽부터 일찌감치 서둘리 없었을 터, 밤새 혼자 내 팽개쳐 두었는지 익숙한 흑염소가 마르고 누런 풀밭에서 그냥 놀고먹고 있었습니다. 이젠 내 얼굴을 안다는 깜냥에 날 보며 “매~에!” 거릴 때마다 입에선 하얀 김이 뭉텅 쏟아져 나와도, 한 겨울 본격적인 추위에도 넉넉히 강건할 것임에 이 정도 찬기는 한 톨인들 걱정 없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서리3.jpg 

 

그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려니 하품을 늘어지게 입이 째져라하는 순종 같은 잡종 강아지 녀석하고 할아버지뻘 되는 흑염소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구태여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능히 읽어내실 수 있으시리이다.

 

각오도 준비도 되셨나요? 이제 아침나절엔 아무래도 가을이 아닙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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