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웬일이니?

조회수 11302 추천수 0 2012.06.09 04:11:31

(웬일이니?)

 

이젠 태동기를 지난 식물보다 절정기에 든 동물 쪽이 볼만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경치는 녹음과 함께 제 깊이를 한정 없이 더해 가는 중입니다. 날씨 또한 덥긴 해도 아직은 한여름처럼 찌는 듯한 무더위가 아닌 경쾌한 열기 정도이기에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초원에서 풍겨 올라오는 풀 향기를 맡아보면 그의 경쾌함을 누구든 금세 압니다.

 

엊그제 붓꽃과 원경의 경치를 배경으로 담았던 사진이 다소 미진해 다시 시도하고자 같은 장소, 동네 뒷동산을 찾았습니다.

붓꽃이 한 송이에서 두 송이로 보다 개선되어 있긴 해도 썩 내키는 정경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님에야 일단 습관처럼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남 보기 거시기한 펑퍼짐하고 찌그러진 폼이나마 잡고 그중 나은 구도를 택해 먼저 한 장을 그냥 대충 찍었습니다. 두 장 찍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기로 그저 무념으로 폼을 허물어뜨리려는데, 앞쪽 붓꽃의 뒤편에서 하늘소 한 마리가 불쑥 날아올랐습니다.

어? 너 웬일이니? 훌쩍 날아오른 하늘소는 멀리가지도 않고 40여 센티미터 가량 떨어진 건너편 붓꽃으로 바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어? 그럼? 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으켜 세우려던 폼을 다시 가다듬고 촬영준비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허!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다시 이쪽 붓꽃으로 날짝 날아와 줬습니다. 기왕에 만전의 준비가 되어있던 참이라 그냥 앉아서 한 장을 거저주웠습니다.

꽃하늘소0.jpg

꽃하늘소1.jpg

꽃하늘소2.jpg

 

바짝 다가 올 때 디카와의 거리는 불과 한 뼘 남짓, 녀석의 안중에 난 들어있지 않음이 확실했습니다.

 

꽃하늘소3.jpg

 

모든 게 와일드한 야생상태에서 야생화처럼 틀림없는 정지화면이 아닌 바에야 삼각대를 전혀 사용할 수 없음은 지당합니다. 허니 꼼짝 없이 내 몸을 삼각대 삼아 버티길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경운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삼각대 이상의 자세 공고함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대 여섯 차례씩이나 지극히 적당한 시간간격으로 녀석이 왕복을 해주는 바람에 세상에 다시없는 편안한 자세와 여유 있는 심정으로 난 기계처럼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셔터만 연신 눌러댔습니다. 정지해 있는 식물도 아닌 훌훌 날아다니는 날개 곤충의 공중비행 폼을 기술적 완성도가 아직 미진한 보급형 디카로, 그것도 표준렌즈의 접사영역에서 잡는다는 건 거의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꽃하늘소4.jpg

 

 

녀석이 불가피 화면 바깥으로 나가면 그때가 잠시 한 컷 한 호흡 쉬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 같은 거저먹기, 골라 먹기란 난생처음입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란 하도 기가 막힌 상황에 감동 감탄한 나머지 자꾸만 틀틀거리며 튀어나오려는 웃음 때문에 셔터에 진동이 전해질라 애써 눌러 참는 것이었습니다.

 

꽃하늘소5.jpg

어깨도 저리고, 엉덩이도 쑤시고, 이젠 좀 지루하단 느낌이 들 즈음에 참말이지 신통하게도 저 멀리 알아서 훌훌 날아가 줬습니다.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적절하고도 철저히 우호적이었습니다.

이같이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는 날개곤충의 이름은 ‘꽃하늘소’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멋들어진 장면들이고 대자연과 제대로 합일치 된 오늘이야말로 더 할 수 없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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