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많은 멍청이)

 

작품사진 몇 장을 각기 다른 비율로 축소시킬 일이 있었다. 한참을 뒤져 오랜만에 찾아낸 공학용 전자계산기에 아차! 배터리가 소진되다보니 천 단위 숫자에 불과한 나눗셈을 왜 나는 종이 위에 손으로 필산할 줄을 몰랐을까? 바깥 추위를 빌미로 이틀을 지지리 참다가 퍼뜩 깨우치고 종이에 몇 번의 필산으로 간단히 해내긴 했지만, 혼자 한참을 실소하며 망연해했었다. 고차원의 고등수학도 아닌 겨우 사칙연산에 불과한 산수 나눗셈을 난 습관처럼 전자계산기에 의존할 생각만 했었으니,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아도 대가로서 싸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로서 높은 기술세상을 향유하는 한 가지 부작용을 필연코 말함이다.

공학도 전자계산기도 모르는 미개하다는 아프리카 토인 또는 북미인디언의 일상격언을 들어보라, 생을 통째로 관통하는 가슴 깊숙이 저리게 하는 경구들이 얼마든지 많다. 자칭 일찌감치 개명됐다는 동서양의 고전처럼 입으로 때깔만 좋은 관념구가 아니라 치밀할 정도로 실체용언인 것이다.

 

역시나 어지러울 뿐 퇴행의 매캐한 먹취로 가득한 도시에 들어서면 난 그 묵중한 암울함에 질려 곧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탄생지 고향에서 외방인의 자기색깔을 매번 확인할 따름이었으니 기대시간을 앞당겨 서둘러 되돌아오고 말아야했음이다. 곳에서 한참을 달아나 개방된 산천이 눈에 비치고 한 호흡 안에 풀냄새건 소똥냄새건 들어와야 비로소 내 삶과 인식의 소재지를 감응하게 됨이었으니, 고향 방문이 선천 인간으로서의 의무일지언정 분명 후천 문명부적응자의 딱한 입장인 난 아웃사이더 확실한 국외자였으니 한국형 토인 또는 조선풍 인디언이라 부른들 상관도 부인도 하지 않겠다.

 

봄철도 3월이나 하순에 때 아닌 폭설까지 동반한 늦추위가 여러 날 맹위를 떨치더니 산야엔 그의 징표가 확연하다. 개화한 진달래가 작년에 비해 반의반도 되지 않음이다. 겨울의 시작 즈음에 다가오는 기상에 내년 식생들의 안부가 제법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올 이른 봄의 기상상태도 만만치 않았음이니 검게 처진 꽃 싹을 만져보면 바삭하게 말라서 부서진다. 1년을 기다려온 진달래 기획사진은 그렇게 다시 내년을 두고 보자며 봄철이 시작되자마자 물 건너갔다.

그런 중에도 늦추위를 살짝 피한 이른 민들레는 4월도 상순인 이즘에 벌써 풍성해진 흰빛 솜털 공을 매단 생경스런 광경에 참신함을 도리어 느낄 수 있었으니 그중 다행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아쉬움과 우려를 말끔히 잠재우는 쾌재가 따로 있었으니 바깥에 봄 식생들은 절반 이하로 수가 감소했다지만 대신 집안에선 몇 배로 는 것도 없지 않았다. 예상보다 일주일가량 빠르게 내 화분 안에서 잠자고 있던 산삼이 거의 동시에 둘이나 싹을 틔우기 시작했음이다. 벌써 가지가 둘로 성장해 나오는 하나는 작년치로 묵은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올 첫 싹트는 신참내기 3행 새싹으로 일이 풀리지 않아 길게 묵중했던 심사가 이로서 참신한 기운을 얻을 수 있었으니 난 이래서 또 한 시절을 참고 이겨낼 확고한 이유를 구했다.

이에 그쳐도 분복은 넘칠 뿐 전혀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었지만, 어린 것 둘이 먼저 싹트고 난 나흘 뒤 절대로 의외로운 대사건 하나가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화분 한쪽 귀퉁이 땅거죽이 며칠 전부터 슬며시 들려지고 갈라짐이 눈에 띄었던 것, 그냥 놔두면 속이 너무 마를까봐 무심코 두어 번 다시 평탄하게 원래대로 복구를 했지만 생각 한쪽에선 ‘설마?’하는 선연한 느낌이 없지 않아있었다.

 

재작년 가을 자주 왕래하는 북한강 호수 길을 지나치다 우연히 알게 된 아랫마을 금대리 어떤 선배 한분이 겹치기 대수술이란 중환에서 어렵사리 회복 중이었던 바, 길에 선채 나눈 대화 도중에 우리 가문과의 길고도 긴밀한 우정을 뜻하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의 우정과 의리에 대한 보답으로 가장 아끼던 초대형 씨받이 귀물 쌍대산삼을 겨울이 지나 3월 초순 동면에서 깨고 약효도 가장 뚜렷할 때 아낌없이 희사함으로서 임의 원기회복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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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 해 숫하게 달리는 씨앗들을 회수해 곳곳 적절한 산야에 되돌려주고 일부는 필요한 인사들에게도 나눠주는 등 내게 속해서 크나큰 행복이자 베풂일지언정, 사람을 직접 구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으랴 는 완곡한 생각에서였으니, 맘먹고 삼을 캐 물로 씻고 다듬을 당시 떼어낸 뇌두와 그에 따라붙은 가는 뿌리 일부를 기왕에 썩을 것이라면 제자리에서 후세들에게 뜻 깊은 거름이나 되어주라고 무심히 화분에 묻어뒀던 게 그만 죽지 않고 살아나 기적같이 대물로 다시 소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물은 어린 것 둘처럼 씨앗을 심어 난 장뇌산삼이 아니라 양양은거시절을 마칠 때 생육공부 차 반투명 플라스틱 반찬그릇 안에서 키우던 걸 그대로 가져온 진짜배기 강원도 야생산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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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의당 썩어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혼자서 정중동의 속내 치열함으로 사망을 조차 이겨냄을 전혀 몰랐던 난 그저 눈물겹도록 감동할 따름이니, 지난 한 해 동안 작을 리 없는 너무도 큰 상처를 맹렬하게 스스로 치유 복구하기에 성공하고 다시 생환하는 중이란다. 이로서 자신의 막중한 능력을 바깥에 꼭 필요한 인사에게 베풀곤 감쪽같이 다시 내게로 되돌아옴이란 상상도 하지 못할 기적 같은 은혜로 비어있음이 당연한 화분 속은 졸지에 세 그루의 산삼이 싱그럽게 밀림을 이루기 시작했음이니, 꿈에라도 환생을 기대치 않았던 양양은거시절의 전설 한 토막은 이제도 살아서 은혜를 현실로 기어코 이어내고 있었다. 먼 듯 메아리처럼 다가오는 소명 하나를 겨우 감지할 뿐 지금 이 넘치는 분지복의 원리를 내 좁고 알량한 머리론 어찌 다 가늠할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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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화끈하게 대기를 장악했던 왕벚나무 흰 꽃들이 지난밤 내내 불던 강풍에 거의 모두 떨어져 잠깐 사이에 시즌을 마감한 날 하루를 곧장 지켜보니 아무래도 삼들의 성장이 더딘듯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재작년 이후론 일절 양분을 보충해준 기억이 없었기에 얼른 가까운 산록 믿을만한 북향그늘에 달려가 그럴듯한 가뿐한 부엽을 약간 얻어다 기분도 좋게 넉넉한 샘물과 함께 보충해주었다. 어린 새싹일 때야 작으니 그렇다 쳐도 덩치가 커질수록 흡수력이 하루가 다르게 놀랄 만치 왕성해지기 마련이기에 간곡히 기다렸던 바였던지 그로서 눈에 띄게 삼들의 생장력이 좋아졌다.

 

이렇게 숲에서 퍼온 부엽 속엔 뜻하지 않은 손님들도 당연히 들어있으려니 잊을만하면 여기서 쑥, 저기서 불쑥 온갖 종류의 식물 새싹들이 두고두고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물론 청하고 싶지 않은 손님 다분히 불청객들이지만, 눈에 보일 리도 없는 이들을 일일이 골라낼 재간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헛되이 따라와 저들도 살겠다고 기어코 기어 나오는 바를 난들 말릴 도리는 없다.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살아낸 배고픈 산토끼도 노루도 뜯어먹지 육중한 멧돼지에게 무단히 밟히질 않나, 그 같이 거친 야생상태에 비해 내 화분이란 다분히 안정된 인큐베이터랄 수 있겠으나, 문제는 반음지성 산삼의 생육조건과 여간해서 맞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임에 있다. 제 앉을자리를 고를 자발적 능력이 일천한 친구들인지라 놔두면 햇살을 좋게 받지 못하는 탓에 얼마가지 못해 성장을 중지하거나 아예 시들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럼을 알기에 일부러 제거하지 않고 가급적 버티고 살 수 있는데 까진 내버려 둔다. 일시나마 산삼도 엉뚱한 이웃들과 작은 어울림을 갖게 되겠고, 약간의 영양분을 함께 나눠먹은들 자체로서 경이롭기 마련인 생명체에 대한 내 작은 로망이라 치부해도 크게 외람되진 않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도 않거니와 내겐 한순간이라도 인생사 시름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의식의 일보만 옆으로 옮겨 다시 생각해보면 이처럼 대체될 희망의 요소가 전혀 없었던 처참한 적 또한 없었으니, 다만 놀라고 감탄할 뿐 감지하기 어려운 조물주의 중용적 배려인 천연지덕에는 그저 머리만 조아리며 다소곳이 순천자의 자세를 새롭게 바로 갖출 따름이다.

필산 나누기처럼 셈이 어리석기에 삶이 버거울 때도 있기는 있을망정 대체로 난 참 복 많은 멍청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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