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멍청한 꿩 서방

조회수 14191 추천수 0 2011.12.14 09:41:18

(멍청한 꿩 서방)

 

“꽝”

마치 총소리인 듯 밖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서재 동편 창문이 뒤흔들렸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천지가 고요한 가운데 컴퓨터 화면만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란 건 당연하다. 굉음 그대로 가까운 바깥에서 사냥꾼이 발사한 총소리인가 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아니었다. 창문 유리는 보니 깨어지지 않고 멀쩡했으니까.

 

이곳은 적막강산이랄 만큼 외부 소음과는 거리가 먼 외딴 산골짜기이기에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도시형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지역이다.

도시에선 사람 소리와 개소리를 제외하면 생물의 살아있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으나, 이곳은 들리는 거의 모든 소리가 생물의 숨 쉬고 움직이는 소리 아닌 게 드물다.

같은 개구쟁이 바람조차도 도시의 그것은 깡통도 굴리고 온갖 쓰레기를 휘몰고 다니며 잘해야 창문을 두어 번 흔들어 주는 정도로 골목대장 역할이 대종이지만, 이곳 바람은 잠든 나뭇가지도 흔들어 깨우고 죄 없는 꿩 서방도 울리고 알밤이나 ‘투다닥’ 떨어뜨리는 등 살아서 움직이는 양상이 판이하다.

헌데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수년 내에 처음 듣는 벽력같은 소리, 희귀한 도시형 잡음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앉은 곳에서 고개만 들고 살펴보니 창문 밖 가느다란 철사 방충망이 1센티미터 이상이나 세모지게 찢겨져 있지 않은가, 만일 방충망이 있어서 완충해 주지 않았더라면 대형 창문 유리가 박살났을 게 빤한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총알이 아니라면 뭔가가 또 날아와서 부딪친 모양이었다.

일껏 창문을 열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호라! 창문 아래 마른 풀숲에 산 꿩도 아닌 큼직한 들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함부로 널브러져 있었다.

 

2004_0808Image0081.JPG

 

작년과는 달리 올핸 이상하달 정도로 꿩들의 극성이 심하다.

산 꿩도 그렇고 들꿩까지도 숫자가 엄청 불어나 있고 그 자세한 원인을 난 잘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 산과 들에 푸드득거리며 나르는 녀석들의 갑작스런 날개 짓에 흠칫 놀랄 때도 적지 않다. 산 꿩 한 무리가 능선에서 동시에 날아오르면 마치 프로펠러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과 같은 날개 바람소리가 계곡을 한참 동안이나 울리고 대기는 온통 벌겋게 물든다.

 

창문이 워낙 대형이고 사방으로 많다 보니 철따라 온갖 것들이 날아와서 부딪친다. 모르고 세게 부딪치지 않더라도 자청해서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계속 ‘후닥닥’ 거리며 성화를 대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보채다가 제 성에 차지 않아 신경질이 나면 바깥 문턱에 앉아 ‘깩-깩’ 울기까지 한다.

들어왔다가 열린 문을 찾아 곱게 나가주기만 한다면야 안에서 함께 집을 짓고 산들 무허가라고 마다할 내가 아니다. 그러나 한번 들어온 녀석이 제대로 출구를 찾아 제 발로 곱게 다시 나가는 경우를 본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계속 서편 숲 쪽으로 난 두 개의 대형 고정 유리창에다 몸이 상할 정도로 일방 밀어붙이기만 하는 바람에 결국 내 손을 빌어 퇴출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소쩍새도, 부엉이도, 까치도, 어치도, 왕오색딱따구리까지도…….

말이 쉬워 도움이지 녀석들이 상하지 않도록 엄청 조심을 해가며 이리 펄쩍 저리 펄쩍 한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조금만 내 동작이 거칠어도 자극을 받아 당장에 급 충돌 부상사고를 일으키기 때문에 난 뛰지도 못한다. 녀석도 지치고 나도 지칠 때쯤 간신히 손으로 포획해 제 출구로 날려 쫓아 보내고 나면 그렇게 한심하고 딱할 수가 없음이다.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들어오지 못하도록 약간의 갑갑함을 무릅쓰더라도 바깥 방충망 정도는 늘 닫아두고 산다. 자연과 그의 이웃들이 이곳의 원래 주인이고 객인 나 또한 대자연 그 한복판에 깊이 파묻혀 그들처럼 살고 있다고는 하나, 많은 경우 한 걸음쯤 살짝 이격시켜 둠이 피차에게 서로 이롭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곤충들이야 아무리 커도 가속 에너지가 워낙 작아서 스스로 다치는 일이 없겠으나, 봄철엔 주먹만 한 아름다운 새들이 날다가 부딪쳐 여러 마리씩 목숨을 잃는 바람에 짓지 않아도 되는 죄를 매년 난 가만히 앉아서 짓고 있다.

겨우내 다른 짐승들을 구휼하느라 베풀고 쌓아둔 적선을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처럼 고스란히 앉아서 까먹어야 하는 허망한 징벌의 윤회는 아무래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내 팔자에 선덕을 쌓는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들꿩을 자세히 살펴보니 입을 반쯤 벌리고 잦은 숨결을 토해내며 눈망울조차 가끔씩 끔벅거리는 게 아직 목숨은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 제법 근수가 나갈 것 같았으니 그만큼 대형이었다.

‘이를 어째야 할 거나!’

순간적이지만 난 후속 수단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 흥부네 처럼 잘 보살펴 선덕을 쌓아 내년의 어떤 복락을 기대해야할지, 어차피 죽을 놈 같으면 한 두 끼니 몸보신용으로 고맙게 접수해도 될지, 얼른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잘 모를 땐 미뤄두는 게 상책이다. 창문을 다시 닫고 잠시 그냥 그대로 두고 보기로 했다. 녀석의 명운이 길면 긴 대로, 명운이 다했으면 다한 대로 내 팔자가 아닌 녀석의 팔자에 맡기는 수가 가장 원만했다.

한 가지 솔직히 고백한다면 녀석의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난 봄철 작은 새들처럼 자연의 처분에 겸손하게 맡겨 두진 않을 작정이었다. 땅을 파서 곱게 묻어주진 더더욱 않을 생각이었다. 주방엔 바로 얼마 전에 사다놓은 튀김용 옥수수기름이 아직 뚜껑조차 벗기지 않은 채 싱싱하게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내 팔자보다 녀석의 팔자가 우선이고 길었다.

글에 깊숙이 몰두하다보니 깜박한 게 30여분, 다시 내다본 바깥엔 녀석이 누워있던 뭉개진 마른풀자리 뿐 들꿩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정신을 차리고 제 갈 데로 찾아간 것이다. 아무리 멍청한 새 머리 돌 머리라도 최소한 뇌진탕은 피할 수가 없었을 텐데 역시 야생은 강인한 야생이었던가.

시원섭섭하단 말은 이 경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까짓 털 뜯어봐야 잠시 입만 즐거울까 몸보신엔 턱도 없을 거라고 자위를 해보지만, 일면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복도 거둘지 모른다는 타박이 귓가를 살짝 맴돌았다.

 

보신은 한가지만이 아니다.

가급적 먹거리를 단순화 시켜가며 살고 있기는 하나 육고기마저 완전히 차단한 수도승의 엄격한 식단은 아니다. 이따금씩 일부러 삼겹살도 사다 먹으며 몸 생각도 하긴 한다. 그러나 횟수는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여 과한 상태는 엄격하게 피하고자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 삼가는 입장에 후딱 일어나 미처 죽지도 않은 들꿩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건 그간의 섭생 습관이 허사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영양분이 몸으로만 흡수되지 하지 않는다는 걸 난 절실하게 신앙 신봉한다. 몸보신 이외에 가슴 보신도 있다는 말이다. 바로 순수의 가치가 그러하고 더 잘생긴 산 꿩은 내 문장의 소재가 될 자격에서 모자라나, 못난이 들꿩은 이처럼 깔끔한 내 문장 한편의 주인공으로 모자람 없이 훌륭한 것이니까.

고르기 쉽지 않은 장소에 깊숙이 파묻혀 살면서 순수의 그림자를 가볍게 생각한다면 마음열고 쓸 글이 별로 없을 게 분명하다. 가공된 글을 아무리 훌륭하게 미화시켜 멋지게 쓴다 해도 내용의 진위에 눈 밝은 여러 독자들을 모두 속이지는 못한다는 엄중함도 분명하니까, 순수의 바탕을 기본으로 써진 글이라면 내 글을 내가 읽어도 차마 부끄럽진 않더라.

잠시 더 시간이 흐르니 큰 안도감이 섭섭함을 쉽게 구축해 주어 마음의 정리가 한결 편하고 의젓했다.

 

꿩도 꿩 나름이다.

산 꿩은 주의도 산만치 않고 머리도 새머리답지 않게 영악스럽고 눈치도 빠른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하나 들꿩은 어림도 없다. 멍청하긴 숫한 조류 중에 앞 손가락에 들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산 꿩은 내 집에서 20여 미터 이내로 들어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으나, 들꿩은 지금처럼 하늘과 나무들이 창유리에 비친다고 창문에 호되게 헤딩을 할 정도로 바짝 접근해 들어오기 일쑤다.

창밖이 버석거려 몰래 살짝 내다보면 산비둘기 아니면 들꿩이다.

사람의 기척이 언뜻 거리면 산비둘기는 쏜살같이 달아나지만 들꿩은 그저 허둥댈 뿐 제 행동에 기준선이 없다. 산비둘기는 너무 소심해서 그렇고 들꿩은 워낙 멍청해서 그렇다.

작은 새들을 제외하면 산책길에도 4-5미터 이내로 스쳐 갈 수 있는 중대형 조류는 이 근처에선 거의가 들꿩뿐이다. 가까이 스쳐가도 걸어서 피할 뿐이지 날아서 달아나는 경우도 드물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마리라도 잡아들일 수 있는 손쉬운 상대가 바로 멍청이 들꿩인 것이다.

 

저도 깜박, 나도 깜박, 접근을 서로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손만 뻗으면 바로 닿을 지근거리에서 ‘화닥닥’ 내 얼굴에 세찬 날개바람을 쏘아주며 소리도 요란스럽게 날아올라 기겁을 하게 하는 녀석.

차를 타고 오솔길을 느릿하게 돌아나갈 땐 더더욱 한심하다.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차를 피해 달아날 엄두도 내지 않고 제자리에서 계속 허둥대고만 있다.

엔진 소리도 작지 않은 고물 디젤 트럭이 아무리 부르릉거리고 비포장 험한 돌길에 빈 차체가 엔간히 덜커덩거려도, 사람의 모습이 제 눈에만 안보이면 무조건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말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우고 녀석이 하는 꼬락서니를 한동안 지켜보며 질경이 마른 풀씨 먹기를 마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 주지만, 결국 슬슬 강제로라도 밀고 들어가지 않으면 언제까지든 피해 줄 생각도 하지 않는 녀석이 바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들꿩 서방이다. 그 짧은 잠깐 사이에 기다리고 서있는 트럭의 존재까지도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겨우 엉금엉금 길 뿐 싹싹하게 날아서 길을 열어주지도 않는, 깃털까지 다 더해도 2킬로그램 남짓 될까 말까 한 녀석이 빈차라도 2톤이 넘는 디젤트럭을 나까지 맨몸으로 세워 꼼짝없이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온갖 새들이 나와 함께 같은 대기를 호흡하고 눈길도 교환하면서 살지만, 마음 한편 서로가 조금씩 긴장을 거두지 않는 건 분명하다. 물론 나보다야 새 쪽이 긴장을 좀 더 하겠지만……. 허나 이 녀석 들꿩 녀석들에게만은 도저히 긴장감이 가해지질 않는다. 모르기에 잠시 놀래 킬 수는 있어도 그만큼 날 무작정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임은 사실이다.

야생의 새를 바라보며 멀리서 그윽하게 감탄을 할지언정 가까이서 잔잔하게 미소까지 머금을 여유 있는 상대는 바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들꿩 서방이 거의 유일하다. 서행 중인 내 트럭을 함부로 세워 멈추게 하는 녀석이라니까.

내가 아무리 복을 빌어줘야 미처 받지도 못할 것 같은 녀석, 때문에 난 녀석의 멍청함을 순덕이 또는 순둥이라고 정겹게 말로다 글로다 표현해 준다. ‘허-허-허’ 터무니없기에 터지는 내 실소의 대가로는 그 호칭이야말로 가장 잘 어울린다.

순수함이 갈수록 귀해지는 세상, 영악하지 않으면 무조건 멍청이로 밥으로 돌려지는 멍든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로 인해 세상이 한 뼘쯤 더 넓어지고 또 맑아진다면 과장일까?

나보다 만만하다 해서, 수량이 많아졌다 해서 그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세속의 물량공식일진 몰라도, 조물주의 똑같이 귀하고 선한 자손인 것은 여러 번 확인해 봐도 어김없는 사실이더라, 오히려 남들은 사는데 도움이 안 된다 해서 다 놔버리는 순수함의 청량한 빛깔을 굳세게 지켜나가는 너희들 존재상의 의미는 분명히 오래고 깊고 원대한 곳에 있음이리라.

멍청한 꿩 서방 순둥이들이여 길이 존속하고 또한 번성하라, 너희들로 인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진다는 사실을 남들이야 어쨌든 난 알아줄 수 있으려니, 함께 사용해야하는 오솔길, 나도 지나다니는 길목을 잠시만 스스로 양보해 준다면 난 그것으로 족할 것이려니.

호되게 헤딩 당했을지언정 무사히 살아나간 멍청한 꿩 서방, 살진 순둥이 들꿩 서방이 이 겨울의 입구에서 불쑥 다시보고 싶어진다. (2001,11)

 

** 졸저 산문 수상록 [숲에서 온 편지]1권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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