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 눈 오시는 날)

 

잠시 그쳐있긴 해도 예보처럼 이른 아침 베란다에서 내다본 바깥은 온통 흰색이었습니다. 마음조차도 아이의 그것처럼 일순에 밝아집니다.

생각보다 적설이 양으로 많진 않기로 안심하고 스쿠터를 달래 끌고 나왔습니다. 이후야 몰라도 아직은 기온이 상쾌하도록 적절할 뿐 전혀 춥지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준비하고 나서는 그 잠깐 사이에 느닷없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난분분하게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루기가 서툴면 가장 위험한 물기에 디카가 퍼뜩 걱정되긴 했지만, 그간의 요령을 믿고 우선 가까운 강둑으로 당연한 듯 나섰습니다. 미끄러움을 염려한 탓인지 아무도 밟은 흔적이 없는 말끔한 뚝방은 역시 흰 눈밭, 그 앞에 보이는 너른 정경 열린 강안은 온통 눈세계로 내쳐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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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부터 지금 이때를 기다리며 예상한 장면을 잊을 리 없습니다.

양다리를 평소 같지 않게 옆으로 넓게 벌리고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뚝방을 가능한 저속으로 달려갔습니다.

폐부를 열고 스며드는 공기 속에도 적당한 습기와 함께 쾌적하기 짝이 없는 싱그러움은 강 마을 공기의 맑음을 진수를 새삼 자랑하는 듯 했습니다.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치신 이웃집 후덕한 홍 씨 아저씨 고깃배에도 어김없이 눈은 내려 덮이고 있습니다. 무사히 안정가료를 마치시고 다시 건강을 회복해 활기 있게 일하시는 모습 보여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덕분에 강에 남아있는 빈 배는 비면 비, 눈이면 눈, 안개면 안개를 꼼짝없이 사철을 모두 곳에 멈춘 채 꼬박 받아야 합니다. 내 사진 소재로는 더없이 그럴듯해도 일부 안타까운 심정을 지나칠 때마다 속절없이 겪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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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도 견고함도 그렇거니와 바깥쪽에 보이는 배를 특히 좋아합니다.

평생의 일이기에 그리워서 그러시겠죠, 평상시에도 운동 삼아 모처럼 강에 배를 몰고 나갔다 들어오시면 그에 얻어진 귀한 소득들을 자꾸 거저 나눠주시려는 마음이 얼마나 그득하시든지……, 다시 기운차게 일하게 되시는 날 말로만 그냥 인사를 여쭐게 아니라 반드시 한번쯤 함께 배를 타고 강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렵니다. 동반의 청을 넣으면 거부할 어르신이 아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동 중에 잠시씩 앉아서 한숨을 돌리기도 하는 나만의 벤치, 일없는 통과 들녘 길가에 놓여져 사용하는 이를 단 한차례라도 본 적이 없는 애매한 벤치에도 흰 눈이 덮여 차마 앉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기념사진이나 한 장 남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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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하기로 마을에서 혀를 내두를 벌통 임자를 내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대로 말끔해 보이긴 하지만, 아우는 대체 손을 보는지 마는지 알 수가 없는, 내년을 기약하며 오래 전 동면에 든 건너편 산중 북향 깊은 그늘녘 토종벌통에도 겨울 흰 색은 가득합니다. 저 안에 살고 있는 토종 꿀벌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무슨 생활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면서 이 엄동의 혹한설풍을 견뎌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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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은 줄곧 그칠 줄 모르고 세력을 전혀 약화시키지도 않습니다. 두 바퀴 아슬아슬한 스쿠터가 눈길에서 달릴 수 있는 최대속도인 시속 20킬로미터에 불과해도 얼굴로 마구 달려드는 품새에 눈뜨기가 차마 버겁습니다.

 

문득 고개 돌아본 알만한 들녘에 어허! 태어난 지 40일 된다는 철부지 송아지가 너무 멀리까지 나와 있습니다. 처음 만난 겨울 눈 세상이 그저 신기하다는 듯 제가 마치 토끼인 냥 폴짝거리며 뛰노는 모습이 세상에 더없이 천진하고 평화롭습니다. 구면이라고 그래도 봐주는 셈인지 가까이 다가와 줍니다. 역시 아이는 아이, 잔나무가지에 달라붙은 눈을 입에 넣어 첫 맛을 봅니다. 덕분에 철부지 녀석의 전신초상 기대하지 않던 한 장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뜻 아닌 보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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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당시 두 군데 맘먹은 중 나머지 한곳을 끝으로 마저 향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있으니 별로 힘들 린 없습니다. 2년 동안 오다가다 건네는 염려와 인사가 정겨워 맘이 내키는 대로 배도 사탕도 약간씩 나눈 혼자 사시는 이웃에 팔순 꽃집 할머니 집 뒤란 장독대가 그곳입니다. 전 계절 중 유독 겨울 사진만 빠져있음에 절호의 기회란 바로 오늘입니다. 이곳에서 얻어진 사진만으로도 작은 앨범 하나는 능히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계절마다 부여되는 표정은 가히 화수분입니다. 역시나 오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강눈06.jpg

 

이로서 맘먹고 나선 일정은 넘치도록 다 마쳤습니다. 돌아보니 내 모습이 가관입니다. 뒷모습이야 알바 없겠으나 옷자락 앞섶도 백의, 머리도 백발, 제대로 하얀 눈, 눈사람이더라는 말입니다. 지나치는 이웃 미용실 진열장을 통해 반사로 볼만한 사진 한 장을 여벌로 남겼지만 집에 와서 보니 도시 알아먹을 수가 없음에 그만은 실패했습니다.

아차! 그렇습니다. 가깝거나 멀리서 쏟아지는 눈발들이 워낙 어지럽고 깊다보니 자동초점 기능이 헷갈려 말을 듣지 않았던 겁니다. 하여간 쥔도 몰라보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똑딱이랍니다. 아하! 그게 아니면 저도 나처럼 면전에 만발한 눈발에 왕창 홀렸음일까요?나갈 땐 그럭저럭 땅바닥이 보이는 지경이었으나, 돌아오는 길목은 온통 백색의 눈 깊은 세상 설국으로 곧장 치환되어있었습니다.

 

가장 깊은 동지가 지났으니 오르매 새해가 시작하는 첫 번째 절기라는 소한, 가평 변두리 강마을 달전리에 서설이 폭설로 오시는 오늘 아침 오롯이 기다렸던 행복한 정경 1막이었습니다. 본 글을 마칠 때쯤엔 그새 눈발은 말짱하게 그치고 웬걸, 눈이 실눈으로 부셨으니 햇살이 창연하게 사방 눈 천지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압니다. 사철을 애쓰고 하루같이 성실한 가평골 강마을 선민들이기에 폭설 중에도 잠깐의 틈새를 만들어 내려주시는 반짝이 하늘의 미소 지음이 확실함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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